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즐기는 습관, 모르는 만큼 알고 싶어진다

‘명화의 비밀’ 표지

얼마 전, 홍대 근처에서 열린 ‘서울 와우북 페스티벌’에 갔다가 파장을 몇 분 앞두고 우연히 책 하나를 발견했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명화의 비밀’이었다. 1999년 화가 호크니는 옛 거장의 미스터리를 추적하고 그들의 숨겨진 비밀을 밝히는 작업에 몰두했다. 여느 화가들처럼 그도 회화를 볼 때면 그 작품을 어떻게 그렸고, 무엇을 말하고 있으며, 왜 그렸을까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고 고백한다. 심지어 화실에 복제 미술품(고화질 컬러 인쇄 작업)을 많이 모아놓은 뒤에야 비로소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 책은 그림과 현실 자체를 바라보는 방식을 다루고 있다. 이미 10년 전에 출판된 책이었지만, 절반 가격에 새 책을 구입하고 나니 괜히 잃어버린 보물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다시, 그림이다’ 표지

1960년대 영국 팝아트 화가로 알려진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을 오랫동안 봤지만, 진정 그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1년 전에 나온 ‘다시, 그림이다’라는 책 때문이었다. 이 책은 미술평론가 마틴 게이퍼드가 10여 년에 걸쳐 호크니와 만나 대화한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게이퍼드의 ‘고흐 고갱 그리고 옐로하우스’를 재미있게 읽었던 지라, 그냥 믿고 구입한 책이었지만 호크니의 미술에 관한 열정과 통찰력은 진정 감동적이었다. 원제는 ‘A Bigger Message’인데, 이것은 호크니가 30개의 캔버스에 그린 2010년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1656년경 클로드 로랭이 그린 ‘산상수훈’에 감동을 받은 그가 ’21세기를 위한 그림’이 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몰입했던 작업이다. 하지만 책 초반부에 월드게이트 숲을 그린 장부터 이미 인상적인 풍경화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특히 5장 ‘점점 더 커지는 그림’을 읽다가(정확히 66~67페이지) 입이 딱 벌어졌다. 거기에는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 또는 새로운 포스트-사진 시대를 위한 모티브에 관한 회화'(2007)가 담겨 있다. 게이퍼드는 아마도 미술 역사상 가장 큰 풍경화라고 소개한다. 적어도 전적으로 야외에서 그린 가장 큰 작품인 것은 분명하다며, 이 작품은 소설과도 같은 시각 경험을 제공해 준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왕립미술원에 전시된 사진을 보면서, 그저 그림의 떡이란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가 이걸 볼 수 있을까?”하는 마음뿐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데이비드 호크니: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 전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서 놀랍게도 현실이 되었다. 지금 ‘데이비드 호크니: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전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중앙홀에서 내년 2월말까지 호크니의 큰 나무들이 그 무성함을 직접 뽐낸다. 이 그림은 높이 4.5m, 폭 12m에 이르며, 총 50개의 캔버스를 이어 하나의 대형 풍경을 펼쳐낸 대작이다. 작품은 하나뿐이지만, 호크니의 작품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데이비드 호크니: 더 큰 그림’도 상영 중이다. 부르노 볼하임이 제작, 연출한 것으로, 호크니가 30년간 거주한 LA를 떠나 고향 요크셔로 돌아오는 과정을 기록했다. 호크니는 ‘다시, 그림이다’에서 이 작업에 대해, “이것은 그저 환영이 아닙니다. 이 작품은 당신으로 하여금 그 안으로 발을 들여놓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림이 아니라 뜻입니다. 당신의 마음은 이미 그 안에 있습니다. 이 작품은 당신을 감싸 안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이 작품 앞에서 이런 경험을 했으면 합니다. 이 작품은 거대한 회화입니다. 이렇게 큰 회화는 많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호크니의 작품을 색다른 방식으로 즐기고 싶다면, 과천으로 오는 길에 ‘다시, 그림이다’를 미리 읽어볼 것을 권한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퐁피두센터미디어특별전 ‘비디오 빈티지: 1963~1983’도 올해 말까지 전시 중이니, 영화나 미디어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같이 관람하면 좋을 듯하다.

연극 ‘크라임’

개인적으로 10월이 일년 중에 가장 행복한 달이다. 즐길 수 있는 영화제도 많지만, 무엇보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와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학로에서 연극과 무용을 전부 만날 수 있는 전자를 권하고 싶다. 이미 10월 초에, 초현실주의 작가 로제 비트라크의 대표작이자 앙토냉 아르토에 의해 잔혹극으로 공연된 바 있는 떼아트르 드 라 빌의 ‘빅토르 혹은 권좌의 아이들’과 베트남 기후 난민에 대한 정치-사회적 이슈를 다룬 라시드 우람단의 ‘스푸마토’를 보러갔다. 앞으로 떼아트르 폴스키 비엘스코-비야와의 ‘크라임'(23-26일)과 빔 반데키부스와 울티마 베즈의 ‘왓 더 바디 더즈 낫 리멤버'(25, 26일)의 공연이 남아있다. 전자는 폴란드 작가 곰브로비치의 단편 ‘Premeditated Crime’과 ‘Cosmos’를 결합해 각색한 작품으로, 한 남자의 죽음을 둘러싸고 가족 중에 누가 그를 죽였는가를 파헤치는 내용이다. 후자는 반데키부스의 데뷔작으로, 9명의 무용수들이 서로의 신체를 활용해 원초적인 동작(춤과 음악의 잔인한 대결)을 이끌어낸다. 초연 후 26년이 지나, 새로운 캐스팅과 재안무로 업그레이드되었다. 벨기에를 대표하는 무용가 반데키부스의 대표작 ‘블러쉬’, ‘슈피겔’ 등이 이미 국내에서 여러 번 소개된 적이 있다. 장담하건대 결코 실망한 일은 없다. 몸에 폭발적인 에너지를 주입하고 싶다면, 매진이 되기 전에 서둘러 표를 구입하시기 바란다.

글.  전종혁 대중문화 평론가 hubul2@naver.com
편집. 이은아 domino@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