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리뷰] ‘벤 이즈 백’, 아들도 어머니도 삶이 촛농처럼 녹아내린다

[텐아시아=박미영 기자]

영화 ‘벤 이즈 백’ 포스터.

*이 글에는 벤 이즈 백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교회에서 홀리(줄리아 로버츠)는 레이시와 리암이 참여하는 성극 리허설과 아이비(캐서린 뉴턴)가 청아한 목소리로 찬송을 부르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본다. 3남매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홀리는 큰아들 벤(루카스 헤지스)과 마주친다. 심각한 약물 중독으로 재활원에 있는, 내일 면회를 가서 만나려고 했던 벤이 불쑥 찾아온 것이다.

반려견 폰스를 비롯해서 모두들 벤을 반기지만, 벤과 아이비에게는 의붓아버지인 닐(코트니 B. 반스)은 벤이 여기에서는 자제가 안 된다며 재활원으로 돌아갈 것을 권고한다. 홀리의 간곡한 설득으로 벤에게 집에서 가족들과 지낼 수 있는 하루가 주어진다. 우선 약물 검사를 통과하고, 여기서 절대 약을 안 하고, 내일 재활원으로 돌아가는 조건으로. 홀리는 벤에게 단호하게 말한다. “엄마 눈에서 벗어나지 마. 24시간 동안 넌 내 거니까.”

벤은 홀리와 함께 찾아간 약물 중독자 모임에서 말한다. 77일째 견디고 있고, 무사히 78일을 넘기고 싶노라고. 지난여름 계단에서 팔에 주사를 꽂은 채로 기절했는데 자신을 깨운 개(폰스)와 엄마 덕분에 이렇게 살아있다고. 홀리의 가족이 교회의 성탄 예배를 가느라 집을 비운 사이, 누군가가 침입해서 폰스를 데려간다. 홀리는 폰스를 되찾아오겠다는 벤에게 유기견으로 데려와서 이만큼 키웠으니 포기하자고 한다. 그러나 벤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다섯이고 폰스는 두 명 분이라고 답한다. 또한 자신을 노리는 누군가로 인해 엄마와 가족들이 더한 일을 겪을지 모르므로 이 일을 직접 수습하겠다며 나선다.

영화 ‘벤 이즈 백’ 스틸컷.

지난 9일 개봉한 ‘벤 이즈 백’은 긴 시간 어머니가 알코올 중독이었던 피터 헤지스 감독 자신의 경험담이 투영된 작품이다. 그는 “나는 중독자 가족이 가지고 있는 불안함을 매우 잘 알고 있다. 엄마가 운전을 제대로 잘 할까? 닭튀김은 혹시 덜 익은 건 아닐까? 저녁 시간까지 과연 밥이 완성될까? 이건 가족의 역동성이 아니라 매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편하고 쉽게 느낄 수 있는 두려움이 지속되는 상태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길버트 그레이프’(1993)의 원작 소설과 각본, ‘어바웃 어 보이’(2002)의 각본으로 유명한 피터 헤지스는 이번 작품에서도 탄탄한 글(각본)의 힘을 보여준다.

‘벤 이즈 백’은 현재 미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인, 의사로부터 과잉 처방되고 약국에서 편하게 구할 수 있는 마약성 진통제 오피오이드(Opioid)의 심각성을 서늘하게 담아낸다. 벤이 홀리와 함께 차로 동네를 이동하면서 저기서는 약을 했고, 저기서는 퍽치기를 했고, 어머니가 암 환자라서 옥시코돈이 쌓여있는 역사 교사의 집에서 약을 구했다고 할 때 관객의 가슴도 미어진다.

루카스 헤지스는 ‘맨체스터 바이 더 씨’(2016) ‘쓰리 빌보드’(2017) ‘레이디 버드’(2018)처럼 매력적인 작품을 고르는 눈과 탄탄한 연기력으로 빛나는 배우다. 피터 헤지스와는 실제 부자지간으로 아버지의 작품에는 절대 출연하지 않겠다는 원칙이 있었지만, 줄리아 로버츠의 강력 추천과 좋은 시나리오가 그 원칙을 깨게 만들었다. 벤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괴로운, 약물로 친구를 끌어들여서 죽음에 이르게 한 일로 자책한다. 그리고 끝끝내 약물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어머니에게 “진짜 날 알았다면 진작 날 버렸을 걸”이라고 말한다. 루카스 헤지스는 벤의 휘청거리는 마음마저도 아릿하게 빚어낸다.

‘원더’(2017)를 잇는 어머니 역으로 돌아온 줄리아 로버츠는 짙은 호소력으로 홀리의 속마음이 울려들게끔 한다. 홀리는 나락에 빠진 벤에게서도 한 줌의 희망을 그린다. 그러나 결국 벤이 숨긴 약을 발견하고 허탈감에 묘지로 데려가서는 “너 어디에 묻힐래? 이런 식이면 죽어, 조만간”이라고 다그친다. 홀리는 14살 때 스노보드를 타다 다친 벤에게 중독성이 없다면서 진통제 투약량을 늘려서 벤의 인생을 망친, 지금은 치매에 걸려서 벤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의사와 마주치자 “비참하게 죽길 바랄게요”라고 쏟아붓는다. 줄리아 로버츠는 홀리의 절절한 마음을 저릿하게 빚어낸다.

홀리는 벤을 위로하기 위해, 지키기 위해 옳지 않은 선택도 한다. 어머니도 아들도 삶이 촛농처럼 녹아내린다. 그래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마침표가 아니라 물음표가, 혹은 느낌표가 되어서 관객에게 돌아올 것이다.

15세 관람가.

박미영 기자 stratus@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