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리뷰] ‘배심원들’, 보통 사람 8人의 예측불허 ‘재판 쇼’

[텐아시아=노규민 기자]

영화 ‘배심원들’ 포스터./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아들이 노모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증거, 증언, 자백 모두가 확실해 양형 결정만 남았다. 재판은 국내 최초로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을 열어 마무리하기로 했다. 법원장(권해효 분)을 비롯해 사법부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원리원칙주의자로 소문난 사법부 최고의 여판사 김준겸(문소리 분)을 필두로 8명의 배심원을 선발해 최고의 이벤트(?)를 벌일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재판은 요식행위일 뿐, ‘국민참여재판’이라는 쇼를 통해 사법부의 이미지 쇄신을 기대한 것이다.

면접을 통해 뽑힌 8명의 배심원은 성별, 직업, 재판에 참여하게 된 계기 모두 제각각이다. 살아온 환경, 사고방식이 다른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불협화음이 날 수밖에 없다.

늦깎이 법대생인 1번 배심원 윤그림(백수 장)처럼 애초부터 관심을 가지고 참여한 사람도 있었지만, 중학생 딸을 둔 전업주부인 4번 배심원 변상미(서정연)처럼 재미있는 경험을 한 번 해보고 얼른 집에 갈 궁리를 하는 사람, 얼떨결에 대타로 참여하게 된 8번 배심원 권남우(박형식) 같은 사람도 있었다. 이들 모두 처음에는 ‘이미 다 결정 났다’고 해서 그저 속 편하게 법정에 자리하게 된 것이다.

사법부에서 마련한 쇼는 순조롭게 펼쳐지는 듯싶었다. 하지만 돌연 피고인이 혐의를 부인했고, 보통 사람들로 구성된 8명의 배심원단이 유무죄를 다투게 됐다. 사상 처음으로 일반인들과 재판을 벌이게 된 재판부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

사법부의 계획엔 차질이 생겼지만, 원칙주의자인 김준겸 판사는 흔들리지 않았다. 정확하고 신속하게 재판을 끌고 간다. 그러나 배심원 중 복병이 있다. 8번 배심원 남우다. 모두가 YES라고 해도 NO라고 말할 줄 아는 소신이 뚜렷한 인물이다. 그렇다고 마냥 억지를 부리진 않는다. 그의 눈에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고, 그의 시선을 통해 재판은 점점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영화 ‘배심원들’ 스틸컷./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2008년 2월 12일 국내 최초로 국민참여재판이 대구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영화 ‘배심원들’은 가장 의미 있는 국민참여재판으로 기록된 이 첫 사건을 모티브로 재구성했다.

홍승완 감독은 치밀한 자료 조사와 사전 준비를 통해 최초의 국민참여재판에서 서투르지만 최선을 다했던 배심원들의 이야기를 경쾌하면서 따뜻하게 담아냈다. 무거운 공기가 흐르는 법정에 적절하게 웃음 코드를 배치하는 등 긴장감과 코믹함을 탁월하게 조율해 흥미롭게 전개한다.

특히 문소리를 비롯한 모든 배우의 연기가 몰입도를 높인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판사를 연기한 문소리는 시종 절제된 연기로 묵직한 존재감을 준다. 처음 상업영화에 출연하게 된 박형식은 자신이 가진 순수한 매력을 한껏 살려 올곧은 청년 남우를 빈틈없이 그려냈다. 여기에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배심원들의 앙상블이 극의 재미를 높인다.

미국에서는 배심원단이 유무죄를 가리면 판사가 그들의 결정에 따라 판결을 한다. 배심원들도 구속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반면 국내에선 판사가 배심원의 평결과 달리 독자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다만 판사가 배심원의 평결과 다르게 선고할 경우, 그 결과를 알리고 평결과 다른 선고를 한 이유를 판결문에 뚜렷하게 밝혀야 한다.

영화 ‘배심원들’에서 김준겸 판사는 어떤 판결을 내릴까.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법원의 명리를 따라 이미 드러난 증거, 증언, 자백을 위주로 재판을 하려는 그 앞에 선 보통 사람들은, ‘원칙적인 것이 모두 맞는 것은 아니며, 그것이 언제나 진실이 될 수만은 없다’는 걸 행동으로 보인다. 또 그들은 말한다. “처음이라 잘 하고 싶었다”고.

오는 15일 개봉.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