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진희, “이게 제 모습의 전부라고 생각하세요?”(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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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었다. 새하얀 얼굴에 연갈색 빛 눈동자를 반짝이던 외면 뒤에 이토록 성숙한 내면이 자리하고 있었을 줄은. 얼마 전 종방한 MBC ‘금 나와라 뚝딱!’(이하 금뚝) 속 지고지순한 아내 몽현도,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하 하이킥)에서 자장면을 십 초 만에 흡입했던 취업준비생도 배우 백진희의 모습이 아니라면, 과연 그녀의 정체가 무엇이란 말인가. 혼란스러운 마음에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릴 때쯤, 그녀는 의외의 사실을 털어놓는다. 초등학생 때부터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즐겨 봤다며 ‘시사매거진 2580’, ‘PD 수첩’ 등 프로그램의 이름을 줄줄 외더니, 영화 ‘반두비’ 출연을 계기를 묻는 말에는 영화의 다양성 결핍이 낳은 문화 편식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한 표정으로 꺼내놓는다. 그제야, 무릎을 탁 치며 깨닫게 됐다. 앳된 외모 속에 감춰진 진중함, 그 의외성이 배우 백진희의 묘한 매력의 원천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금뚝’으로 배우로서 한 단계 성장을 이룬 백진희는 얼마 뒤 MBC 새 드라마 ‘기황후’의 타나실리 역으로 새로운 연기 변신에 도전한다. “한계를 규정짓는 게 싫다”고 말하는 그녀의 단호한 어투에는 배우의 길을 택한 것에 대한 확신과 간절히 꿈을 그리는 사람의 진정성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Q. ‘금뚝’의 몽현은 가히 백진희의 재발견이라고 할 만하다. 긴 호흡, 많은 등장인물 등 악조건 속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분명히 드러내는 성과를 거뒀다.
백진희: 처음에 ‘금뚝’을 시작할 때부터 걱정이 많았다. 등장인물이 워낙 많기도 했고, 몽현이 무척 조심스러운 성격이다 보니 자칫하면 캐릭터가 묻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몽현의 이야기를 밋밋하지 않게 풀어보자’는 마음 하나로 시작했었던 게 나름대로 성과를 거둔 것 같다.

Q. ‘몽현-현태’ 커플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 애틋함과 풋풋함을 오가는 장면에서는 마치 MBC ‘우리 결혼했어요’를 보는 듯한 착각도 불러일으켰다.
백진희: 호흡이 잘 맞았다(웃음). 대본을 보고 전화통화도 많이 했다. 대본에 없는 내용까지 서로 아이디어를 내면서 캐릭터를 잡아나가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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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특히 몽현을 연기하며 집중했던 부분이 있는가.
백진희: 현태는 애정결핍이 있는 캐릭터였다. 평탄한 가정에서 언니 몽희(한지혜)의 희생 속에 사랑을 받으며 자란 몽현과는 정반대다. 몽현과 현태는 조금 다른 형태의 정략결혼이라고 생각한다. 복잡한 가정사가 얽힌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풀어가는 동시에, 몽현이 현태를 정신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인물로 그려내고 싶었다. 몽현은 원래 지금처럼 사랑스러운 여자가 아니었다. 사실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는 캐릭터였다(웃음). 대본을 읽으면서 연애 한 번 못해본 풋풋한 여자로 사랑스럽게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Q. 어린 나이에 철없는 신랑을 돌보고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게 되는 몽현이 풀어내기 쉬운 캐릭터는 아니었겠다. 경험해보지 않은 감정을 표현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나.
백진희: 역할을 맡게 되었을 때부터 ‘잘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앞섰다. 처음에는 결혼과 출산이라는 경험해보지 않은 일들로부터 느껴지는 감정이 공감하기 어렵더라.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감을 잡았던 것 같다.

Q. 중반부에 탄력을 받았던 ‘몽현-현태’ 커플의 이야기가 후반부에 들어 비중이 줄었다. 더불어 몽현의 캐릭터마저 옅어져 가는 느낌을 받았다. 아쉬움은 없나.
백진희: ‘금뚝’이 ‘몽현 나와라 뚝딱!’은 아니지 않나(웃음). 사실 현태와의 관계가 정리되면서 캐릭터가 소실된 느낌은 있다. 아쉬움은 남지만, 나 자신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Q. 더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었나.
백진희: 원래 몽현은 굉장히 진취적이고 강단이 있는 여성이었다. 좀 더 신혼생활 이야기가 다뤄졌다면, 그 안에서 몽현의 캐릭터를 선명하게 그려낼 수도 있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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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극 중의 몽현이 아닌 당신이 본 ‘금뚝’의 메시지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백진희: ‘금뚝’에 등장한 수많은 인물처럼 우리는 모두 인생의 풍파를 겪는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커다란 무언가를 바라는 것보다도 일상의 소소함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걸. ‘금뚝’의 금이 ‘인생’이라면, 결국 작품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평범한 우리의 삶이 금이다’라는 것 일거다.

Q. ‘금뚝’을 통해 ‘하이킥’이 남긴 시트콤 이미지를 탈바꿈하는 성과를 거뒀다.
백진희: 이형선 PD도 처음에는 나를 캐스팅하면서도 반신반의했을 거다. 워낙 ‘하이킥’ 때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지 않았나(웃음). ‘하이킥’을 끝내고 나서 연기에 대한 갈증을 많이 느꼈다. 캐릭터에 갇혀서 연기적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고, 톤 조절이 미숙해서 아쉬움이 컸다. 쉬면서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금뚝’을 하며 이형선 PD가 자유롭게 내 역량을 펼칠 기회를 제공해주었기에 이런 성과를 거둔 것 같다.

Q. ‘하이킥’을 하며 느꼈던 한계라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일종의 슬럼프 같은 건가.
백진희: 뒷심이 부족하다는 것? 긴 호흡의 작품을 할 때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그 느낌이 내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하이킥’처럼 호흡이 길고 빠른 작품은 처음 해봐서 어려움이 많았다. 연기력의 한계도 느꼈지만, 화면에 비치는 모습만 조명되다 보니 마지막엔 ‘배우 백진희’가 아니라 ‘캐릭터’만 남더라.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인가?’하는 생각에 자존감도 바닥을 쳤다. 지금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다. 아마도 배우 생활을 해나가며 계속해서 느끼고, 고민해나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Q. 독립영화부터 시트콤, 주말극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소화하면 쌓인 연기력이 이제야 빛을 보는 것 같다. 배우로서의 성장이 느껴지는가.
백진희: 영화 ‘반두비’를 찍을 때 호평을 받았지만, 솔직히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즐거운 마음 하나로 했다(웃음). 제작진과 합심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정말 대단한 재미를 느꼈다. ‘하이킥’이 대중적 인지도를 쌓을 수 있었던 작품이라면, 영화 ‘무서운 이야기2’는 연기인생의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달 반 정도를 혼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과 씨름을 하다 보니 연기적으로 많은 것을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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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느덧 데뷔 6년 차 배우가 됐다. 또래 배우들과 같은 틀에 박힌 배역보다는 작품마다 다른 역할을 소화해내는 게 인상적이다.
백진희: 우연한 기회에 배우의 길로 들어서게 됐지만, 사실 한 번도 배우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카메라 앞에서 완전히 다른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그것만큼 매력적인 일이 어디 있겠나. 배우라는 직업이 연기를 통해서 평가받는 일이고, 직업적인 측면에서 대중성, 상업성을 배제하고 갈 수는 없다. 다만 연기를 하면서 나 자신이 그런 평범함으로 규정지어지는 건 싫다. 대중과의 접점을 찾아가는 균형감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Q. 배우를 꿈꾸던 열아홉 살  소녀가 어느덧 이십 대 중반에 들어선 여인이 됐다. 기분이 남다를 듯한데 어떤 사람,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나.
백진희: 사실 나는 아직도 열아홉 살 때와 지금이 뭐가 다른지는 잘 모르겠다(웃음). 막연하게 어릴 때는 빨리 결혼을 하고 싶었다. 근데 일을 하다 보니 ‘결혼은 현실’이라는 진리를 깨닫고 있다. 직업적으로 안정감이 생겼을 때 결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 ‘인생혁명’이라는 책을 읽다가 “내 불행이 누군가에게 행복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글귀를 발견했다. 무척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런 사람으로, 그리고 믿고 보는 배우로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고 싶다(웃음).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