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p by staff(6) ‘주군의 태양’ 특수분장사 김봉천, “진짜 같은 가짜를 향한 열정”(인터뷰)

김봉천
중천을 떠도는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남편 배신에 편히 눈을 못 감는 ‘분홍하이힐 귀신’, 첫사랑 소녀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하기 위해 장미를 꽃피운 ‘그린 로즈 귀신’, 성정체성을 숨기며 살아야 했던 ‘이회장 귀신’, 성형을 부추기는 ‘성형 귀신’ 등 알고 보면 모두 불상한 사람들, 아니 귀신들이다. 인기리에 방영된 SBS 드라마 ‘주군의 태양’에는 매회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귀신들이 등장, 드라마의 질감을 보다 풍성하게 했다. ‘주군의 태양’의 숨은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이들 귀신들은 모두 특수분장사 김봉천 차장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경력 27년차의 그는 TV드라마 특수분장에 숨결을 불어넣은 숨은 장인이다. 특수분장이라는 개념이 전무했던 시절 이 세계에 뛰어들어 쉬지 않고 달렸으니, 그의 경력이 곧 한국드라마 특수분장의 역사인 셈이다. SBS 아트텍 분장팀 김봉천 차장을 만나 특수분장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Q. ‘주군의 태양’처럼 사랑받는 드라마를 만나면 일하는데 더 신나겠다.
김봉천: 내색은 잘 안하지만 기분 좋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한 일이 주목받길 원하잖아. 드라마가 사랑받는 것도 기분 좋은데 그 관심이 나에게도 돌아오니까 ‘원 플러스 원’ 혜택을 받은 기분이다.

Q. 반대의 경우도 있었을 거다. 상대 방송사 드라마 때문에 시청률이 안 나온 경우.
김봉천:
MBC에서 ‘까레이스키’(1995)라는 드라마를 할 때였다. 같은 시간에 SBS에서 방영된 게, ‘귀가시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좋았던 ‘모래시계’였다. 그럴 땐 아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까레이스키’는 내게 각별한 작품이다. 극 마지막 김희애, 황인성 두 배우의 노인분장에서 선배들이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분장을 시도했는데, 그 분장에 대한 반응이 굉장했다. 내가 특수분장에 관심을 가지게 된 시초가 ‘까레이스키’가 아닌가 싶다.

Q. ‘까레이스키’가… 1990년대 작품이지? 특수분장에 몸담은 지 얼마나 된 건가.
김봉천:
27년 차다. 지금에야 분장학원이나 관련학과들이 많지만 내가 시작할 당시에는 특수분장이 생소한 분야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졸업 후 전공을 살려 화가가 되려고 하는 찰나, 우연히 아는 지인으로부터 MBC에서 분장사를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시험에 덜컥 합격하면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베스트극장 같은 단막극을 했다. 정식입봉은 김자옥, 김주승, 박근형  주연의 드라마 ‘내 마음의 호수’(1991)다. 이후 지금은 고인이 된 최진실의 ‘약속’을 했고, 그 다음 작품으로 고(故) 김종학 감독님의 ‘황제를 위하여’ ‘여명의 눈동자’를 했다. 돌아가신 분들 얘기만 하게 되네. 두 분과는 친분이 굉장히 두터웠는데, 참… 그렇게 MBC에서 일하다가 ‘까레이스키’를 마지막으로 SBS로 옮기게 됐다.

Q. SBS로 옮기고 나서는 어떤 작업들을 했나?
김봉천:
‘코리아케이트’를 시작으로 ‘삼김시대’ ‘형제의 강’ ‘덕이’ ‘승부사’ ‘대망’ 등을 거쳐 최근엔 ‘신의’ ‘제중원’ ‘돈의 화신’ ‘닥터챔프’ ‘싸인’ 등을 했다. 김종학 감독님과의 친분으로 MBC에서 방영된 ‘태왕사신기’도 했다. 그건 외주에서 제작된 작품이라 가능했다.

Q. 특수분장이 개입될 여지가 큰 장르는 사극, 메디컬, 공포가 아닐까 싶다. 특별히 애착을 가지는 장르가 있는지.
김봉천:
농담으로 나중에 시골에 가서 돌팔이 의사나 해볼까, 라고 종종 말한다. ‘제중원’ 같은 의학드라마를 만나면 어지간한 병은 저절로 익히게 된다. 자료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직접 가서 수술참관도 하는데, 그러다보니 내 핸드폰에는 의사 분들 연락처가 과별로 저장돼 있다. 신월동에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관님과도 연락을 종종 주고받는다. ‘싸인’할 때는 국과수 부검실을 7번이나 갔다. 외상이 없는 시체들은 가까이에서 보면 마네킹보다 더 마네킹 같다. 피가 다 밑으로 쏠리니까 위는 새하얗거든. 그런데 시체를 너무 마네킹처럼 만들면 시청자들이 ‘가짜’라고 한다. 반대로 너무 사람처럼 만들면 전문가들 눈에 ‘가짜’로 보이고. 전문가와 일반 시청자 중간의 입장에서 사실적이지만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분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봉천
Q. 부검 현장을 참관하는 게 힘들지는 않나.
김봉천:
겁이 많은 편인데, 이 일을 할 땐 이상하게 용감해진다. 부검 참관을 한 후, 국밥을 태연하게 먹는 나를 보며 관계자들도 놀라더라. 어느 순간 동화가 된 것 같다. 이 일을 하다보면 귀신을 보거나 가위에 눌리는 경험을 한 번씩은 한다는데, 나는 그런 경험이 한 번도 없었다.

Q. 기가 센가 보다.
김봉천:
일 때문에 점집을 갔다가 점을 본 적이 있다. 점쟁이가 나를 보고 ‘법사 사주’라고 했다. 쉽게 말하면 남자 무당인 거다.(웃음)

Q. 그러고 보면 삶과 죽음에 근접해 있는 직업같다.
김봉천:
산부인과에 가면 그런 감정을 많이 느낀다. ‘여자들, 참 불쌍하구나’ 싶기도 하고. 제왕절개는 정말 할 게 못 된다는 생각도 한다. 와이프가 간혹 진찰받으러 간다고 하면 괜히 마음이 아프고 그렇다.

Q. ‘주군의 태양’ 얘기를 해보자. 귀신분장은 어떤 작업과정을 거치나.
김봉천:
‘주군의 태양’의 경우 다른 작품보다 연출자와 일찍 만나서 의견을 나눴다. 귀신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중요 소재이다 보니 특별한 아이디어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서로 있었던 것 같다. 때론 귀엽고 때론 예쁘고 때론 무서운 귀신들을 만들려고 온갖 상상을 했다. ‘저들은 왜 중천을 떠돌까? 한이 있어서 떠도는 게 아닐까? 그럼 그 한은 뭘까?’ 그 한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시놉시스가 나오면 내가 상상한 귀신을 컴퓨터 작업으로 수십 장을 그린 뒤 연출진과 의견을 교환하며 귀신 이미지를 만들어나갔다. 가령 1회의 ‘할머니 귀신’은 자식들에게 말 못하고 속앓이하는 마음을 나타내기 위해 코와 잎을 없애서 분장을 했다. 3회의 ‘분홍 하이힐 귀신’은 교통사고로 눈을 다쳤기 때문에 눈을 지워 버리는 방향으로 분장을 했다.

Q. 특수분장사에게 요구되는 가장 큰 자질이 뭐라고 보나.
김봉천:
무슨 일이든 인성이 첫 번째다. 특수분장처럼 공동으로 하는 작업에서는 특히나 더 중요하다. 대스타든 아니든 사람을 상대로 분장을 하는 일이 많기에 상대방의 기분과 마음을 살필 줄도 알아야 한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게 상상력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상상력이라는 것은 분장할 때의 독창성 뿐 아니라, 시청자들이 생각할 수 있는 여지도 남겨 주는 상상력을 말한다. 기계식으로 찍어내는 느낌이 아니라, 시청자와 함께 호흡해 나가는 거지. 물론 기술적인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분도 있을 거다. 하지만 최근엔 CG 같은 게 워낙 발달해서 기술적으로 부족한 부분은 후반작업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이제 우리도 할리우드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차이라면, 시간이다. 할리우드는 특수분장 하나만 가지고도 3개월간 테스트를 하는데, 우리에겐 여유로운 시간이 허락되는 경우가 별로 없다.

Q. 그건 우리와 할리우드의 차이라기보다, 드라마와 영화의 차이가 아닐까?
김봉천:
우리나라는 영화에서도 그렇게는 안한다. 특수분장만 가지고 3개월간 테스트를 하지는 않는다는 거지. 물론 영화가 드라마보다 시간적으로 여유롭긴 하지만.

귀신

3회 남편에게 원한 맺힌 귀신, 4회 성형귀신, 5회 그린로즈 귀신, 7회 학대당한 아이들 귀신

Q. 영화 쪽에서 특수분장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 봤나?
김봉천:
그런 생각은 별로 안 해 봤다. 드라마에도 드라마만의 재미가 있으니까. 스릴도 크고. 그리고 영화 분장과 드라마 분장의 메커니즘이 살짝 다르다. 이를테면 영화에서는 분장이 크게 메이크업팀, 분장팀, 특수분장팀으로 나뉘어 있는데 방송은 그런 구분이 없다. 한 명의 분장사가 모든 걸 커버하는 시스템인 거다. 내가 나를 ‘특수분장을 할 줄 아는 캐릭터 분장사’라고 소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특수분장을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은 아니다. ‘까레이스키’의 김희애 분장도 그냥 독학으로 익혀서 한 건다. ‘태왕사신기’의 최민수 분장도 마찬가지고. 이것저것 모험적으로 시도했는데, 스태프들과 김종학 감독님이 깜짝 놀라더라. 그때부터 내가 언론에 특수분장사라고 소개되기 시작했다.

Q. 아까 분장시 상대방 기분도 살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는데, 배우와 트러블이 생기는 일은 없나?
김봉천:
모 방송사에서 분장제거를 제대로 안 해서 문제가 생겼던 걸로 안다. 얼굴 살이 벗겨지는 바람에 분장사와 방송사가 50%씩 물어줬다고 들었다. 그런데 요즘은 배우들 인식이 좋아져서 그런 일이 거의 없다. 재료들도 이전부터 좋아졌고. ‘돈의 화신’에서 황정음은 특수분장만 7-8번을 했는데, 아무 탈 없이 잘 찍었다. 그리고 분장이라는 건 드라마에서 보조적인 역할일 뿐이다. 연기자들이 연기하는 주지, 우리가 주일 수는 없다. 그래서 가장 신경 쓰는 것이 배우가 연기하는데 불편하지 않게 하는 거다.

Q. 방송국들이 외주 분장팀도 많이 쓰는 걸로 안다.
김봉천:
예전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아니다. SBS의 경우 99% 이상을 SBS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한다. 옛날에는 ‘방송국 특수분장사들은 실력이 없어’라는 인식이 연출자들 사이에 있었는데, ‘태왕사신기’ ‘싸인’ 등을 거치면서 많이 달라졌다. 실제로 방송국 분장사들의 실력이 향상된 것도 있고 말이다.

Q. 민감한 질문인데 업계에서 특수분장사들의 처우는 어떤가?
김봉천:
각양각색이다. 프리랜서 중에서도 돈을 억대로 버는 사람이 있고, 한 달에 돈 100도 못 버는 사람이 있다. 방송국에서도 사람에 따라 천지 차이다.

Q. 요즘 이 일을 하는 친구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오나?
김봉천:
대학의 코디네이션, 메이크업, 패션예술 등의 학과 등에서 기본을 배우고 오는 친구들이 많다. 특수분장 학원도 있고. 심지어 박사들도 많다. 나도 성신여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 수업을 하고 있는데, 특수분장과가 따로 있다.
김봉천

Q. 본인의 작품 중에 기억에 남는 특수분장을 꼽자면?
김봉천:
특수분장의 재미를 알게 해 준 ‘까레이스키’의 노인 분장, 그리고 실력을 인정받은 ‘태왕사신기’의 최민수와 이필립 분장을 잊을 수 없다. ‘싸인’의 경우 내게 명예를 안겨준 작품이다. 2011년에 ‘싸인’으로 콘텐츠진흥원장 상을 받았다. 분장 분야에서 그런 상을 수상한 적이 없었기에 여러모로 의미가 컸다. 지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주군의 태양’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고. 아, ‘자이언트’ 정보석으로부터 들은 말도 기억에 남는다. ‘자이언트’ 때 초반에 정보석이 노역으로 나왔는데 처음엔 노인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고 하더라. 그런데 분장을 하고 얼굴을 보는 순간, 톤이 잡히면서 고민이 사라졌다는 얘기를 해줬는데, 그런 얘길 들으면 굉장한 보람을 느낀다.

Q. 어떤 특수분장사로 기억되고 싶나.
김봉천:
특수분장을 위한 특수분장이 아니라 배우의 캐릭터를 살려주는 특수분장, 그러면서 사실감을 주는 특수분장을 하고 싶고 그런 분장사로 기억되고 싶다.

 Q. 특수분장사 이전에 오랜 방송인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정든 사람들을 떠나보내며 느끼는 바도 클 것 같은데.
김봉천:
이 얘기는 오늘 처음 하는데… 내가 지금 이렇게 사랑받고 언론에 비춰지는 것은 김종학 감독님이 가시면서 나에게 남긴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눈시울이 붉어진다) 사실은 ‘주군의 태양’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제발 중천에 머물지 않고 편하게 가셨으면. 못 잊고 억울해서 떠돌지 말고 좋은 곳으로 가셨으면 하고 말이다. 사실 그분도 요괴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다. ‘신의’ 하기 전에 그런 얘기들도 해서 그런지 더욱 더 생각나는 것 같다.

Q. 앞으로 이 일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게 있나.
김봉천:
동기들 중에 미술 전시회를 여는 친구들이 있는데, 보면 부럽다. 그래서 나는 특수분장을 가미한 미술작품으로 미술 전시회를 열고 싶다. 외국에서는 많이들 한다. 특수분장에 조소적인 느낌을 가미해서 선보이는 전시회가 많은데, 나는 반대로 회화적이 작품에다가 특수분장을 접목시켜서 해보고 싶다. 그리고 아들이 조소를 하는데, 아들과 부자전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사진제공. SBS 주군의 태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