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인터뷰]‘걸캅스’ 라미란 “14년 만에 첫 스크린 주연…버티다 보니 기회가 왔죠”

[텐아시아=태유나 기자]

영화 ‘걸캅스’에서 전설의 형사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민원실 주무관이 된 박미영 역으로 열연한 배우 라미란./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주연이 조연보다 재미는 없어요. 조연일 때는 잠깐 나와서 신스틸러로 활약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주연은 책임감도 크고 전체적인 연기 에너지를 분배하는 게 힘들어요. 가성비로는 조연이 더 좋은 것 같아요. 하하”

지난 9일 개봉한 ‘걸캅스’의 주연 배우 라미란은 이같이 말했다. 경찰서 민원실의 퇴출 0순위 박미영 역을 연기한 라미란은 스크린 데뷔 14년 만에 첫 주연으로 활약했다.

“주인공이 되니 분량이 많아 촬영장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지금까지는 분량이 많지 않아 배우들과 더 친해지고 싶고, 현장에 더 오고 싶어도 그러질 못했거든요. 주연과 조연, 단역의 차이는 대사 양의 차이일 뿐인 것 같아요. 배우라면 누구나 연기에 최선을 다하니까요.”

라미란이 연기한 박미영은 1990년대, 여자 형사기동대에서 범인들을 일망타진하던 전설의 형사다.  현재는 민원실 퇴출 0순위 주무관. 결혼과 출산, 육아라는 현실에 타협한 그가 현장에서 물러나 민원실로 보직을 옮겼기 때문이다. 라미란은 “꿈을 좇기보다 살아야 한다는 현실에 부딪힌 인물”이라며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남편의 부담까지 떠안은 인물이라는 설정이 좋았다”고 말했다.

“미영은 직장에서 언제 쫓겨날지 몰라 눈치 보는 40대 워킹맘이에요. 현실에서 볼법한 평범한 인물이죠. 그런데도 용기 있게 사건에 뛰어든다는 점이 좋았어요. 보고도 외면하거나 도망칠 수 있잖아요. 레슬링 선수 출신 캐릭터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어요. 날렵하고 화려한 게 아니라 끌어안고 구르는 종목이잖아요. 그게 제 체형에는 훨씬 더 현실이지 않나요. 하하”

영화 ‘걸캅스’ 스틸./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라미란은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액션 연기를 펼쳤다. 전직 전설의 형사라는 캐릭터가 부담이 될 법했지만, 그는 오히려 “현직 형사가 아니라 마음이 놓였다”고 밝혔다.

“액션 영화를 위해 몸을 만들 필요가 없었어요. 열정 넘쳤던 형사 시절은 과거일 뿐, 현재는 민원실 주무관으로 겨우 먹고 사는 아줌마잖아요. 그래서 갑자기 뛰고 달려드는 게 둔하고 서툴 수 밖에 없죠. 날렵한 액션을 필요로 하는 여전사 역할이었다면 못했을 거예요.”

‘걸캅스’는 48시간 후 업로드가 예고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여형사 콤비가 비공식 수사에 나서는 이야기다. 개봉 전부터 성범죄, 클럽, 마약 등 최근 연예계에 파장을 일으킨 사건들과 유사한 소재로 화제를 모았다. 라미란은 “의도한 것은 아니다”라고 단호히 선을 그었다.

“이 영화는 몇 년 전부터 기획한 작품이에요. 감독님도 시나리오를 쓸 때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뉴스를 보시고 자료를 찾아가면서 작업했다고 들었습니다. 작년에도 몰래 카메라 사건들은 종종 뉴스에 보도됐어요. 유명 연예인이 끼어있지는 않았지만요. 현실과의 높은 싱크로율이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범죄에 대해 인식하는 건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소재는 다소 무겁지만 이 영화가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은 유쾌하다. 라미란은 “‘걸캅스’는 오락 영화”라며 “저를 주연으로 캐스팅했다는 것만 봐도 영화에 유쾌함을 가지고 가려는 의도가 보이지 않느냐”며 깔깔 웃었다.

라미란은 배우 윤상현이 남편 오지철 역을 맡아 준 데 대해 고마움을 표했다. 극 중 지철은 10년 동안 고시 공부에 매달리다 실패한 인물로, 찌질하지만 순수한 모습으로 웃음을 선사한다. 라미란은 “(윤)상현 선배는 사람 자체에 사랑스러움이 있다. 원수 같은 남편인데 미워할 수 없게 만든다. ‘등신’이라고 욕 하다가도, 애처롭게 바라보면 측은한 감정이 생긴다”며 “남자배우들이 꺼려할 수도 있는 역할인데 흔쾌히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윤상현 선배님이 처음 대본 리딩을 할 때 머리를 짧게 이발하고 오셨어요. 제가 ‘찌질한 역할인데 왜 이렇게 멋스럽게 잘랐냐’고 물어보니까 ‘나, 멋있는 역할 아니었어?’라고 오히려 놀라더라고요. 결국 촬영 때는 가발을 썼죠.(웃음) 망가짐도 불사하고 열연해줘서 너무 고마웠습니다.”

라미란은 “주연이 목표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하고 있는 일 안에서 행복을 찾다보면 나처럼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고 조언했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2005년 ‘친절한 금자씨’로 영화에 데뷔한 배우 라미란은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MBC ‘진짜사나이’, KBS2 ‘언니들의 슬램덩크’ 등의 예능프로그램을 비롯해 tvN ’응답하라1988’의 치타 여사부터 tvN 최장수 시즌제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의 라 부장까지 스크린과 TV를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했다. 이제는 그를 롤 모델로 꼽는 후배도 적지 않다. 선배로서 책임감을 느끼지 않냐는 물음에 라미란은 이렇게 말했다.

“몇 년 전만 해도 후배들에게 ‘나를 롤 모델로 삼아서 뭐하려고 해’라고 했어요. 이제와 돌이켜보니 나만큼 운 좋게 다양한 길을 걸어온 사람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가능했던 건 제가 특별해서가 아니에요. 잘 버틴 것뿐이죠. 후배들에게도 이제는 버티라고 말해요. 어떻게든 버티다 보면 기회가 오거든요. 주연이 목표가 되지는 않았으면 해요. 하고 있는 일 안에서 행복을 찾다보면 저처럼 기회가 찾아올 거예요. 후배들에게 ‘저 사람도 하는데 나라고 못 할까’라는 희망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태유나 기자 youyou@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