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동원의 씨네컬 문화읽기, ‘잃어버린 얼굴 1895’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985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 공연 장면.

명성황후의 삶은 격랑의 한국 근현대사와 맥을 같이 한다. 왕후로 간택된 이후 시아버지 대원군과의 첨예한 대립을 시작으로 임오군란, 갑신정변 그리고 비극적인 그녀의 죽음을 가져온 을미사변이 일어났으니 말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일련의 사건은 명성황후를 둘러싼 세간의 평가를 크게 엇갈리게 한다. 그녀를 ‘조선의 마지막 국모’라고 부르는 이가 있는 가하면, ‘천하의 악녀’라는 비난을 퍼붓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명성황후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나 영화, TV 드라마, 뮤지컬(명성황후, 1995년 초연) 심지어 무용극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장르의 작품들은 한결같다. 부정적인 측면보단 조선의 왕후 혹은 국모로서의 긍정적인 면만을 부각하고 경복궁에 들이닥친 일본군의 칼에 비극적인 죽음을 당하는 역사적 사실(을미사변)을 가장 극적인 장면 혹은 에필로그로 설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작품들에 비쳐진 명성황후의 모습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야욕에 희생된 점만이 강조될 수밖에 없으며, 그에 따라 그녀에 관한 역사적 평가는 일견 한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 들어 명성황후라는 인물을 새로이 해석한 뮤지컬이 등장했다. 바로 서울예술단에서 새로이 올린 ‘잃어버린 얼굴 1895’(2013)인데, 여타 장르의 작품들은 물론이거니와 전작 뮤지컬 ‘명성황후’와도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영화 그 이상의 매력

불꽃처럼 나비처럼그럼 ‘잃어버린 얼굴 1895’가 전작 뮤지컬을 비롯해 명성황후를 주인공으로 한 여타 장르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이를 살펴보는 데에는 아무래도 대중에게 가장 접하기 편한 매체인 영화와의 비교 분석이 나을 듯 하며, 그 한 예로 명성황후를 주인공으로 한 가장 최근 개봉작 ‘불꽃처럼 나비처럼’(2009)을 꼽을 수 있다. 분명한 건 ‘불꽃처럼 나비처럼’과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은 명성황후를 소재로 한 영화와 뮤지컬 분야에서 각기 최신작이자 현대적인 관점으로 극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두 작품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다.

우선 영화 속 호위무사 무명(조승우)이 명성황후(수애)의 본명을 몇 차례 부르는 장면은 현대적인 표현방식이지만 흥미롭기보단 어색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명성황후의 목숨과 명예를 위해서 혈혈단신으로 수차례 대군(大軍)과 맞서 결국에는 비참한 최후를 마치는 장면도 좀처럼 감동이나 슬픔이 와 닿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건 바로 캐릭터 설정에서 개연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며, 그에 따라 극이 긴박하게 진행됨에도 관객에게 와 닿는 긴장감이 상대적으로 약했다. 게다가 당시의 시대상황을 현대적인 대사와 화려한 CG로 구성한 점도 오히려 관객에게 흥미와 볼거리보다는 지나친 각색으로 인해 극의 몰입을 저해하는 작용을 한 것 같다. 그리고 명성황후에 대한 캐릭터가 기존의 작품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즉 ‘불꽃처럼 나비처럼’ 역시 “명성황후는 기품이 있고 위급한 상황에서도 초연하며, 외세에 항거하다가 참혹하게 시해되었다”는 고정 이미지에서 전혀 달라진 게 없다.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985'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 공연 장면.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에 등장하는 황후의 모습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개연성있는 인물로 느껴졌다. 무대 위의 명성황후는 카리스마 넘치는 국모의 모습과 더불어 속 좁고 복수심 강한 부정적인 이미지도 함께 있다. 그 예로 극 중에서 명성황후는 자신을 험담한 백성을 가차없이 살해하는가 하면, 신변의 위협을 받지 않기 위해 사진 한 장 찍으려 하지 않는 세심하고 소심한 면을 보이고 있다. 즉, 무대 위의 명성황후는 기존의 정형화된 존재가 아닌 객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인물이자, 어째서 그녀가 역사적으로 대조적인 양극단의 평가를 받게 됐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여기에는 뮤지컬만의 장점인 절규하는 듯한 명성황후(차지연)의 열창도 한 몫 했다. 황후로서의 위엄과 상처입은 여인의 느낌이 연기와 노래로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카리스마 넘치는 대원군(금승훈)과 나약하면서도 냉소적인 캐릭터를 잘 살린 고종(박영수)의 연기는 마치 연극 무대를 보는 듯,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끝으로 이 뮤지컬에서 한 가지 아쉬운 건 무대장치가 단조롭다는 것. 다양한 조명장치로 장면에 맞는 분위기를 연출한 것은 좋았으나, 아무래도 한계가 보였다. 그렇지만 상관없다. 개연성 있는 인물 설정에다가, 긴장감 넘치는 극적 구성, 그리고 연극무대를 방불케 하는 배우들의 열연과 전문 무용수들이 펼치는 역동적인 군무만으로도 무대장치의 아쉬운 점을 충분히 극복하고도 남았으니 말이다.

씨네컬은 시네마(Cinema)와 뮤지컬(Musical)을 합성한 말로, 각기 다른 두 장르를 비교 분석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편집자주>

글. 문화평론가 연동원 yeon042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