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인터뷰] ‘어린 의뢰인’ 유선 “고통스런 악역 연기, 사회 변화를 위해 용기 냈죠”

[텐아시아=유청희 기자]

영화 ‘어린 의뢰인’의 주연 배우 유선./사진=이스트드림시노펙스

“힘 있는 영화가 되길 바랐어요. 이해될 수 없는 인물이지만 그조차 우리의 책임이라는 점을 내 몸으로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칠곡 아동학대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어린 의뢰인’(22일 개봉)에서 아이들을 학대하는 새 엄마 지숙 역을 맡은 배우 유선의 목소리는 단단했다. 한 아이의 엄마이자  2017년 아동학대 예방 홍보대사로 활동했던 그는 자신의 뜻과는 반대되는 학대 가해자 역을 맡아 열연했다. 2012년 영화 ‘돈 크라이 마미’에서는 성폭력 피해를 당한 딸을 위해 싸우는 엄마를 연기하기도 했다. 현재 방송 중인 KBS2 주말극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에서는 워킹맘의 고충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 시청률을 견인하고 있다. “내 직업을 통해 사회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그건 기회”라는 유선을 만났다. 

10. 힘든 연기였을 텐데 촬영은 어땠나? 

유선: 내 분량이 대부분 어두웠다. 악역인데 상대 배우가 아이들이라 늘 마음이 무거웠다. 촬영을 하면서도 아이들이 자꾸만 걱정됐다. 내 일만 생각하기에는 상대 배우가 아이니까, 그걸 배려하고 신경써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다. 아이들이 사랑받으면서 자라야 한다는 걸 실감하는 엄마이자 배우로서, 아이들이 보호받길 원하는 마음으로 출연했다.

10. 학대 받는 연기를 하는 아역들을 위해 촬영 현장에 심리상담사를 모셨다고 들었다. 그런데 어두운 주제를 연기하는 성인 배우에게도 위로의 순간이 필요했을 것 같다. 

유선: 안 그래도 누가 ‘어른 배우도 심리 상담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라고 묻더라. 그때 처음으로 ‘아, 맞아 우리도 필요했는데’ 했다. 학대 가해자 연기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 이게 막중했다. 그런데 마침 정말 힘들 때 김혜수 선배한테 안부 문자가 왔는데, 그게 그렇게 큰 도움이 됐다. ‘드라마와 영화 다 찍느라 힘들고 바쁜 것 같다’는 문자였다. 내가 감사 인사를 전화로 드렸는데 거기서 (울음이) 터져서 엉엉 울었다. 대화를 하다가 운 게 아니라 ‘요즘 많이 힘들죠?’ 하는데, 거기서 막 오열을 했다. 선배님은 영문도 모르고 전화기 너머로 같이 울어주시고···.

10. 같이 울어준 데서 힘을 받은 건가?

유선: 그렇다. ‘정말 힘들었구나’ 하면서 울어주시는데 그게 정말 힘이 됐다. 내가 지금 두려운데, 선배를 보니 힘이 났다. 김혜수 선배가 화면을 장악하는, 거대한 힘이 있는 배우이지 않나. 전화를 받았을 때가 아이들과 힘든 촬영을 하기 직전이었다. 압박감이 클 때였는데 덕분에 용기를 내서 촬영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어쩌면 나한테도 내 얘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지 않았나 싶다. 큰 힘을 받고 촬영하게 돼 감사하다. 

영화 ‘어린 의뢰인’ 스틸컷.

10. 악역인 지숙은 처음엔 잘 정리된 웨이브 머리로 등장한다. 전형적인 여성상을 보는 것 같았다.

유선: 첫 등장 때는 아이들이 상상하던 계란형의, 긴 머리를 가진 엄마의 모습을 표현하려고 했다. 아이들에게 ‘아, 우리에게도 엄마가 왔어’ 하는 느낌이 들도록 하자고 감독님과 대화했다. 첫 만남에는 흰 원피스를 입었는데 이후에는 어두운 색깔로만 입어서 아이들에게 등장한 그림자처럼 지숙을 표현하려고 했다. 지숙은 법대를 나왔다고 사기를 치고 다니는 인물이다. 자신을 가식적으로 꾸밀 줄 아는 인물로 표현하고 싶었다. 기존의 ‘새 엄마’라고 하면 강할 것 같은 그런 이미지보다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렇지 않은 이중적인 엄마를 표현하고 싶었다. 겉으로는 평범하고 예쁘고 정갈하지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

10. 장규성 감독이 현장에서 아역들에게 ‘이건 연기야’라는 말을 제일 많이 했다고 말했다. 성인 배우로서도 아이들을 챙겨야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을 것 같다.

유선: 아무래도 내가 그런 자리에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약속을 잘 지킨다고 해도, 촬영장에서는 누가 다칠 수도 있는데 그런 것들이 눈에 자꾸 보였다. 내가 엄마 역할을 많이 했지 않나. 엄마 역을 할 때마다 아이가 하나씩 생기는 거라, 아역 배우들과 연기를 많이 했다. 그때마다 아이에 대한 연기를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몫이 내게 주어졌다고 혼자 생각했다. 특히 감정 연기는 더 그랬다. 아이들도 힘들어할 때가 많다. 집중하지 않으면 나오지 않으니까. 그런 감정을 그때마다 끌어내주는 일을 해야지 아이들이 덜 지칠 거라 생각해서 함께하려고 노력한다. 이번에는 공포에 짓눌린 역할을 하는 아이들이, 금방 촬영을 마치게 하고 환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내 역할인 것 같았다.

10. 2012년 ‘돈 크라이 마미’에도 출연했고, 현재 출연하는 드라마도 분위기는 밝지만 워킹맘을 둘러싼 사회적 문제를 보여주기도 한다. 영화가 사회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나?

유선: 그렇다.‘돈 크라이 마미’를 할 때도, 미성년자 성폭행범에 대한 처벌이 약하다는 걸 알게 됐다. 영화를 통해서 사람들이 법의 문제점을 바라봐줬으면 했다. 이번에는 아동학대에 대한 처벌과 형벌이 너무 낮은 게 안타까웠다. 실제로 아동학대에 대한 신고가 들어와도 손을 댈 수 없는 경우가 영화에서도 묘사된다. 그게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허구의 이야기로ᅠ재미를 주는 것도 좋은 영화지만, 그런 현실을 바라보게 하는 것도 영화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아동학대 예방 홍보대사가 되기 전까지는 모르던 게 많았다. 영화를 통해 더 가까운 문제로 인식하지 않을까 한다. 

배우 유선은 “영화가 사회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걸 믿는다”고 말했다./사진=이스트드림시노펙스

10. 뜬금없지만,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후배 배우들에게 ‘언니 같은 매력’으로 어필한다고 했다. 언니 같은 매력은 구체적으로 뭔가?

유선: (웃음) 뭐랄까. 어느 순간부터 내가 선배 연기자가 됐더라. 나이로는 내 밑으로 연기자들이 더 많아졌다. 내가 그들에게 어렵지 않은 선배였으면 하고, 편안하게 언제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한다. 특히나 여자 배우들에게 더 그렇다는 거다. 배우로서 연기에 관한 고민도 있겠지만 자신의 삶 가운데 고민들도 많다. 그런 걸 딱히 나눌 만한 상대가 생각보다 없으니까. 그런 속 얘기를 하고 싶을 때 내가 먼저 건네는 조언으로 누군가가 힘을 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런 한 마디 한 마디가 힘을 줬으면 하는 소망이다. 따뜻하고 때때로 기대고 싶고, 하소연할 수 있는 그런 언니이고 싶다.

10. 공교롭게도 현재 출연하고 있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에서도 엄마 역할이다. 엄마 역할 말고 액션이나 멜로 등 다른 것이 하고 싶진 않나?

유선: 그렇찮아도 거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여자 형사. 몸을 쓰는 현장직을 해보고 싶다. 이번 영화와 다른 정의로운 역할 말이다. (웃음) 모성애라는 게 여자 배우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긴 한 것 같다. 부성애와도 또 다르고, 모성애가 주는 힘이 있다는 것도 공감한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표현해낼 수 있는 역할과 감정들이 너-무 많다. 너무 모성을 부각하는 역할들만 많은 게 아닌가 아쉽기도 하다. 진짜 깊은 사랑에 빠지는 멜로도 해보고 싶고, 때로는 정말 남자들만 있는 세상에 힘 있는 존재로 우뚝 서 있는 캐릭터도 해보고 싶다. 정치, 경제를 쥐락 펴락하는 인물 말이다. 그런 역할은 주로 남자들인데, 왜 여자 배우로 세울 생각을 못할까. 생각이 확장이 된다면 세상에 더 재미있는 캐릭터들이 많아질 것 같다.

10. 2001년 데뷔해 스릴러와 주말극을 오가며 늘 도전하고 있다. 배우로서의 꿈이 궁금하다. 

유선: 오래 연기하는 거다. 평생을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이게 모든 배우의 바람이고 꿈이겠지만 동시에 가장 힘들다. 한 사람으로서도 잘 살아가고 싶고, 연기에서는 늘 신뢰감을 주는 배우이고 싶다. 현장에서도 같이 작업하고 싶은 그런 배우였으면 하고.ᅠ주말극을 통해 선생님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저 분들은 어떻게 저렇게 현직으로 오래 일을 하실 수 있는 걸까?’하면서 선생님들을 옆에서 지켜 본다. 그러면 그분들의 인품과 연기에 대한 열정이 보인다. 계속 배우면서 목표를 멀리 두고 있다. 그렇게 보고, 가고 있다.

유청희 기자 chungvsky@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