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송프로젝트 권태은 “편곡귀신이라고? 형들(박진영 방시혁)에게 야단맞던 때가 그립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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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곡 귀신’이라 불리는 음악감독 권태은이 감독한 무대를 실제로 처음 본 것은 작년 1월 MBC MUSIC 개국행사 ‘음악의 시대’에서였다. 정훈희, 윤상, 김경호, BMK, 김조한, 크라잉넛, 임정희 등 서른일곱 명의 가수들이 모여 스물세 곡을 40여분에 걸쳐 끊지 않고 노래하는 초유의 프로젝트였다. 장대한 파노라마가 끝나자 가수들은 모두 부둥켜안았다. 장혜진과 바다는 감동에 복받쳐 눈물을 흘렸고, 당시 MBC MUSIC 남태정 센터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번쩍 들었다. 현장에 있던 관객들은 음악이 선사한 감동이 아쉬워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 방대한 편곡을 멋지게 해낸 이가 바로 권태은이었다.

권태은은 최근 10년 넘게 가요계의 제일선에서 일해 왔다. JYP의 수석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박진영, 방시혁과 함께 JYP 황금기를 일궜다. 또한 신승훈, 윤상 등의 콘서트 음악감독을 비롯해 ‘나는 가수다’, ‘보이스 코리아’, ‘슈퍼스타K’ 등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편곡자로 맹활약하며 동료 음악인들 사이에서 ‘편곡 귀신’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런 그가 ‘런치송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자신의 솔로앨범을 발표했다. 정신없이 달려온 그는 음악을 통해 쉼을 얻고 싶었다고 한다. 무엇이 그를 음악에만 매달리게 했을까? 횟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의 음악여정을 들어봤다. 자연스럽게 ‘음악의 시대’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

Q. ‘음악의 시대’ 공연을 실제로 본 감동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수십 곡이 하나로 이어지는 편곡이 대단했다.
권태은: 편곡보다 가수들 연습 스케줄 잡는 것이 더 힘들었다. 약 한 달 간 리허설을 했는데 서른일곱 명의 가수 전원이 빠짐없이 모인 것은 행사 당일이었으니까. 가수들이 무대에서 자기 노래를 1분30초 간 앞에 나와서 부르고 뒤로 가서 코러스까지 소화해야 했다. 즉, 스물세 곡을 전부 외워야 한다는 것이다. 카메라가 가수들 얼굴을 다 잡는데 뒤에서 합창 안 하고 있으면 얼마나 뻘쭘하겠는가? 처음에는 과연 이 공연이 가능할까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참여한 모두가 선후배 동료들의 노래를 다 외워왔더라.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Q. 참여한 가수들이 무척 격앙돼 보이더라. 살면서 또 그런 공연을 언제 해보겠는가?
권태은: 관객이 앞에 있는 상황에서 40분간 노래를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중간에 NG가 나면 어쩌나 걱정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두세 곡 넘어가자 가수들 긴장이 확 풀려서 자기들끼리 놀기 시작하더라. 그러면서 그림이 자연스레 나왔다. 재밌는 작업이라기보다 좋았다. 참여한 이들이 너무 행복해했다. 자기들도 그런 화학작용이 나올 거라는 예상을 못했을 거다. 아직도 그때 영상을 찾아보곤 한다. 주위 반응도 너무 좋았고, 의미가 깊었던 무대라 기회가 되면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

Q. JYP엔터테인먼트 수석 프로듀서 출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JYP에 들어가기 전에 프로 작곡가 생활은 어떻게 시작을 했나?
권태은: JYP에 들어가기 약 4년 전 90년대 후반에 작곡가 초년병 생활을 시작했다. 프리랜서라 배고팠던 시절이다. 초년병 시절에 디바, 샤크라, 핑클 리메이크 앨범 등에 편곡으로 참여했다. 입봉은 건축가로도 유명한 양진석의 3집 ‘10년의 사랑’이었다. 나에게는 가요 작업을 처음 공부할 수 있는 기회였다. 진석 형이 동아기획, 하나음악 분들과 친분이 있어서 조동익, 김현철과 같은 아티스트들이 앨범에 참여했고, 김광민, 한충완 같은 최고 연주자들이 참여했다. 당시 꼬마 작곡가였던 내 곡을 김현철 형님이 편곡을 해주신다는 것이 무척 영광스러웠다. 진석 형을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진영 형(박진영 JYP 대표)를 소개해준 것도 진석 형이었다.

Q. 박진영과 첫 만남은 어땠나?
권태은: 2002년 여름에 처음 만났다. 만나자마자 JYP에 입사한 것은 아니다. 처음에 진영 형이 넬리, 미시 엘리엇, 팀발랜드 등의 음악을 추천해줬는데 내게는 낯선 음악들이었다. 당시만 해도 난 힙합은 잘 몰랐으니까. 그런 스타일의 트랙을 만들어보라고 하시더라. 일종의 테스트였던 것이다. 내가 만든 곡을 진영 형과 시혁 형(방시혁 현 빅히트 대표, 당시 JYP 수석 작곡가)이 같이 심사를 하신 거다.(웃음)

Q. 낯선 장르에 도전하게 된 것인데 곡이 잘 만들어지던가?
권태은: 어려웠다. 그때까지 내가 좋아하던 흑인음악은 퀸시 존스, 마빈 게이, 어스 윈드 앤 파이어, 알 자로 등 옛 뮤지션들이었다. 몇 개월 듣는다고 트렌디한 힙합이 바로 만들어질 리 만무했다. 너무 어려워서 중간에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진영 형이 갑자기 “너 그렇게 안 봤는데 끈기가 그렇게 없냐”라고 꾸짖으시더라. 그 전까지 진영 형은 나에게 존댓말을 썼는데 갑자기 “형이 말 놓을게. 너 이것 밖에 안 되니?”라고 하시더라. 그 말을 듣고 다시 해보겠노라고 대답했다. 진영 형은 사람에게 자극을 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렇게 5~6개월 동안 숙제하듯이 데모를 제출하고 2003년 1월에 정식 계약을 했다. 사람을 하나를 들이는 일이니 굉장히 심사숙고 하신 것 같다. 그 당시가 비(정지훈)가 막 데뷔해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때다. 지오디(god), 박지윤, 노을, 별이 있었고 원더걸스 선예, 임정희가 연습생이던 시절이다.

Q. 계약 과정이 순탄하진 않았던 것 같다.(웃음)
권태은: 정식 계약을 하고 계약금도 받고 악기 살 돈도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고맙다. 제대로 된 작업실을 처음 갖게 됐으니 말이다. 프리랜서 작곡가 시절에는 집에서 헤드폰을 끼고 작업했다. 어쩌다 스피커로 소리를 키우면 옆집에서 신고를 해서 경찰이 온 적도 있다. 서러웠던 시절이다.(웃음) JYP가 나에게는 상업 작곡가로 본격적인 출발이었다. 그때부터 진영 형, 시혁 형과 함께 댄스, 발라드 등 장르 가리지 않고 정말 많은 작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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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방시혁이 사수였나?
권태은: 처음 JYP에 들어갔을 때 작곡 팀에서 시혁 형이 팀장이었고 내가 단 한 명의 팀원이었다. 진영 형과 시혁 형이 성향이 다른데, 그 둘의 작곡 콤비가 참 좋았다. 두 형한테 참 많이 배웠다. 진영 형은 음악을 만들 때 본능적으로 접근을 하는 편이고, 시혁 형은 완전히 노력파다. 내가 곡을 만들어 가면 진영 형에게 3초 만에 까이곤 했다. 사실 작곡가들은 트랙을 하나 만들면 어떻게든 살리고 싶은 마음인데 진영 형은 그런 집착이 없다. ‘후진 것을 다시 살릴 시간에 새로운 것을 만들자’는 주의다. 그리고 시혁 형은 그런 작업방식에 익숙해져 있더라. 시혁 형은 음악적 데이터가 대단하다. 형을 통해 새로 알게 된 음악이 참 많다. 직원들이 다 퇴근하고 나면 JYP 건물에 시혁 형과 나 단 둘이 남아서 작업을 하는 날이 이어졌다. 새벽 3~4시까지 남아서 함께 음악을 만들고 음악 이야기도 참 많이 나눴다. 시혁 형이 트랙 찍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정말 천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 그만한 사운드메이커는 찾기 힘들다.

Q. 당시 JYP의 음악 프로덕션 과정이 궁금하다.
권태은: 미국의 경우 멜로디 메이커와 트랙 메이커가 따로 있고, 그들이 프로덕션 팀을 이뤄 곡을 만드는데 그런 방식이 JYP는 진즉에 있었다. 각자 맡은 가수의 곡을 만들다가도, 시혁 형이 트랙을 찍었는데 멜로디가 안 써지면 내가 해보기도 하고, 그 반대로 만들기도 했다. 누군가 곡 스케치를 해오면 ‘사비’는 다른 사람이 만들고 그런 식으로 분업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Q. 그렇게 손발을 맞추면서 많이 배웠겠다.
권태은: 지오디의 앨범들을 들으면서 ‘박진영-방시혁의 팀워크가 이런 거구나’라는 것을 알겠더라. 개인적으로 원투의 1집 ‘자 엉덩이’의 편곡을 하면서 많이 배웠다. 그 앨범에 보면 넵튠스, 팀발랜드, 아웃캐스트 등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흑인음악 스타일이 가요로 잘 구현돼 있다. 돌이켜보면 진영 형이 참 앞서갔다. 진영 형과 2003년 여름에 미국에 건너가서 약 반년 정도 함께 지낸 적이 있다. 미국에 작업실을 구하고 둘이서 미국 제작사에 줄 데모를 계속 만들었다. 시혁 형은 한국에 남아 JYP 뮤지션들을 살피면서 따로 데모를 찍어 우리에게 넘겨줬다. 그렇게 곡을 만들면 오전부터 제작사를 돌며 데모CD를 돌렸다. 진영 형 자신감이 대단했다. 넵튠스의 퍼렐을 처음 만났을 때 “너희는 앞으로 일본, 중국이 아니라 한국 뮤지션들과 손잡아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주말이 되면 항상 클럽에 갔다. 그 곳의 흑인들이 어떻게 노는지 직접 보러 간 것이다. 그런 생활을 반복하다보니 자연스레 감이 생기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진영 형이 나에게 투자를 했던 것 같다. 그때 ‘기초체력’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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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치송 프로젝트 첫번째 앨범 ‘Acoustic Energy’ 권태은이 직접 촬영한 앨범재킷의 주인공은 첫째 아들 민준.

권태은은 방시혁이 2004년에 독립해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를 차리면서 JYP의 수석프로듀서로 활약했다. 방시혁은 ‘JYP 패밀리’로서 빅히트의 대표가 된 후에도 박진영, 권태은과 공동 작업을 이어갔다. 셋은 원더걸스, 2PM, 2AM 등 JYP 대표가수들의 음반도 함께 만들었다. 권태은은 지오디의 ‘보통날’, 노을의 ‘청혼’ 등의 히트곡을 만들고 비 월드투어 콘서트의 음악감독을 맡기도 했다. JYP에서 독립 후에는 음악감독으로써 활약하게 된다. 런치송 프로젝트의 첫 앨범 ‘Acoustic Energy’는 2010년에 발표했다.

Q. 뮤지션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솔로앨범을 발표하는 것이 염원이라 할 수 있다. 런치송 프로젝트의 앨범은 어떻게 발표하게 됐나?
권태은: 런치송 프로젝트는 온전히 나를 위해 만든 앨범이다. 그동안 너무 지쳐 있었다. 음악으로 나 자신을 치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넘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해왔지만 속에는 뭔가 답답한 것이 있더라. ‘내 꺼’를 하고 싶었다. 처음에 우리 둘째 아이를 보면서 ‘베이비 송’이라는 노래를 만들었는데 너무 즐거웠다. 나는 태생이 상업 작곡가이기 때문에 항상 음악을 팔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버리고 노래를 만드니 참 행복하더라. 그래서 몇 곡을 더 만들어 앨범으로 내게 됐다. 지극히 개인의 만족으로 위한 작업이었다. 앨범재킷도 내가 직접 찍었다. 다른 이들은 자위하는 앨범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한텐 그런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내 음악이기에 내가 직접 제작을 했고, 그래서 ‘자비량 가내수공업 프로젝트’라고 부른다. 원래는 한 장의 앨범만 내고 말려고 했다. 그런데 윤상 형이 자극을 주셔서 이번에 또 앨범을 내게 됐다.(웃음)

Q. 윤상과도 함께 여러 작업을 했다. 윤상이 공연에서 권태은을 무척 칭찬하던데 그와는 어떻게 함께 작업을 하게 됐나?
권태은: ‘나는 가수다’ 덕분이었다. 재작년에 ‘나는 가수다’가 한창 인기가 있을 때 BMK의 편곡을 맡게 됐다. 처음 편곡 제안을 받았을 때 대상 곡이 ‘아름다운 강산’이라고 하길래 너무 부담스러워서 처음에 거절했다가 끝내 수락을 했다. 그 거대한 곡을 내가 어떻게 편곡을 하나 걱정을 많이 했다. 타워 오브 파워를 콘셉트로 어렵사리 편곡을 했는데 다행히 임재범의 뒤를 이어 2위를 했었다. 윤상 형과는 전에 사석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와서 “태은아, 나가수 ‘아름다운 강산’ 편곡 네가 한 거였어?”라고 물으시더니 너무 좋았다고 하시더라. 그 뒤로 윤상 형 콘서트 편곡작업을 도와드렸고, MBC MUSIC ‘음악의 시대’ 편곡도 형의 제안으로 하게 됐다. 사실 런치송 프로젝트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윤상 형이 어떻게 찾아들으셨는지 나에게 싱어송라이터 소질이 있다며 계속 하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내가 형에게 “전 상업 작곡가이고, 형은 아티스트잖아요”라고 말했다가 혼났던 기억이 난다. 런치송 프로젝트로 처음 공연을 한 것도 윤상 형의 콘서트에서였다. 첫 공연이라 나름 연습을 열심히 했다. 윤상 형이 베이스까지 외워서 연주를 해주셔서 너무나 고마웠다.

Q. ‘나는 가수다’ 후에는 ‘보이스 코리아’, ‘슈퍼스타K4’의 편곡자로도 활약했다. 요 몇 년간은 정말 쉴 틈이 없었겠다.
권태은: 2011년으로 들어오면서 음악감독 일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서바이벌 프로그램 편곡 작업이 참 즐거웠다.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다양한 장르를 마음껏 해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때가 일반인들 입에서 편곡이란 단어가 오르락내리락 하기 시작한 때다.

Q. ‘보이스 코리아’ 때는 혼자서 프로그램의 편곡을 도맡아 했다. 시즌1 때에는 블라인드 테스트까지 무려 127곡의 편곡을 했다고 하던데? 그때부터 ‘편곡 귀신’이란 별명도 생겼다.
권태은: 밴드 편곡이니 가능했다. 미리 장르와 틀을 잡고 코드워크 정리를 한 후 밴드와 함께 작업을 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나는 가수다’를 하면서 제임스 브라운과 같은 올드스쿨 훵크도 대중들이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을 본 후 ‘보이스 코리아’에서는 보다 다양한 것들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내가 과거에 좋아했던 데이빗 포스터, 마이클 잭슨의 편곡 스타일 등을 해볼 수 있었다. 내 입장에서는 과거에 좋아했던 음악들을 복습하는 기분이었다. 그런 결과물들이 실연되는 것을 현장에서 바로 느낄 수 희열이 정말 컸다.

Q. 어떤 프로그램이 특히 기억에 남는가?
권태은: ‘패티김쇼’가 내겐 특별했다. 첫 회에 윤복희 선생님이 나와 패티김 선생님과 듀엣을 하는 것부터 작가들이 다 울고 난리가 났었다. 인순이, 김도향, 양희은, 김범룡, 정수라 등 기라성같은 선배님들이 나오셔서 너무 좋은 무대를 만들어주셨다. 패티김 선생님은 길옥윤, 이봉조, 박춘석 등 우리나라 최고의 작곡가들과 일하신 분이 아닌가? 그럼에도 아들 같이 어린 내게 항상 ‘권 감독’이라고 존칭을 써주셨다. ‘나는 가수다’, ‘보이스 코리아’, ‘슈퍼스타K’를 하면서 우리 옛 가요가 참 좋다는 생각을 했는데, ‘패티김쇼’를 하면서는 우리 가요 역사를 소개하고 배우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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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치송 프로젝트 두번째 앨범 ‘Acoustic Story’

Q. 최근 런치송 프로젝트의 두 번째 앨범 ‘Acoustic Story’를 발표했다. 이번 앨범을 통해서는 어떤 스타일의 음악을 해보려 했나?
권태은: ‘보이스 코리아’가 지난 6월에 끝나고 바로 작업에 돌입했다. 음악적으로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동경했던 60~70년대 비틀즈와 같은 영국 록을 해보고 싶었다. 내가 직접 노래도 했는데 과거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Time’과 같은 노래 들어보면 힘없이 노래하지 않나? 그런 음악들이 참 좋았다. 길버트 오설리반의 ‘Alone Again(Naturally)’ 같은 둔탁한 피아노 소리, 멜로디컬한 음악들을 시도해보고 싶었다.

Q. 새 앨범 타이틀곡이 ‘가족의 힘’이다.
권태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 뭘까 생각해보니 바로 가족이더라. 우리 아이들 정수리 냄새 맞는 것이 좋고, 식구들하고 여행을 갈 때가 행복하다. 런치송 프로젝트를 하게 된 동기가 애초에 나를 치유하고 싶어서였기 때문에 앞으로도 자극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 하나 욕심을 부린다면 음악적인 완성도는 절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다.

Q. 본인은 런치송 프로젝트를 ‘자비량 가내수공업 프로젝트’라고 소박하게 표현했지만, 사운드에 엄청 공을 들였다. 서영도, 홍준호, 윤석철 등 참여 연주자들도 화려하고, 마스터링도 외국에서 했다.
권태은: 연주자들과 무척 기분 좋게 작업했다. 나와 오랫동안 작업해온 서영도, 신석철 형들이 참여해줬다. ‘가족의 힘’에서 연주를 해준 윤석철의 피아노도 정말 마음에 들었다. 난 작업을 할 때 연주자들끼리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내가 사람이 연주해서 만든 음악을 듣고 자랐으니 말이다. 마이크를 타고 들어오는 북소리, 기타소리의 질감이 정말 좋다. 이런 사운드의 어쿠스틱 음악 시리즈를 런치송 프로젝트로 계속 시도해보고 싶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권태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