서른 둘 이준기, 그의 열정 혹은 외로움(인터뷰)

배우 이준기

배우 이준기

MBC 드라마 ‘투윅스’를 끝내고 기자들과 마주앉은 이준기는 이른 아침부터 지친 기색 없이 수다를 떨었다. “다른 배우들은 인터뷰한다고 하면 겁부터 먹고, 그 많은 기자들과 똑같은 듯 다른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 힘들다고 한다는데, 나로선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오히려 이렇게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는 시간은 외롭지 않아서 좋다”라며 미소를 짓는 이준기에게서 애쓴 가식의 흔적은 찾기 힘들었다. 막상 눈앞에 마주하고 있으면 사람의 진심이라는 것은 쉽게 들통이 나버리지 않나. 이준기는 이날 진심으로 기자들과의 대화를 즐겼다. 이렇게 인터뷰에도 그가 지닌 모든 열정을 쏟아내는 이준기.

그러나 오로지 열정만으로 그를 읽을 수는 없었다. 방송을 통해 이미 스스로를 애정결핍이라 규정지은 바 있는 그는 이날 역시도  외로움에 관해 긴 한탄을 했다.  “연기하지 않는 시간에는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차라리 현장에는 놀아주는 이가 있어 좋은데, 혼자 집에 있으면 그저 게으른 청년 하나에 불과하다고 여겨진다”는 서른 둘의 이준기. 그러나 그것이 결코 스타의 호들갑스러운 투정으로 들리지 않았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텅 빈 집안에 들어가면 어느 순간 직면하게 되는 인생의 헛헛함. 그가 말한 외로움은 그런 것에 가까웠다. 실은 우리 모두가 다 느끼고 있는 지극히 보편적인 정서 말이다. 물론 이준기는 그 외로움에 조금은 더 예민했고, 사실은 그래서 배우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겠지만.

Q. ‘투윅스’의 태산으로 몇 달을 살았다. 그 사연 많은 인생은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퍽 힘들었을 텐데, 모두 끝마친 지금 어떤가.
이준기 : 심적으로 힘들다. 우울하고 공허하다. 보통 다른 작품들을 마치고는 지인들과 술 한 잔 한 다음 캐릭터에서 쉽게 벗어났는데 이번에는 유독 여운이 오래간다. 지난주에도 내내 지인들과 술 마시며 덜어내려고 하고 있는데 여전히 우울하다. 주위에서는 ‘너 너무 우울해하는 것 같아. 빨리 떨쳐내’라고 말씀해주신다.

Q. 보통 술을 마시며 작품을 털어내나보다.
이준기 : 술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버리는 것 같다. (술친구들은 주로 누구인가?) 스태프 누나, 형, 동생들이다.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발산한다. 그런데 드라마 종영하고 집에 혼자 외톨이처럼 박혀있으면 뭔가 동 떨어진 기분이 들고 외로워진다. 그래서 드라마를 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든 연락해 가장 가까이 있는 지인들과 또 술을 마시며 외로움을 달랜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실은 최근에는 자전거를 좀 타볼까 했는데 그것도 며칠 못가더라. 서른이라 그런가(웃음).

Q 어떤 날 우울함을 느끼곤 하나.
이준기 : 울적할 때는 대체 내가 뭘 위해 사나 싶다. 연기 말고는 없다. 계속 현장으로 가고 싶다. 현장에 있으면 적어도 놀아줄 사람도 있고, 같은 배우끼리도 상대가 연예인이니까 즐겁기도 하고. 화려한 사람과 일하는 것도 있지만, 인생 경험 많은 감독님과 술 한 잔 하고, 스태프 동생들 챙기고 그러다보면 사람 사는 것 같다. 그러다가 그냥 이준기로 돌아오면 그저 게으른 청년 하나가 소파 하나에 앉아있더라. 씻기도 싫다. 그런 무료함이 결국 울적함이 되더라.

배우 이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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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우울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이준기는 현장에서 춤도 추고 여배우들에 장난도 먼저 거는 등,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주로 한다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 연기한 ‘투윅스’ 의 태산의 경우, 감정이 과잉된 신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만큼 에너지를 많이 요하는 캐릭터였을 텐데, 만약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 했더라면 연기에 집중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준기 : 자칫 잘못하면 다른 장태산이 그려지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던 부분이 있다. 또 보통은 현장에서 분위기를 리드하고 즐겁게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지만, 이번에는 내적으로 집중할 수 있도록 노력을 했던 것 같다. 작품이 무거운 만큼 나 때문에 상대 배우들도 방해를 받을 수 있기에, 또 태산의 모든 감정들을 섬세하게 그려야했기에 조심했던 부분이 있다. 나 뿐만 아니라 각 캐릭터들을 연기하시는 배우들의 부담감이 상당했다. 그러니 다들 기본적으로 심리적 압박을 느낀 듯 하다.

Q. 태산 캐릭터가 가진 여러 감정들을 그리는 것은 이준기 개인에게는 어떤 경험이 됐나. 특히나 화제가 된 부분은 태산이 아이 아버지로 나온다는 점이었지 않나.
이준기 : 말도 마라. 스트레스가 컸다. 감독님(손형석 PD) 작가님(소현경)과 리딩 끝나고 술 한잔을 마시고는 취기 오르면 ‘못할 것 같다’고 하소연도 많이 했다. 그 정도로 겁이 너무 났다. 조만간 대중을 만나게 될 텐데, 이준기가 그리는 아빠는 상상이 안 된다고 하지. ‘냉정한 심판대 앞에서 큰 상처를 받을 수 있겠구나, 실망감을 안겨드릴 수 있겠구나’ 뭐 이런 생각들을 했다. 게다가 감독님과 작가님 모두 이 작품에 욕심이 많아, 리딩을 할 때 주문도 많으셨다. 보통은 인사치레로라도 칭찬을 해주시는데, 매 리딩 때마다 항상 ‘따로 차라도 한 잔 할까’ 하시더라. 그 말인즉슨 컴플레인이 들어온다는 거니까(웃음) 게다가 문자로 전화로 주문을 계속 보내주시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개인적으로 대중의 판단에 대해서도 걱정이 크지만 작가님 감독님 기대에도 못 미치면 어떨까라는 걱정이 앞섰다.

Q. 태산이 표현해야하는 감정은 굉장히 깊이 들어가야했고, 때로는 폭발력을 최대한 이끌어내야하는 그런 인물이었다. 그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을텐데.
이준기 : 유독 이 작품은 오열하는 신도 너무 많고. 대본이 하나 나오면 감정신은 무조건 하나씩 있었고, 진폭의 단계들이 다양했다. 내가 평생 느껴보디 못하는 감정을 끌어내야만 했다. 그래도 대본에 굉장히 디테일하게 쓰여있었다. 그리고 현장에서도 찍으면 ‘저 과잉된 것은 아닌가요?’라고 여러 번 감독님께 여쭤보고 확인을 받았다. 당장은 내가 느끼는대로 표현해야하지만 드라마 전체를 봐야했기 때문이다.

Q. 또 하나 많았던 신은 요즘 유행하는 먹방이다(웃음).
이준기 : 그렇다(웃음). 사실 작가님께 부탁을 드린 것이기는 하다. 이전에 연기했던 인물은 먹는 신이 별로 없었다. 이번에는 많이 먹여달라고 했더니 작가님이 ‘그렇게 될거야. 걱정하지마’ 하시더라. 정말 거의 매 회 마다 써주셨다. 그리고 지문으로 ‘무조건 게걸스럽게’라고 적혀있었다. 모든 것을 다 건듯 먹어야했다. 하정우 선배님의 먹방을 참고했다.

Q. 태산이 2주 동안 탈주자라는 신분으로 살았기에, 멋있어 보이는 장면은 정말 너무 없었다. 각오 단단히 했다 싶었다. 
이준기 : 탈주자이다보니 비주얼 적으로는 제한되는 것이 많았다. 이준기 하면 보통은 ‘열정적이고 활발하며 또 선이 곱고 멋스럽고’ 그런 것을 떠올리시는데, 이번에는 사실 내려놓자 했다. 오로지 인물로만 각인됐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었고, 작가님께도 이번에 ‘이준기 재발견’이라는 소리를 무조건 들어야 겠습니다라고 했다.

배우 이준기

배우 이준기

Q. 참, 이번 결말은 마음에 드나.
이준기 : 실은 나는 태산을 죽여달라고 했다(웃음). 농담이고, 작가님이 결말을 놓고 마지막 까지도 고민하셨고, 내게도 물어보셨다. 그 점이 기분이 좋았다. 나를 믿고 물어본다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나는 ‘개인적으로는 태산이 죽었으면 좋겠지만, 장태산으로 산 이준기의 말은 사족이 될 수 있으니 작가님이 생각하시는대로 가셨으면 좋겠다’라고 말씀드렸다. 작가님이 나중에 도저히 태산을 죽일 수 없었다고 하시더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희망을 주고 치유를 줄 수 있는 드라마가 됐으면 하셨으니까. 나 역시 그 생각에 동의했다.

Q. 대중에 노출돼 그들의 평가를 받아야하는 직업인만큼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것이긴 하지만, 외부의 시선에 특히 더 신경을 쓰는 성격인 것 같다.
이준기 :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태산이라는 캐릭터는 ‘투윅스’의 중심축이니까, 이 캐릭터가 무너지면 모든 인물과의 관계도 어색해지고 당위성도 없어지니까 책임감이 컸던 것 같다. 사실 아침마다 시청률도 당연히 체크하지만, 기자들의 기사와 시청자들의 오프라인 반응을 가장 먼저 체크한다. 다행인 것이 이번 작품은 든든하게 응원들을 많이 해주시더라. 생각한 것 이상의 호평을 해주셔서 ‘아군이 많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면서 점점 자신감을 찾아갔다. 그래서 차라리 방송이 시작되고나서는 수월했다. 방송 전까지 촬영분량에서는 스트레스가 꽤 컸지만.

Q. 이준기라고 하면 에너지가 충만한 배우라 여겨지는 탓인지, 모든 에너지를 작품에 다 쏟아부어야만 스스로 만족할 것 같은 그런 배우라는 느낌이 온다.
이준기 : 그렇다. 그것은 기본이다. 아직은 젊어서 그런지 소진했다는 느낌이 들어야, 그러니까 육체적으로 축 쳐진 느낌이 들어야 다 했다는 느낌이 든다. ‘투윅스’의 경우,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액션신이 합액션이 아니라 그냥 던져져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육체적인) 성취감이 생겼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큰 일 날뻔한 순간이 있었다.급류 신에서 정말 죽을 뻔 했다. 철 와이어 하나를 잡고 찍어야 했는데, 팔근육이 부울 정도로 힘들었다. 상상했던 정도를 넘어서 어마어마한 급류를 느꼈다. 이러다 한 방에 가겠구라나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주연배우랍시고 이렇게 죽어버리면 누가 슬퍼해줄까. 혹여나 이준기 때문에 망했다고 욕하지는 않을까’라는 별별 생각을 다 했다. 그래서 그 신을 보면 표정이 굉장히 리얼하다. 그런데 촬영팀은 연기인 줄 알더라.

Q. 그런 상황을 겪었더라면 조금은 몸을 사려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 법도 한데.
이준기 : 주연배우랍시고 열심히 하는 것은 좋은데 의욕이 너무 과하면 전 스태프가 궁지에 내몰릴 수 있겠구나. 어느 정도는 몸사리는 것이 책임감이구나. 이런 생각을 했지만, 또 같은 상황이 오면 그렇게 하게 되더라.

배우 이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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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군대에 있는 동안, 유아인 김수현 송중기 등 20대 배우들이 자신의 영역을 확실히 챙겨버렸다. 혹 조급증은 안 생겼나.
이준기 : 이미 많이 뺏겨버린 느낌, 그들만의 대체불가능한 영역이 생겼다는 느낌이다(웃음). 게다가 요즘 어린 배우들은 문화혜택을 잘 받고 자라서인지, 정말 잘 하더라.

Q. 그래도 또 이준기만의 대체불가능한 부분도 있다고 여길텐데.
이준기 : 글쎄. 그것은 관객이 더 잘 알지 않을까 싶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감성연기나 신체연기는 그렇게 뒤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분명 어린 친구들은 나름의 장점이 있지만, 나이들 수록 생기는 깊이감이라는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외 나머지는 버티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그들의 참신한 공격에 버틸 수 있는 힘은 결국 성실함에서 오는 것 같다.

Q. 그런가하면 이번에 아역 이채미 양의 연기도 꽤나 호평받았다. 요즘은 아역들도 대단하더라.
이준기 : 우와. 연기 신동이다. 심지어 현장 시스템에 적합하게 태어났다는 느낌마저 든다. 아역들이 잘 하지만, 체력고갈도 빨리되고 그런 편인데, 채민이는 늘 스탠바이가 돼있고 피곤함도 모른다. 카메라 동선까지도 정확하게 파악한다니까. 이런 스킬은 꽤 이쪽 물을 먹어야 생기는 것인데 말이지. 항상 밝지만, 여배우 마인드가 있어서 불필요한 말은 안 한다. 정확한 이미지 관리를 한다(웃음).

Q. 그런 딸 같은 친구들을 보면 결혼생각도 한 번쯤 해보고 그럴텐데 말이지.
이준기 : 외롭다. 공허함이나 외로움이 생긴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한숨). 주변에서 그런 말 많이 한다. 사실 내 나이가 예전같으면 결혼적령기이잖나. 그래서 빈자리도 느껴지는 것 같다. 최근에는 내가 무엇 때문에 사는가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언젠가는 내가 꾸려야할 가정을 생각하며 살아오지 않았나 싶더라.

Q. 앞서서도 이야기 한 부분이지만, 이준기하면 떠오르는 열정의 이면에는 외로움이 도사리고 있는 듯 하다. 본인 역시 방송에서 애정결핍이라고 인정하기도 했고.
이준기 : 요새는 울적함을 느껴서 사람들을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억지로라도 끌어내서 보낸다. 지난 주에는 조카들을 오랜만에 만났는데 어색한 거다. 스타일리스트 조카들과 오히려 친하고 나의 진짜 조카들과 어색해진 것이 송상해 펑펑 울었다. 그렇게 감정 기복이 심한 상태다. 집에 혼자 있으면 더 울적해지니까, 괜히 나가서 곱창집에서 소주 한 잔을 하게 되고. 아, 배도 고프고 사랑도 고프다.

Q. 자, 어느 날은 열정 그 자체이지만 또 돌아서면 외로운 서른 둘 이준기. 당신의 앞으로의 인생은 어떻게 꾸려질까. 
이준기 : 나는 아직 멀었다. 어느 정도 왔다고도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또 아직은 소모된다거나 지친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처음 시작하는 것처럼 흥미롭고 재미있다. 더 채우고 배워가며 쉬지않고 할테다. 그냥 쉬게 되면 공허하고 채울 것이 없다. 현장에서의 성취감만이 나를 채워준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일단 영화 쪽에서도 주연으로 인정받고 싶다. 드라마에는 인정 받았으나 영화 쪽에서는 그런 적이 없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이병헌 선배님처럼 보다 큰 시장에서 활동하고 싶다. 양심적으로 단기 어학연수라도 가야하지 않나 싶은데,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있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언어가 돼야 자신감이 생길 것 같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