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암 허준’을 떠나보낸 김주혁의 깊은 미소 (인터뷰)

김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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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혁 하면 으레 눈꼬리가 쳐져 더 없이 선해 보이는, 그런 인상이 떠오른다. 그런 그가 MBC 일일드라마 ‘구암 허준’에서 허준을 연기했다. 명의 허준은 우리 역사 속에서 가장 강인한 인물 중 하나다. 서자 출신에 중인이라는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오로지 집념으로 질곡한 인생을 살았던 인물. 그 어깨를 짓누르는 인생의 무게 탓에 한국의 드라마는 반복해서 그 인생에 러브콜을 보내고 보냈다.

김주혁은 한때 그의 아버지 배우 고(故) 김무생이 연기했던 허준이라는 인물을 다시 창조해냈다. ‘무신’ 이후 또 한 번의 긴 사극에 도전한다는 것은 사실 엄두를 쉬이 내지 못할 일이다. 반복되는 밤샘촬영은 물론, 사극이라는 장르에서 오는 말 못할 어려움들도 많다. 그럼에도 기꺼이 몸을 던져 투혼을 했던 이유는 그 역시 배우로서의 집념 때문 아니었을까. 물론 아버지의 뒤를 이어 그 인물을 재창조한다는 것은 배우로서도 쉽게 얻을 수 있는 기회는 결코 아니다.

‘구암 허준’ 종영을 앞두고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주혁은 “힘들었다”라고 거푸 말했다. 그러나 결코 투정으로 다가온 것은 아니었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떠올리기도 싫을 만큼 지독하게 노력을 기울여 본 적이 있지 않나. 지긋지긋하지만 그래도 그 시간이 결국은 자기 자신을 길러주고 있음을 깨닫는 고통과 쾌감이 교차하는 그런 순간들. 김주혁의 표정에서는 그런 시간을 지나온 사람들의 결연함이 서려있었다.

Q. 긴 여정이 끝났군요. 허준은 국내 드라마에서 참 많이 이야기 된 인물입니다. 직접 허준으로 살았던 배우의 입장에서 이토록 여러차례 이야기될만큼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김주혁 : 글쎄요. 인물 자체의 매력 때문이라기 보다 극 전체적인 짜임새가 재미있어서 그런 것 아닐까요. 굉장히 드라마틱한 상황들이 있고, 그 상황들에서 다시 일어서고 하는 그런 점들. 또 이전의 대본은 읽지 못했지만, 우리 대본의 경우 내용이 너무 좋았어요. 쉬우면서도 깊이가 있었죠. 그런 점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Q. 그러나 또 누군가는 이번 허준은 가장 재미없는 허준이었다고 혹평을 보내기도 했었죠. 동의하시나요?
김주혁 : 그랬나요? 요즘은 다들 자극적인 걸 원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 그 기준으로 재미없다고 하면 할 말이 없어요. 하지만 우리 드라마만큼 건전하고 정직한 드라마는 없는 것 같아요. 왜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이 드라마를 보여주려고 했을까요?

Q. 시청률 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있었을 것 같아요.
김주혁 : 편성 면에서는 아쉬움이 있었죠.(‘구암 허준’은 ‘뉴스데스크’ 시간대 변경으로 오후 9시대 편성된 일일드라마가 됐다) 그러나 우리 드라마가 오후 10시대 편성이 됐더라면 더 잘 됐을 겁니다. 지금 시간대에 이 정도 성과를 올린 것만으로도 전 만족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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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고생은 정말 많이 하신 것 같아요. ‘구암 허준’을 하기 전에도 사극 ‘무신’을 하셨죠. 쉬는 시간 없이 곧장 두 편의 사극을 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체력소모가 상당했을텐데요.
김주혁 : 말도 마세요. 연달아 긴 사극을 두 편이나 한 사람은 정말 저밖에 없을 거예요. 해서는 안될 짓이었죠(웃음). 이번에 허준이 힘들었던 이유는 그 전부터 힘든 것이  쌓였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지쳤었어요. 마지막 두 달은 정말 정신력으로도 버틸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지요. 대사도 외우기 싫을 정도. 그래도 꾸역꾸역 외웠지만.

Q. 일탈 하고 싶은 생각 없으셨나요(웃음)?
김주혁 : 성격상 못해요(웃음).

Q. 그러나 또 아무리 힘들어도 힘들다고 내색도 안하실 것 같고.
김주혁 : 힘들다고 말은 하죠. 짜증도 내고요. 하지만 점점 그 수위가 낮아져요.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 식구들(소속사)한테 짜증을 내봤자 서로 힘들어지잖아요. 그리고 현장에서는 내가 쳐져있으면 절대 안되고요.

Q. 현대극에 대한 갈증이 커졌을 것 같아요. 최근에 김주혁  씨가 나온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를 다시 봤는데 정말 상큼하더라고요.
김주혁 : 사극이 싫어서는 아니고, 현대물은 정말 이제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내 스스로가 신나서 하게 될 것 같아요. 마치 감옥에 갇혀있다 나와서 큰 운동장에서 노는 그런 기분? 정신력만큼은 정말 강해진 것 같아요. 두려운 것도 없어졌고요.

Q. 뭔가… 지금 말씀하시는 것이 군대 제대한 사람같아요(웃음).
김주혁 : 어 맞아요! 정말 그래요. 요며칠 딱 그랬어요. 사실 제대하면 별 것 없잖아요. 입대하기 전이랑 상황은 똑같은데 뭐든 할 것 같은 그런 기분. 딱 지금 기분이 그래요.

Q. 긴 시간 고생하셨으니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실 계획은 안세우나요?
김주혁 : 갔다와야죠. 아직 계획은 없지만. (누구랑 가실 거에요?) 매니저랑 갈 것 같은데. 하지만 지금은 진짜 무기력해요. 낙도 없고. 너무 힘들게 일해서 그런 것 같아요. 정말 일주일에 한 번 쉬었는데, 그것도 밤샘 촬영 이후에 하루 쉬는 터라 자고 일어나면 시간이 다가요. 약간 사회부적응자 같은 느낌마저 들어요. 몇년 동안 어디 갇혀있다 나와서 어찌할 바 모르는 그런 상황인거죠. 하아~ 슬프군요.

Q. 허준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죠. 주혁 씨는 5대 허준이었어요. 과거의 허준과 가장 달랐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김주혁 : 예전 허준이 부드럽고 약했다면, 저는… 진실되게 하자 생각했어요.

Q. 6대 허준도 나오지 않을까요? 6대 허준에게 하고 싶은 말은요.
김주혁 : ‘고생문이 열린 거야’라는 말? (전)광렬이 형도 죽을 뻔 했다고 하더라고요. 누구보다 내 마음을 잘 아니까 볼 때마다 어깨를 두드려주며 힘들지 하셨어요. 게다가 제목이 ‘허준’이었잖아요. 제목이라도 다른 거였다면 이렇게 힘들진 않았을텐데. 정말 주구장창 등장했으니까요. 그래도 감독님한테 ‘너무 심한 것 아니에요?’라고 말할 수도 없었어요. 최소한 아침에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게 아침 첫 신만 잡지말아달라는 그런 말 정도 밖에 못했어요. 만약 제가 고3때 이렇게 공부를 했다면 전 서울대 갔을 거에요(웃음).

Q. 그래도 한 사람의 일대기를 연기한다는 것은 배우로서 참 뿌듯한 일이었을 거예요.
김주혁 : 그럼요. 일대기 연기는 재미있어요. 연기하는 입장에서 감정이입도 잘 되고, 감정적으로도 더 올라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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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힘들었다고 거푸 말씀하시지만, 그래도 만족도는 상당히 높은 것 같아요.
김주혁 : ‘연기 잘 했다 못했다’를 떠나서 하면서 만족도는 50이상이었어요. 허준에 대해 느끼는 감정도 점점 진해졌고요. 이전에는 50이하인 작품도, 또 그보다 더 큰 만족감을 준 작품도 있긴 했지만. 아무튼 허준을 하면서 정확하게 이 신에서 이렇게 연기해야지 이런 생각보다는 상대와 눈을 마주치면서 보고 듣고 느끼면서 연기했죠. 그렇게 감정이 점점점점 왔어요. 연기는 보고 듣고 느끼는 거예요. 그런데 요즘은 몇몇 후배들이 보지도 느끼지도 듣지도 않으려고 해요. 상대의 눈을 보고 소리를 듣고 느끼면서 해야하는 것인데. 아무리 대사를 쳐줘도 귀를 막고 있어서 언제 대사가 끝나는 지도 몰라요.

Q. ‘허준’에서 만난 배우들은 어땠나요?
김주혁 : 이번에는 다들 너무나 착하고 좋았어요. 센스있는 친구들도 있고. 배우는 센스가 있어야 해요. 물론 신인들의 경우, 너무 긴장해서 경직한 것일지도 모르지만요.

Q. 끝으로 차기작 계획을 들려주세요.
김주혁 : 영화 하고 싶어요. 하지만 아직은 보고 있는 책(시나리오)은 없어요. 볼 시간이 없었으니까요. 그럴 시간 있으면 대사를 외워야했어요(웃음). 지금 무척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고단하지만, 그래도 텀을 길게 해서 다음 작품을 만나고 싶지는 않아요. 최소한 한 달은 쉬어야지 생각은 하지만 아직 결정된 작품이 없으니 그 이상은 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전 늘 작품을 통해 힐링을 받기도 하고. 얼른 다음 작품 만나고 싶어요.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제공. 나무엑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