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rd BIFAN] 마성X순수의 블랙홀···김혜수의 ‘매혹’을 만나다(종합)

[텐아시아=태유나 기자]
김혜수,부천영화제

배우 김혜수./사진=텐아시아DB

“지나온 저의 작품들을 쭉 훑어보면서 잘 완성된 작품뿐 아니라 다소 미흡하고, 스크린으로 마주하기 두려운 작품들도 선정했습니다. 관객들에게 다시 보이기 부끄러울 수 있는 작품들마저도 저의 과거이고, 그것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배우 김혜수가 28일 오후 부천 상동 고려호텔에서 열린 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배우 특별전 ‘매혹, 김혜수’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매혹, 김혜수’는 BIFAN에서 전도연, 정우성에 이어 세 번째로 마련한 배우 특별전이다. 신철 집행위원장은 “김혜수 씨는 2개의 블랙홀을 가진 배우다. 하나는 마성, 하나는 순수”라며 “마성의 블랙홀과 순수의 블랙홀이 끊임없이 변신하고 충돌한다. 이런 매력을 가진 배우는 김혜수 씨 밖에 없는 것 같다. 단어로 표현한다면 ‘매혹’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며 특별전 제목의 뜻을 설명했다.

김혜수도 ‘매혹’이라는 단어에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처음 매혹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해주셨을 때 너무 기쁘고 좋았다”며 “매혹이라는 말 자체가 매혹적이지 않나. 영화라는 매체와 배우라는 직업은 매혹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 같다. 누군가를 통해 꼭 들어보고 싶었던 단어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 특별전이 나에게 의미 있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나이와 상관없이 매혹에 대한 열망을 잃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김혜수는 특별전 제안을 받았을 때 부담감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너무 영광스럽고 감사했지만 그런 감정을 넘어서는 부담감이 있었다. 그런 내게 지속적으로 용기와 격려를 주시고, 세심하게 준비해주신 BIFAN 운영진 덕분에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다.

또한 김혜수는 “특별전을 준비하면서 내 삶의 많은 시간들이 영화와 함께 해왔고, 그 속에서 많이 성장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며 “그동안 내가 지내왔던 시간들을 차분히 되짚어보는 여유를 갖지 못했는데, 이번 특별전을 통해 지난 궤적들을 찬찬히 짚어보는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됐다”고 밝혔다.

김혜수는 ‘깜보’(1986)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이후 이명세 감독의 ‘첫사랑’(1993)부터 최근 ‘국가부도의 날’(2018)까지 매번 변신을 거듭하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김혜수는 “어느덧 33년차 배우가 되었지만 스스로 배우라고 자각하기 시작한 건 20대를 넘어서부터”라며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건 매번 느끼는 스스로에 대한 불만족과 미흡함을 확인하는 과정, 그것을 극복하고 카타르시스에 도달하고 싶은 욕망이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린 나이에 우연히 시작하게 된 일이지만 이제와 돌이켜보면 운명이었던 것 같다. 배우로 일하면서 행복함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할 수 없었을 거다. 행복 없이 해내기에는 내가 배우로서 재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웃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김혜수가 직접 선정한 10편의 대표작들을 만날 수 있다. ‘첫사랑’부터 ‘타짜’ ‘열한 번째 엄마’ ‘바람 피기 좋은 날’ ‘모던보이’ ‘이층의 악당’ ‘도둑들’ ‘차이나타운’ ‘굿바이 싱글’ ‘국가부도의 날’까지다.

김혜수는 “지나온 작품들을 다시 관객들께 소개해야 하는데, 정말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는 작품이 무엇일까 고민이 많았다”며 “잘 만들었다고 생각되는 작품들과 함께 아쉬움이 남았던 작품들도 선정했다. 과거의 나를 대면할 수 있는 계기를 나에게, 관객들에게 마련해주고 싶었다”라고 작품 선정 기준을 밝혔다.

영화 ‘이층의 악당’ 스틸컷./사진제공=싸이더스

그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는 손재곤 감독의 ‘이층의 악당’을 꼽았다. 김혜수는 “작품의 성패와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의미가 큰 작품”이라며 “그 전까지는 코미디 장르에 자신이 없었다. 이 작품을 계기로 내가 가지고 있던 코미디에 대한 편견을 많이 지워냈다”고 설명했다.

후배 배우들이 자신을 롤모델로 많이 꼽는 것에 대해서는 “롤모델은 엄청난 부담감과 책임감이 느껴지는 지칭”이라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고마움과 동시에 나를 지칭하는 것 같지 않은 감정을 느낀다. 후배들이 그렇게 느낄 만큼 내가 썩 괜찮거나 갖춰진 선배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인 것 같다”고 겸손해 했다.

이어 김혜수는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 건 나이와 상관없이 순수함을 유지하는 것”이라며 “김혜자 선배님을 비롯한 대선배님들을 가까이서 뵈면 지금의 나로서는 가질 수 없는 통찰과 직관, 깊이를 느낌과 동시에 순수함도 느껴진다. 그걸 보며 내안에 내재되어있는 순수함을 잃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2019년은 ‘한국영화 100주년’이라는 뜻깊은 해다. 김혜수는 “100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우리의 역사는 요동쳤고, 영화는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내가 배우로 생활한 30년 남짓한 시간들 속에서도 영화는 큰 폭으로 진보해왔다고 생각한다”며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대형 상영관과 기업화된 영화 구조로 규모가 큰 상업 영화를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독립 영화나 소수의 취향을 존중하는 영화들이 자연스레 묻히게 되는 것 같다. 기술적인 것들은 더욱 발전해 나가겠지만, 새로운 아이디어와 영화 고유의 기법에 더 집중하는 영화들도 많이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특별전 ‘매혹, 김혜수’ 포스터.

이번 BIFAN 배우 특별전에서는 영화 상영과 함께 관객들을 직접 만나는 자리도 마련된다. 오는 29일에는 ‘타짜’ 상영 후 부천시청 어울마당에서 메가 토크가 열린다. 씨네21 김혜리 기자의 진행으로 ‘타짜’를 연출한 최동훈 감독과 김혜수가 참석한다. 내달 2일에는 ‘차이나타운’의 한준희 감독, 3일에는 ‘첫사랑’의 이명세 감독이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진다.

기념 책자와 기념품도 발매된다. ‘타짜’의 명대사와 명장면을 활용한 마스킹테이프와 배지, 티셔츠를 비롯해 김혜수의 대표작 이미지가 담긴 굿즈 등이다.

이번 특별전 기념품의 수익금 전액은 김혜수의 의사에 따라 독립영화 발전과 후배 영화인 양성을 위해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 기부된다. 김혜수는 “매년 눈부시게 비약하고 있는 BIFAN 영화제에 특별전으로 초대받아 영광스럽다. 앞으로의 행보를 응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지난 27일 개막해 내달 7일까지 11일간 부천시 일대에서 열린다.

태유나 기자 youyou@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