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 “마침표 그리고 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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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산한 가을바람이 옷깃을 스치던 지난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식당에서 배우 주원을 만났다. “날씨가 정말 춥네요.” 너스레를 떨며 식당 안으로 들어선 그는 초췌한 기색이 역력했다. 착한 의학드라마로 진한 여운을 남긴 KBS2 ‘굿 닥터’가 종방한 지도 언 일주일이 지났건만, 본인은 그런 여유를 즐길 시간이 없는 듯 뮤지컬 연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했다.

오는 11월 24일 개막을 앞둔 뮤지컬 ‘고스트(GHOST)’는 1990년 패트릭 스웨이즈와 데미 무어 주연으로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영화 ‘사랑과 영혼’을 뮤지컬화한 작품이다.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사랑의 영원성에 대한 판타지를 담은 ‘사랑과 영혼’에서 주원은 뒷골목에서 살인을 당한 후 사랑하는 연인 몰리 젠슨의 곁을 떠나지 못해 이승을 떠도는 샘 위트 역을 맡았다.

“뮤지컬로 데뷔해서인지, 뮤지컬 무대는 고향 같은 느낌이 있어요. ‘고스트’에는 제 밑으로 후배가 두 명뿐이어서 신인 때처럼 막내로 돌아간 기분이에요(웃음).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느껴보려고 뮤지컬을 택한 이유도 있고 노래, 연기를 모두 소화한다는 점에선 배우 생활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고스트’가 국내 초연, 브로드웨이의 ‘고스트’ 제작진이 총동원됐다는 점과는 별개로 주원에게는 ‘굿 닥터’ 이후 차기작으로 뮤지컬 행을 택한 의미가 남다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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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닥터’는 끝났지만, 아직도 (박시온에게서) 빠져나오질 못하고 있어요. 하도 꾸부정한 자세로 있었더니 이제는 허리도 아프네요(웃음).”

6개월 가량을 박시온으로 살아야 했던 주원의 말투와 몸짓에서는 마치 ‘굿 닥터’를 눈앞에서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시온의 잔상이 강하게 남아있었다. 특히 주원은 작품을 준비하며 서번트 신드롬(자폐증이나 지적장애를 지닌 이들이 특정 분야에서 천재적 재능을 보이는 현상)을 겪고 있는 자폐아를 비롯해 여러 사례자를 만나며 캐릭터 형성에 공을 들였다.

“시온이 워낙 감정 표현을 안 하니까 배우 입장에서는 그 미묘한 감정선을 잡아나기가 쉽지 않았죠. 실제로 직접 자폐를 겪는 친구들을 만나보니 기쁨, 슬픔 등 감정 표현이 전혀 없더라고요. 그런데도 작가가 시온의 눈물 신을 넣어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며 혼자 골머리를 앓았어요(웃음).”

‘굿 닥터’를 집필한 박재범 작가는 주원을 “동물 같은 느낌이 있는 배우다”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이번 작품에서 주원이 연기한 박시온은 캐릭터 이상의 묘한 매력이 담겼다는 것. 이 부분에 대해 박 작가는 “주원이는 여성에게 모성애를 이끌어내는 포인트를 본능적으로 잡아내는 재주가 있다”고 말했다.

캐릭터만 잘 잡은 것도 아니었다. “극의 후반부에 시온이 성장하며 아픔을 겪는 부분의 모호한 감정을 표현하기가 가장 어려웠다”는 주원은 ‘굿 닥터’를 통해 대사 외의 눈빛, 세세한 몸짓 등의 표현으로 내면 연기가 가능한 배우라는 이미지도 얻었다. ‘굿 닥터’에서 주원이 선보인 박시온의 표현은 KBS2 ‘제빵왕 김탁구’(2010), ‘각시탈’(2012), ‘7급 공무원’(2013)에서의 연기와는 분명 질감이 다르다.

가장 연기에 힘을 줬던 대목이 어디냐고 묻자, 그는 ‘시온의 첫 수술’이라고 망설임 없이 답했다. 이어 “아버지를 만나고 나서 모든 의학적 지식을 잃고 패닉에 빠진 순간은 기존의 연기와는 톤이 달랐기 때문에 어려움이 컸다”며 “그만큼 준비하면서도 가장 공을 들였고 보람도 컸던 대목이다”고 답했다.

‘베란다 세레나데’로 화제를 모았던 ‘시온의 환상’ 신에 대해서는 의외의 사실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사실 ‘시온의 환상’ 신은 밤샘 촬영 이후 새벽에 정신없이 찍은 부분”이라며 “문채원에게 ‘우리 그냥 웃자!’ 하면서 별생각 없이 찍은 장면인데 생각보다 반응이 뜨거워서 놀랐다”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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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년 만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것이 본인에게는 큰 기쁨이자 부담으로 다가올 터. 새로운 도전을 앞둔 그의 눈빛에선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고민이 읽혔다.

“‘굿 닥터’는 필모그래피적으로도, 배우로서도 오랜 시간 기억될 작품으로 남을 것 같아요. 제가 배우로서 성장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현장에서 여유를 갖고 나의 연기를 펼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한 성과를 거둔 것 같아요.”

‘굿 닥터’에 이어 뮤지컬 ‘고스트’까지 쉴 틈 없이 달려온 배우 주원. 최근 아이돌급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코피는 났지만, 쓰러진 적은 없다”며 힘든 내색 없이 웃어넘기는 그의 모습은 ‘스타’가 아닌 ‘배우’의 탄생을 예감케 한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제공. 심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