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쇼의 세계│스타와 토크쇼, 전략적 M&A

지금 예능의 대세가 리얼 버라이어티라면 그 못지않은 대세의 한 축은 토크쇼다. 연예인들은 홍보를 위해, 재기를 위해, 이미지 쇄신을 위해, 개인사에 대한 해명을 위해 토크쇼를 찾는다. 그리고 MBC 와 ‘무릎 팍 도사’, ‘라디오 스타’는 범람하는 토크쇼들 가운데서도 가장 뚜렷한 콘셉트와 영역을 지닌 프로그램들이다. 에서 이들 토크쇼를 중심으로 보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변화를 읽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토크쇼에 출연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연예인을 위한 프로그램 사용 설명서와 어느 사연 많은 스타의 토크쇼 가상 체험기도 함께 담았다.

최근 MBC <황금어장> ‘무릎 팍 도사’(이하 ‘무릎 팍 도사’)에는 영화배우 박중훈이 출연했다. 영화 <해운대>의 개봉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의 홍보를 위해 주연 배우 혹은 감독이 토크쇼에 출연하는 것은 아주 흔한 경우다. 하지만 박중훈과 ‘무릎 팍 도사’의 만남이 아이러니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박중훈은 지난해 12월부터 올 4월까지 KBS <박중훈쇼, 대한민국 일요일 밤>(이하 <박중훈쇼>)의 MC였다. 장동건, 김태희 등 그의 영화계 인맥을 통한 화려한 출연자가 줄줄이 등장했지만 <박중훈쇼>는 낮은 시청률과 혹평 속에 고전하다 17회 만에 막을 내렸다. 방송 당시 박중훈은 “우리는 너무 무례한 시대에 살고 있다. 게스트의 멱살을 잡거나 면박을 주면서 통쾌해하고 불편할 만큼 모든 사실을 다 밝힌다”며 우회적으로 ‘무릎 팍 도사’를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결국 실패한 토크쇼의 주인공 박중훈은 ‘무례한’ 토크쇼에 나와 “무례함과 예리함의 기준을 묻고 싶다”는 강호동에게 “전쟁 모드로 나오시는데 저는 우정 모드로 하고 싶다”는 화해의 제스처를 취해야 했다.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세? 토크쇼는 죽지 않는다

연예인들이 인지도나 인기를 높이기 위해 토크쇼에 출연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예능의 대세가 된 리얼 버라이어티와 달리 토크쇼는 아주 고전적인 형태의 쇼다. 90년대에는 <이홍렬쇼>나 <김혜수 플러스 유>처럼 한 명의 연예인을 초대해 대화를 나누는 토크쇼가 인기를 끌었지만 방송 환경의 변화는 한 때 <서세원쇼>의 ‘토크박스’같은 집단 토크쇼를 유행시켰고 이후 <상상 플러스>나 <세바퀴>처럼 퀴즈와 토크를 결합시킨 프로그램들도 만들어냈으며 <야심만만>은 차트를 이용한 토크쇼로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미녀들의 수다>는 젊은 외국인 여성들의 집단 토크쇼라는 독특한 콘셉트로 꾸준한 시청률을 내고 있으며, ‘쟁반 노래방’이라는 코너로 인기를 끌었던 <해피 투게더>는 찜질방으로 배경을 옮겨 코믹한 분위기의 토크를 주도한다. <샴페인>은 동료 연예인에 대한 험담이나 과거의 연애사 폭로로 몇 차례 구설수에 오른 토크쇼다. 그리고 MBC <놀러와>와 <황금어장> ‘무릎 팍 도사’와 ‘라디오 스타’는 이토록 다양한 토크쇼 가운데 단연 뚜렷한 콘셉트와 영역으로 성공을 거둔 프로그램들이다.

‘무릎 팍 도사’, ‘라디오 스타’, <놀러와>의 3파전

최근 “톱스타보다는 한물간 톱스타, 잘나가는 그룹의 인기순위 꼴찌들, 정말 열심히 사는데 가끔 엄마도 본인의 안티 같은 분들, 환영합니다”라는 독하지만 솔직한 멘트로 프로그램 성격을 새삼스레 알린 ‘라디오 스타’는 시작부터 ‘고품격 비주류전문방송’을 표방했다. ‘무릎 팍 도사’가 출연자의 민감한 사안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며 심경 고백이나 눈물을 이끌어냈던 것과 달리 ‘주류에서 밀려난(김국진), 주류가 못 된(윤종신), 주류가 싫어한(김구라), 주류가 버린(신정환)’ 네 명의 ‘라디오 스타’ MC는 연예인에게 돈, 스캔들, 싸움을 비롯한 각종 루머를 술자리 잡담처럼 태연하게 던지면서 분위기를 만들었다. 심지어 MC 김국진의 아픈 과거였던 이혼도 ‘라디오 스타’에서는 도마 위에 올라온 생선처럼 무수히 회쳐지고 놀림거리가 되었으며, 결국 이승철이나 룰라의 이상민 등 이혼을 겪은 다른 출연자들도 이혼을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 처럼 자연스레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최고의 MC였던 신동엽에게는 예능 PD인 부인과의 결혼 후 “웃음을 잃었다”며 놀려대고, 아이돌에게는 “연애 얘기를 해 보라”며 다그치고, 오랜 공백을 겪은 뮤지션에게는 “그동안 뭐 해서 먹고 살았냐”고 묻는 ‘라디오 스타’에서는 위선이나 가식이 통하지 않는다. 대신 ‘너도 쌈마이, 나도 쌈마이’ 라는 ‘라디오 스타’ 특유의 분위기는 다른 토크쇼에서 영화 <썸머 타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당혹스러워하며 말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던 룰라의 김지현이 “케이블 틀면 너무 많이 나온다”며 솔직하게 민망해할 수 있을 만큼의 공평한 발언권을 준다. 그래서 인기가 떨어졌어도, 미모가 예전만 못해도, 사고를 좀 치고 살았어도 그 모든 것이 토크쇼의 가벼운 안주거리로 놓이는 ‘라디오 스타’는 추억의 스타들을 다시 방송으로 불러냈고 그들에 대한 인간적인 관심을 이끌어내 새로운 작품이나 활동으로 연결시키기도 한다.

<놀러와>는 ‘무릎 팍 도사’나 ‘라디오 스타’와는 또 다른 영역에 있는 토크쇼다. ‘무릎 팍 도사’만한 출연자를 매주 섭외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라디오 스타’만큼 자극적이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제작진들은 ‘기획 섭외’와 ‘골방 토크’라는 소스를 만들어냈다. 언뜻 보면 억지스러워 보이는 ‘왕 특집’, ‘탤가맨 특집’ 등은 유재석, 김원희의 편안하면서도 섬세한 진행으로 그 조합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냈고, ‘홍보조차 홍보로 보이지 않게 만드는’ <놀러와>는 게스트의 폭을 유동근이나 임호 같은 중장년층 배우까지로 넓히면서 톱스타는 아니지만 대중에게 친숙한 연예인들이 신선한 이미지를 얻어 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힙합 신의 맏형 타이거 JK는 <놀러와>의 ‘<윤도현의 러브레터> 특집’을 통해 중년 이상의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고, 그의 후배 랍티미스트의 어머니 역시 <놀러와>에서 타이거 JK를 보았던 기억으로 인해 아들의 음악 활동을 막지 않았다.

‘맞춤형 토크쇼’ 시대, 토크도 전략이다

그러나 모든 연예인이 자신이 원하는 토크쇼에 출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토크쇼들이 늘어나고 분화되면서 연예인들을 분류하는 기준 역시 보다 명확해졌다. 이를테면 <천하무적 야구단>에서 PD를 향해 스스로 ‘A급’이라 주장했던 임창정이 지금 토크쇼에 출연한다면 아무래도 ‘무릎 팍 도사’ 보다는 ‘라디오 스타’에 잘 어울릴 것이다. 아이돌 그룹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가수들 역시 그룹 해체 후 솔로 활동에서는 <놀러와>나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다. 과거에는 연예인의 스타성이라는 지표가 X파일처럼 ‘업계’에서만 암암리에 돌아다녔던 데 비해 토크쇼들이 시청자의 눈높이에 맞추어지며 그 내역이 투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이러한 토크쇼들의 변화는 연예인 스스로가 시장 혹은 대중적 트렌드에서 자신이 점하고 있는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살아남는 구조로 바뀐 셈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더 유명한 토크쇼에 나가느냐가 아니라 지금 자신에게 맞는 토크쇼를 찾는 일이다. 최근 ‘라디오 스타’를 통해 9집 앨범 발매를 알리며 과거의 팬들을 향수에 젖게 만들었던 룰라의 경우, 아마도 이상민이 ‘무릎 팍 도사’에 출연해 이혼의 아픔을 이야기하거나 김지현이 <썸머타임>으로 인한 상처를 털어놓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인 결과를 얻었을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토크쇼가 스타와 TV의 밀월 같은 만남에 그쳤다면 현재의 토크쇼, 특히 <놀러와>와 ‘무릎 팍 도사’, ‘라디오 스타’ 같은 프로그램들은 스타에게 스토리를 부여하고 이미지 컨설팅을 돕는다. 매체 인터뷰보다 토크쇼 출연이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에게 노출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연예인들 역시 어떤 토크쇼에 나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를 전략적으로 고민한다. 지난 해 앨범 활동으로 컴백했던 비는 이러한 토크쇼들을 가장 영리하게 활용했던 스타다. 그는 ‘무릎 팍 도사’를 통해 ‘월드 스타’로 불리기 전 자신의 힘들었던 시절을 털어놓았고 <해피 투게더>와 <야심만만>에서는 적당히 풀어진 이미지와 젊은 남성으로서의 매력을 드러냈다. 그에 비해 영화 <슬픔보다 슬픈 이야기>의 홍보차 ‘무릎 팍 도사’에 출연했던 권상우는 그 직후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상상 플러스>와 <놀러와> 출연을 번복하며 논란을 빚는 바람에 이미지 쇄신의 기회를 놓쳤다. 물론 ‘무릎 팍 도사’의 최대 수혜자는 최근 UFC에 진출한 추성훈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재일교포 출신 격투기 선수로만 알려져 있던 그는 ‘무릎 팍 도사’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고 로맨틱한 사랑 노래를 부르며 단숨에 국민적 스타로 떠올랐다. 그 후 그에게 쏟아진 광고 계약만 보더라도 ‘무릎 팍 도사’는 가히 인생 역전의 순간이었다. 그래서 지금, 잘 만든 토크쇼는 스토리가 있는 광고이며 그 사람에 대한 한 시간짜리 PPL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맞춤형 토크쇼’의 시대에 연예인과 제작진의 머리싸움이 복잡해져 갈수록 마지막에 웃는 것은 아마 시청자들일 것이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