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선, 아직 시작되지 않은 그녀의 변신(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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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하 ‘하이킥’), 그리고 그 후. 배우 박하선을 설명할 때 쓸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다. 2010년 MBC ‘동이’의 인현왕후로 대중에게 처음 이름을 알렸지만, 본인의 실명 그대로 출연한 ‘하이킥’만 했을까. 무려 6개월을 ‘하이킥’ 속 선한 눈매의 허당 천사로 살았으니 이 작품을 그녀의 필모그래피 변곡점으로 삼는 건 너무도 당연했다.

그러나 그 당연함이 낳은 부담감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하이킥’은 박하선이 코믹과 멜로를 오가며 연기로 한 단계 성장을 체감할 수 있게 한 작품이기도 했지만, 잘 만들어진 캐릭터가 남긴 이미지를 지우는 건 배우에게 남겨진 숙명과도 같았다.

잘할 수 있는 것과 잘해야 하는 것. 그 미묘한 경계에서 배우로서의 삶을 고민할 즈음, 박하선은 MBC ‘투윅스’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깨닫는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건 연기뿐이었다는 사실을. 마음가짐이 달라지자, 연기에도 활력이 생겼다. ‘투윅스’ 속 서인혜에게서는 더는 코믹의 향이 진하게 벤 시트콤 속 ‘박하선’도, 애써 지워야할 어떤 캐릭터도 찾을 수 없었다.

그녀와 마주한 시간, 그 짧지만 묵직했던 대화의 끝에 문뜩 그녀를 설명할 새로운 방편이 떠올랐다. “배우 박하선, 그녀의 시간은 아직 오지 않은, 그리고 머지않은 미래다”라고.

Q. ‘투윅스’를 통해 2주라는 짧고 굵은 시간을 서인혜로 살았다. 작품을 마친 소감이 어떤가.
박하선: 시청률을 떠나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수식을 들었을 때 가장 기뻤다.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작품에서 한 축을 담당했었다는 게 무척 보람찼다.

Q. ‘투윅스’의 어떤 부분에 매력을 느껴 출연을 결심하게 됐나.
박하선: 항상 소현경 작가와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장태산이 좋았다(웃음). 사실 시놉시스를 보면서 가장 마음이 갔던 캐릭터가 태산이었다. “너무 잘살고 싶어서 죽고 싶다”고 말하는 태산이 딸 수진을 만나 삶의 희망과 의미를 찾는다는 설정에 매혹됐다. ‘투윅스’에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힐링을 맛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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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여주인공 인혜 역을 맡은 배우가 “남자주인공 장태산이 가장 좋았다”고 말하는 게 의외다(웃음).
박하선: 감정적으로는 그랬다는 이야기다(웃음). 물론 ‘투윅스’는 배우로서 내게도 전환점이 될 만한 작품이었다. 한 번도 인혜처럼 버림받은 여주인공 역을 맡아본 적이 없다. 인혜는 현실의 어둡고 슬픈 모습과 과거의 밝은 모습을 함께 갖고 있기에 배우로서 보여드릴 것이 많겠더라. 연기적인 측면으로는 ‘하이킥’ 때 미흡했던 발성이나 표정 연기를 고치려고 노력했고, 얼마간 성과도 거뒀다.

Q. 16부작의 가쁜 호흡 속에서 묵직한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는 게 쉽지 않은 과제였을 듯하다.
박하선: 풀어내야 할 감정이 워낙 크고 복합적이었기에, 이 감정을 모두 담기엔 조금 촉박한 감이 있었다. 단순히 분량에 대한 아쉬움은 아니다. 워낙 캐릭터가 분명해서 짧게 등장해도 임팩트가 있었으니까. 다만 마지막 회에 태산과 인혜가 다시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는 부분이 조금 길게 다뤄졌으면 어땠을까 싶다. 인혜와 태산이 티격태격하면 수진이 나서서 현명하게 중재해주는 그런 이야기(웃음). 상상만 해도 즐겁다.

Q. 마지막 회에 담긴 ‘태산과의 뜨거운 포옹’만큼 인상적이었던 게 ‘승우의 슬픈 미소’였다. 두 남자 사이에서 고민도 깊었겠다.
박하선: 승우가 기댈 수 있는 나무와 같은 남자라면, 태산은 모성애를 자극하는 남자다. 하지만 인혜라면 승우에게 기대기보다는 태산과 못다 한 사랑을 택하지 않을까. 연기하며 너무 몰입해서인지 승우와 헤어지는 신을 찍을 때 정말 눈물이 많이 났다. 류수영도 그 신을 찍고 화장실로 가서 변기를 잡고 한참을 울었다고 하더라(웃음).

Q. 수진과 인혜의 관계는 흡사 실제 모녀관계를 떠올리게 할 만큼 호흡이 좋았다. 일반적인 모녀관계라기보다는 언니나 친구 같은 느낌도 있더라.
박하선: 바로 그게 의도했던 거다(웃음). 보통의 모녀 관계보다는 극 중 상황의 특수성을 반영한 조금 독특한 모녀관계로 그려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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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채미 양이 나이가 어려워서 보조를 맞추기가 쉽지 않았겠다. 아무래도 어린 아이다 보니 친해지는 게 급선무였을 듯한데(웃음).
박하선: 채미가 낯을 많이 가려서 친해지기 위해 공을 많이 들였다. 원래 채미가 입이 짧아서 밥을 잘 안 먹는다. 그래서 “뭐 먹고 싶으냐?”고 했더니 “산 낙지!”라고 하는 거다. 촬영이 없는 날 만나서 산 낙지를 먹으러 갔는데, 장도 안 찍고 그릇을 깨끗이 비우더라(웃음). 그렇게 눈높이를 맞추면서 다가가니 채미도 마음을 열더라.

Q. 20대 중반의 나이에 백혈병에 걸린 딸을 둔 미혼모 역을 연기해야 했다. 인혜가 처한 상황에 공감하기 어렵지 않았나.
박하선: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으니 아무리 그 감정을 상상해보려고 해도 한계가 있더라. 보통 아이를 둔 엄마들은 자식의 몸짓, 말투 하나하나에 민감하지 않나. 수진이와 함께하며 웃을 때마다 손형석 PD가 “그러면 안 돼! 인혜는 보통 엄마가 아니잖아, 수진이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감정을 표현해야지”라고 말했다. 인혜가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을 담아내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Q. 미혼모 역을 맡은 당신을 보니 영화 ‘영도다리’(2009) 속 인화와가 떠오르더라. 스물세 살 때 연기한 인화와 스물일곱 살에 연기한 인혜, 연기하면서 어떤 감정적인 차이가 느껴지던가.
박하선: 어떻게 보면 연기는 그때 더 잘했던 것 같다(웃음). ‘영도다리’ 때만 해도 작품을 끝내고 아들과 헤어질 때 너무 슬펐다. 정말 펑펑 울고 한동안 계속 아파했었다. 이번에 채미와 헤어질 때도 사실 울음이 쏟아질 뻔 한 걸 겨우 참았다. 손형석 PD와 소현경 작가도 “아이 앞에서는 울지 마라”고 조언했었다. 나이를 먹고 보니 감정적으로 더 성숙해진 것 같다. 여유가 생기니까 보이는 게 많아졌다. 비슷한 배역을 맡았지만, 그때는 아이 같은 모습이 전부였다면 지금은 정말 여자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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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투윅스’를 통해 ‘하이킥’이 남긴 이미지를 지우는 데 성공한 것 같다. 본인이 느끼기에는 어떤가.
박하선: 소현경 작가도 나에게 “(인혜가) ‘하이킥’ 때의 이미지와 비슷할 수도 있지만, ‘투윅스’를 통해 같은 캐릭터도 결을 나눠서 표현할 수 있는 배우로 거듭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이킥’은 ‘박하선’이란 이름을 알리고, 내가 가진 모든 걸 보여드릴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런 강한 이미지가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부담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투윅스’를 통해서 그런 이미지를 벗을 수 있는 계기를 맞은 것 같다. 연기라는 게 어차피 본인만의 세계, 색깔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기에 앞으로 그런 부분에 집중하려 한다.

Q. 2010년 MBC ‘동이’, 2011년 ‘하이킥’을 거쳐 ‘투윅스’까지. 배우로서 화제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작품을 연이어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박하선: 배우에게는 정말 필모그래피에 명작을 남기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사실 목표가 없으면 쉽게 무언가를 시작하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연기는 스무 살이 넘은 이후에 도전하려고 했었다. 근데 우연한 계기(박하선은 2005년 초 영화 ‘키다리 아저씨’의 배우 무대 인사를 찾아간 극장에서 하지원의 매니저로부터 제의를 받아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를 통해 이 길을 걷게 되면서 너무 빨리 꿈을 이룬 감이 있다. 특히 내가 가진 모든 걸 쏟아 부었던 ‘하이킥’을 마친 후에는 꾸준히 연기해온 것에 대한 성취감도 있었지만, 허탈함도 느꼈다.

Q. 그런 감정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는 게 절실했겠다.
박하선:
계속 나 자신에게 물었다. ‘정말 너가 하고 싶은 게 뭐니?’라고. 올 초까지도 계속 고민하다가 ‘투윅스’에 들어오기 전에 답을 찾았다. 나는 배우가 되고 싶었고, 연기하며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거다. 인기는 있다가도 없는 것 아닌가(웃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건 연기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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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스타보다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인가.
박하선: 물론 스타가 안될 수는 없다. 대중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대중성을 항상 안고 가야 한다. 너무 배우의 이미지만 고집하지는 않겠다는 의미다.

Q.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투윅스’ 이후의 행보가 더 궁금해진다.
박하선: 다른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없다. 나라는 사람이 연기하는 한 아예 다를 수는 없지 않나(웃음). 다만 조금이라도 다르면서, 여태까지 보여드린 적이 없는 이미지를 보여드리고 싶다. 남자 같은 여자, 싹수없는 여자, 로맨틱 코미디 등, 아직 보여드릴 게 많다(웃음).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