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인터뷰] ‘진범’ 유선 “‘아이 아빠’ 지키려는 아내…엄마이기에 공감했어요”

[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영화 ‘진범’에서 살인 용의자가 된 남편의 무죄를 입증하려고 애쓰는 다연을 연기한 배우 유선. /사진제공=리틀빅픽처스

스며드는 아름다움은 화려해서 돋보이는 것보다 어쩌면 더 어려운 일이다. 작품 속 배우 유선은 그런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꼬챙이처럼 삐죽 튀어나오지 않고도 은은한 존재감을 풍긴다. 지난 5월 영화 ‘어린 의뢰인’에 이어 현재 방영 중인 주말극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그리고 오는 10일 개봉하는 영화 ‘진범’까지 유선이 꺼낸 모습은 ‘엄마’이다. 엄마이기에 아동 학대 문제를 다룬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고, 워킹맘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었고, 아이의 아빠 자리를 지켜주고픈 심정에 공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피해자의 남편과 용의자의 아내, 공조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이 함께 진실을 찾는 영화 ‘진범’의 개봉을 앞두고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유선을 만났다.

10. 실제로는 단발머리인데 머리를 붙여 긴머리로 기자간담회 때 나왔고, 사진도 긴머리로 찍었다. 이유는?
유선: 영화 ‘어린의뢰인’으로 관객들을 만난지 얼마 안 됐는데 또 공식석상에 서면서 비슷한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실례가 되는 것 같아 죄송해서다.

10. 이번 영화의 대본을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을 받았나?
유선: 아이의 봄 방학에 가족과 휴가 중에 대본을 받았다. 아이는 바닷가에서 아빠와 놀고 있고 나는 한편에서 휴대폰으로 읽었다. 목이 아플 정도의 부동자세로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제가 추리소설을 워낙 좋아해서 남들보다 추리에 자신 있다고 자부했는데 결말은 전혀 예측과 달랐다. 이 긴장감이 그대로 산다면 짜임새 있는 스릴러가 만들어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공간과 인물은 제한돼 있는데 그 안에서 주고 받는 긴장감은 팽팽하다. 연극으로 무대에 올려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10. 추리소설을 좋아해서 스릴러 영화에 많이 출연하게 된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유선: 스릴러와 추리소설의 매력은 결말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영화도 결말이 뻔히 예측되면 흥미가 없어지더라. 내가 예측했던 결말에서 조금이라도 빗나가면 신선한 만족감이 있다. 추리소설도, 스릴러도 독자와 관객의 예측을 빗나가는 시도를 한다. 거기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진범’도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내 예측을 벗어나 신선하고 좋았다.

영화 ‘진범’의 한 장면. /사진제공=리틀빅픽처스

10. 영화에서는 ‘공판 기일 하루 전’이라는 시점의 현재와 과거를 왔다갔다하면서 사건의 진행 상황을 보여준다. 촬영은 시간 순서대로 했나?
유선: ‘오늘’의 시점은 몰아서 찍었다. 목격자 상민(장혁진 분)과 피해자의 남편 영훈(송새벽 분), 다연(유선 분)이 진실공방을 하는 부분은 순서대로 찍고 나머지는 그러지 못했다. 첫 촬영부터 다연은 감정이 격해지는 장면이어서 쉽지 않았다.

10. 영화의 전개도 시간 순이 아닌데 실제 촬영도 그랬다면, 감정을 점점 쌓아나가기 어려웠을 것 같다.
유선: 나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들이 시간의 재배치를 해야 했다. 영화 안에서 시간이 뒤죽박죽 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에 따라 감정을 배치해야 했다. 감정이 계속 ‘강’일 수는 없지 않나. 계속 ‘강’이라면 보는 분들이 지칠 테니 완급 조절이 필요했다.

10. 영화 속에서는 각자 자신의 입장을 설득시키기 위해 서로 대립하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이어지는데 실제 촬영 현장의 분위기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유선: MT를 가서 서로의 인생 얘기를 나누면서 친해졌다. 작품을 시작하기 전 갔던 MT에서는 앉아서 몇 시간을 얘기만 했다. 그리고 고기도 구워서 먹고 간단하게 술 한 잔도 하고. 나와 감독님, 영화사 대표님은 술을 못해서 맨정신에 계속 이야기만 했다. 첫 미팅 자리에서도 8시간을 얘기만 할 정도였다. 그게 가능한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다. 사람들이 소탈하고 꾸밈이 없고 솔직하고 선을 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게 남다른 출발이었다. 깊이 있게 교감할 수 있어서 편하게 호흡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MT를 주도해준 송새벽 씨에게 고맙다. 두 번째 MT 때는 눈치게임, 전기게임, 007 등 추억의 게임을 다 소환했다.

10. 누가 제일 웃기나?
유선: 다들 유쾌한 사람들인데 대화 지분의 80%는 송새벽 씨다. (진지해 보이는데?) 그래서 다들 놀란다. 입담이 좋고 성격도 유쾌하고 함께 있으면 웃게 된다.

유선은 “밥을 꼭 챙겨먹는다”며 ‘밥심’을 자신의 연기 비결 중 하나로 꼽았다. /사진제공=리틀빅픽처스

10. 촬영하며 체력 안배도 중요했을 것 같다. 그런 부분은 어떻게 관리했나?
유선: 송새벽 씨가 한 인터뷰에서 ‘유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뭐냐’는 질문에 ‘밥 잘 먹는 누나’라고 답했다.(웃음) 그 만큼 밥을 꼭 챙겨먹는다. 그리고 잠이 보약이다. 감정을 쏟아내야 하는 장면이 있을 때 촬영 전부터 몰입해 있으면 더 에너지가 소진된다는 걸 어느 순간 알게 됐다. 그런 장면 있을 때는 30분이라도 잔다. 정신이 개운해야 더 좋은 에너지가 나오더라. 격한 감정신이 있을 때 밥차 줄의 1등이 나다. 절대 밥을 거르지 않는다.(웃음)

10. 극한의 감정에 몰입한 후 빠져나올 때 어려운 점은 없나?
유선: 나는 아이가 있어서 서울의 집과 대전의 촬영장을 오갔다. 감독님이 내게 힘든 감정 신을 소화하면서 가사, 육아까지 하는 게 대단하다고 하셨는데 오히려 그 시간이 나한테는 힘이 된다. 촬영이 아닌 때 스스로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도록 예전부터 트레이닝에 신경 썼다. 아이가 있고 나서는 보다 더 편해졌다. 내가 어떤 캐릭터에 몰입돼 있든 집에 들어갈 때는 엄마이자 아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잠깐이라도 아이를 보고 오는 시간이 새로운 에너지를 주고 나를 충전시킨다.

10. 남편의 무혐의를 입증하려는 다연의 행동이 집착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연의 감정을 어떤 식으로 이해했나?
유선: 아이를 위해 ‘아빠’라는 자리를 지켜주려는 모성애가 남편의 무죄를 입증하려는 동기로 느껴졌다. 온전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랐고, 피붙이인 언니의 가정마저도 파괴된 상황이지 않나. 아이를 온전한 환경 속에서 자라게 하고, 부모의 사랑을 받게 하고, 가정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집착에 가깝게 이어진 것이라고 봤다. 그렇게 이해하니 다연의 모든 게 받아들여졌다. 나도 내 아이에게 제일 주고 싶은 선물이 행복한 가정이다. 아이가 집에서 웃길 바라고, 가정을 통해 밖에서 받았던 상처를 치유하길 바란다. 결혼 전에는 자아실현, 일의 성취에 중점을 뒀다면, 결혼 후에는 가정이 첫 번째가 됐다. 일과 가정의 우선순위와 균형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아이에게 보여주고픈 자신의 출연작을 꼽아달라고 하자 유선은 영화 ‘글러브’를 골랐다. 그는 “또 하나의 언어로서 수화를 배우는 과정이 행복했고, 비록 듣지 못하지만 아이들이 소망에 집중하는 모습이 따뜻하고 좋았다”고 설명했다. /사진제공=리틀빅픽처스

10. 일과 가정을 모두 잘 챙기기란 쉽지 않은데 오히려 잘 활용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유선: 행운이고 감사한 일인 건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긍정적인 에너지가 나오고 내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 최선을 다해 일할 수 있는 열정이 생긴다. 사실 워킹맘으로서 일과 가정을 모두 잘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슈퍼우먼이 될 수는 없다. 내가 없을 때 빈자리를 채워주는 남편과 부모님이 있기에 이렇게 일할 수 있는 것이다.

10. 방영 중인 주말극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이나 지난 5월 개봉한 영화 ‘어린 의뢰인’을 하면서 엄마로서 공감한 부분도 많겠다.
유선: 철없는 남편과 사는 미선(‘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에서 극 중 이름)을 보면서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생각도 했다.(웃음) 엄마이기 때문에 선택한 작품들이 유독 있는 것 같다. 엄마가 아니었다면 ‘어린 의뢰인’을 할 수 있었을까, ‘진범’의 다연도 내가 미혼이었다면 모성으로 풀 수 있었을까 싶다. 엄마가 되면서 작품을 해석하는 방향,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 등 조금씩 달라진 것 같다.

10. ‘스릴러 퀸’이란 수식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유선: 감사하다. 뭐든 ‘퀸’이면 좋지 않나.(웃음) 그 만큼 많이 했나 싶다가도 꼽아주는 걸 들어보면 내가 한 스릴러들의 결과도 나름 좋더라. 나만의 색깔을 그래도 하나는 만들었구나 싶어서 기분 좋다. 장르가 치우친 건 아닌가 한 편으로 우려도 했는데 오히려 수식어를 달아주시니 스릴러 분야에서 인정 받은 느낌이다.

10. 하반기 계획은 어떻게 되나?
유선: 9월까지는 드라마를 계속 찍을 것 같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영화 ‘귀수’가 개봉할 예정이다. 분량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캐릭터로 나온다. 그렇게 또 한 번 관객을 찾아뵐 것 같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