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인칭 관찰자 시점] ‘로지’, 막다른 골목에서 오도카니

[텐아시아=박미영 작가]

영화 ‘로지’ 스틸컷.

*이 글에는 로지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동동거리다. ‘로지’를 보는 내내 심장에 찰싹 들러붙던 단어다. 마치 ‘동동거리다’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휘휘 풀어놓은 것만 같은 영화다.

아일랜드 더블린. 로지(사라 그린 분)와 존(모 던퍼드 분) 부부는 집주인이 집을 내놓는 바람에 7년간 정붙이고 살았던 임대주택에서 4남매를 데리고 우르르 쫓겨난다. 이사를 갈 집을 구하지 못한 까닭에 로지는 남동생의 집에는 짐과 반려견을, 친구의 집에는 밀린 세탁물을 맡겨야 하는 신세다. 그들의 자그마한 자동차는 여섯 식구와 짐들로 휘청거린다.

해가 뜨면, 존은 식당으로 일을 하러 가야만 하고 로지는 어린 막내를 제외한 3남매를 차례로 등교시키고는 시에서 지원하는 호텔 리스트를 체크해 가며 가족실을 찾는 전화를 진종일 돌려야만 한다. 달이 뜨면, 로지가 수없는 전화 끝에 가까스로 얻은 호텔로 향한다. 그래 봤자 고작 하룻밤이다. 로지에게 달리는 차가 아닌 곳에서 마음을 내려놓을 여유를, 초를 다투듯 알아봐야 하는 새 집을 구할 여력을 가질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

매일 다른 곳에서 지내기에 로지는 아이들의 등교 시각을 딱딱 맞추기가 어렵다. 사실 아이들은 지각보다 더 힘든 일상을 감내하고 있다. 큰애 케일리는 자신을 암 환자처럼 보는 교사의 시선을, 둘째 밀리는 급우들이 ‘쉰내 밀리’라고 부르는 놀림조를.

끝내 로지의 가족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다. 전화 잔액이 다 되어서 통화는 불가하고, 음식점 직원에게 곧 문을 닫는다는 경고를 들으며 화장실에서 부랴부랴 세수를 마치고, 차들이 빠져나가서 공광한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서 밤을 맞이한다. 여섯 사람이 밤을 나기에는 좁디좁은 차에서 존은 조금이라도 공간을 내어주기 위해 하얀 거짓말을 내세우며 차를 나선다. 그리고 그는 멀리서 밤이슬을 맞으며 가족들을 지켜본다. 울먹한 로지는 큰애의 손을 잡으며 다 괜찮아질 거라고 읊조린다.

지난달 16일 개봉한 ‘로지’는 더블린 출신의 감독 패디 브레스내치와 작가 로디 도일이 빚어낸 작품이다. 어느 날, 집에서 라디오를 듣던 로디 도일의 마음을 끄는 사연이 하나 있었다. 남편이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도 집이 없어서 가족과 함께 하룻밤 묵을 곳을 찾으러 고군분투했다는 젊은 여성의 사연이. 그렇게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한 여성의 목소리는 로디 도일에 의해 ‘로지’의 목소리, 즉 서사로 일구어졌다.

“물량 부족과 임대료 급상승으로 민간 임대주택에서 내몰리는 저소득층 가족이 늘고 있습니다. 노숙자 구호단체에 의하면 아일랜드의 집 없는 가족 증가율이 유럽 최고로, 수백 가정이 긴급 거처를 찾고 있는데 이들을 받아주는 호텔 부족….” 영화 ‘로지’의 시작은 바로 이 라디오 방송이다. 그 방송을 뚫고, 방을 구하는 로지의 다급하고 간절한 목소리가 화면에 맺힌다.

존은 게으른 가장이 아니다. 그는 직장은 있으나 세를 감당할 수 있는 집을 구하지 못할 따름이다. 집이 있을 때는 호텔에서 자는 것이 부러운 적도 있었지만, 이러한 처지를 꿈꾸던 것은 아니다. 로지 역시 나태한 엄마가 아니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돼서 학교를 제대로 마치지 못했지만, 친정엄마와의 해묵은 갈등으로 등을 돌렸지만, 그녀는 아이들의 눈빛을 먼저 살피는 엄마다. 그녀는 식사마저 해결하기에 음식 냄새가 엉겨 붙은 호텔 객실에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잠이 든 가족을, 짐으로 불룩한 가방과 비닐봉지를 헛헛이 내려다본다. 로지는 적어도 사회에서 홈리스로 낙인 찍히는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다. 그녀가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는 한 오라기의 바람이다. 그래서 그녀는 누군가에게 쉽게 손을 벌리지도, 기대지도 않는 것이다.

로지의 가족에게는 ‘서로’가 있다. 서로를 향한 각별하고 애틋한 온기가 있다. 그렇지만 온 마음을 동동거리며 견딘 일상은 생채기로 얼룩덜룩하다. 울음을 삼키고 또 삼키느라 심장까지 습기가 차올랐다.

나는 암전이 된 스크린을 앞에 두고도 차마 일어설 수 없었다. 막다른 골목에서 오도카니 있는 로지가 쉬이 사라지지 않는 까닭에.

박미영 작가 stratus@tenasia.co.kr

[박미영 영화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한 작가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진위의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텐아시아에서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