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 “항상 새로운 것에 눈이 더 쏠린다”(인터뷰)

이정재
이정재의 전성기가 다시금 왔다. ‘도둑들’로 시동을 걸었고, ‘신세계’로 시속을 올렸다. 그리고 ‘관상’으로 속도를 더 끌어 올렸다. 단지 예전의 인기를 얻었다는 게 아니다. 데뷔 20년차 배우지만 요즘 작품 속 이정재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연기하는 재미에 푹 빠진 느낌이다. 작품 속에서 신나게 뛰어 노는 모습이 스크린을 넘어 대중들에게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원톱 주연을 나섰을 때도 이정재는 분명 멋있는 배우였다. 하지만 여러 배우와 앙상블을 만들어가는 지금의 이정재가 훨씬 더 밝은 빛을 내고 있다.

‘관상’에서도 그렇다. 이정재가 돋보이는 건 단지 주연이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이정재는 영화 시작 1시간 후에나 등장한다. 분명 주인공으로 알고 갔는데 한참 있다 등장해 적잖게 당황했을 관객도 꽤 있었을 거라 본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이정재의 수양대군에 매료되고 만다. 1시간 이후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는 이정재만을 위한 특별시간처럼 느껴진다. 그의 카리스마는 수양대군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었고,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수양대군을 탄생시켰다. 대중의 환호, 당연했다.

이정재는 데뷔 때부터 매번 변신을 시도했다. 그 변신과 새로움이 항상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낸 것만은 아니지만 ‘도둑들’, ‘신세계’ 그리고 ‘관상’까지 매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요즘에는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고, 같이 걷고 있다. 이정재 역시 “좀 새롭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지금의 분위기를 자평했다.

Q. 영화에 대한 반응, 무엇보다 수양대군을 연기한 이정재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좋다. ‘신세계’ 때도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그때와 다른 점이 있나.
이정재 : 둘 다 열심히 했다. 다만 연기하는 스타일이라고 해야 할까. 좀 새롭다고 생각한 것 같다. ‘저 사람이 원래 저런 연기 스타일이었나’, ‘저런 내면도 있었나’ 등 이런 느낌들이다. 조금 새로운 것을 보신 것에 대한 반응이 있는 것 같다.

Q. ‘도둑들’, ‘신세계’ 그리고 ‘관상’까지 호평을 받고 있다. 이정재 중심의 영화는 아니지만 굉장히 돋보인다. 20년 차 배우에게 실례되는 질문일 수 있지만 근래 들어 ‘조화’나 ‘앙상블’의 맛을 제대로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이정재 : 좋은 배우들과 일하면 도움을 많이 받는 거다. 또 나만 받을 수 없으니까 받은 만큼 도움을 줘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게 호흡이다. 그러면서 그들도 재밌어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흥행이 안 좋았다면 여러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는데 다행히 흥행 적으로도 괜찮았던 것 같다.

Q. 그리고 연기에 재미도 부쩍 느끼는 것 같다. 최근 영화들을 보면 연기를 재밌게 한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기도 하고.
이정재 : ‘하녀’ 때부터 작품 수를 늘려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연기에 더 재미를 붙여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공교롭게도 좋은 배우들과 좋은 감독님과 일할 기회가 ‘하녀’ 때부터 운이 좋게도 계속됐던 것 같다. 더할 나위 없이 재밌게 한 것은 사실이다. 훌륭한 배우와 연기를 같이 한다는 건 개인적으로 자극도 된다. 그러면서 즐거움도 배가 된다.

이정재
Q. 후배들이 이정재와 연기를 할 때 지금 이정재가 느끼는 그런 기분을 느껴야 할 텐데. 사실 데뷔 연차로 보면 그럴 위치라고 생각된다.
이정재 : 하하. 부담스럽다. 글쎄요. 자연스럽게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송강호 선배만 보더라도 나이 차가 꽤 나는 편이다. 그 나이 때까지는 하고, 그다음부터 후배랑 하면 안 될까요.

Q. ‘신세계’의 최민식, 황정에 이어 이번엔 ‘관상’ 송강호다. 쟁쟁한 배우들인데 같이 호흡을 맞춰보니 송강호는 어떤 배우던가.
이정재 : 굉장히 감성적인 배우인 것 같다. 다른 배우들은 이렇게 말할 것 같진 않지만. 영화 ‘살인의 추억’, ‘의형제’, ‘설국열차’ 등에 나왔던 송강호란 배우를 보면 그 특유의 느낌이 있다. 그걸 뭐라고 해야 하나, 참 애매하긴 하다. 하지만 어찌 됐던 굉장히 감성적이다. 감수성이 다른 남자배우하곤 확연하게 다른 배우인 것 같다. 어떤 추억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배우를 바라보는 느낌이 그렇다. 그 무언가가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Q. ‘신세계’ 때는 가장 늦게 캐스팅됐다. 그래서 최민식, 황정민과 같이 호흡을 맞춘다는 기대가 있었다고 했다. ‘관상’의 경우엔 어땠나. 약간 느낌이 달랐을 것 같다.
이정재 : 강호 형만 캐스팅된 상태였다. ‘신세계’ 때하곤 다르긴 하다. 그때는 두 선배하고 같이 일해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면, ‘관상’은 시나리오를 봤을 때 수양대군이 정말 멋있었다. 러닝타임을 맞추기 위해 편집된 신들이 있다 보니 다소 악역으로만 보이지만 시나리오상에는 다른 면모도 볼 수 있는, 복잡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남자 연기자라면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욕심을 낼 법한 멋있는 캐릭터였다.

Q. 그런데 주인공인데도 등장이 굉장히 늦다. 영화를 보면서 분명 주연인데 왜 이렇게 안 나오지 했다.
이정재 : 가장 효과적인 타이밍이었다고 본다. (수양대군은) 이야기의 흐름을 선회시키는 인물이다. 무엇보다 감독님이 고심을 많이 했다. 조금 앞으로 할까 아니면 조금 뒤로 할까? 아주 오래된 생각 끝에 그 타이밍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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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신세계’의 자성과 달리 수양대군은 성격이 시원시원하게 드러나지 않나. ‘신세계’ 인터뷰 당시 어려움을 드러냈는데 그에 비하면 이번엔 조금 수월했겠다.
이정재 : 분명 어떤 면에선 수월한 게 있다. ‘관상’은 감정을 정확하게, 직접 전달하니까 보시는 분들이 이해하기 편하다. ‘신세계’는 보여주지 않는 성격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잘 캐치를 할까가 숙제였다. 그래서 조금 수월하기는 한데 (수양대군) 이 캐릭터가 어려운 것은 워낙 강력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한 시간 이후부터 후반까지 폭격기처럼 퍼부어야 하는데 조금만 더하면 오버할 것 같고, 조금 덜하면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거다. 그 수위를 맞춰가는 게 쉽지 않았다. 또 왕의 자손이니까 품위도 있어야 하지, 타고난 기질 때문에 약간의 폭력적인 면도 있어야 하고. 그런 것들이 풀기 힘든 숙제였다.

Q. 수양대군은 영화 또는 드라마 등에 참 많이 다뤄지는 왕이다. 그만큼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배우로선 수많은 배우가 수양대군 역할을 했다는 게 부담일 수 있다.
이정재 : 사실 드라마 속 수양대군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차별성을 둬야겠다는 생각이 별로 없었다. 무엇보다 다른 수양대군하고 비교되는 것보다는 시나리오에 나와 있는 수양이 워낙 잘 설정돼 있었다. 이것만 잘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왕의 근엄함도, 시정잡배 같은 모습도 다 있어야 했고, 발성연습도 필요했다. 생각하고, 준비해야 할 게 많다 보니 다른 분들이 어떻게 했는지까지 신경 쓰지 못했다.

Q. 오히려 다른 수양대군을 신경 쓰지 않고, 시나리오만 믿고 간 게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이정재 : 맞는 말이다.

Q. 역사 속 실제 수양대군에 대한 연구는 많이 했나.
이정재 : 물론이다. 수양대군을 복잡하고, 아주 다양한 성격의 소유자로 그리고 싶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은 게 왠지 수양대군이 그랬을 것 같았다. 성격이 ‘대쪽같다’고만 하면 맞는 건가? 여하튼 생각의 깊이와 결단력이 무서울 정도로 힘이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에 와서 좋은 사람이니 나쁜 사람이니 이야기를 하는데 둘 다인 것 같다.

Q. 수양대군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나.
이정재 : 좀 있다. 역사 속 수양대군과 비슷한지는 모르겠는데 ‘관상’에서 수양대군은 내가 연기를 했으니까. 예우를 갖춘 당당함을 지키려고 하는 건 조금 내 성격이 많이 묻어난 거다.

이정재
Q. 영화에서 수양대군, 이정재는 역모의 상, 이리의 상이라고 나온다. 관상을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들었는데 영화를 하면서 실제 이정재는 어떤 상인지 궁금했을 것 같다.
이정재 :
요즘도 실제 관상을 보는 데가 있나요. (기자님이 보시기엔) 무슨 상 같아요? 하하. (기자 : 그걸 알았으면 자리 폈겠죠. 하하) 노년에 성공할 것 같은가요.

Q. 관상에 아예 관심이 없는 건가.
이정재 : 믿고 안 믿고를 떠나 재미삼아 보는 분들도 있을 텐데 이미 나는 알려진 사람이다. 뭐라 이야기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상황에서 그 사람(관상 보는 사람)이 이야기하는 게 신빙성이 있을까 싶다. 기독교 신자라서 그런 것도 있고.

Q. 이정재가 다음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굉장히 기대된다. ‘무뢰한’, ‘빅매치’, ‘신세계’ 후속편 등 여러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정재 : 빨리 뭔가를 결정할 거다. 그런데 너무 기대하지 말아 달라. 언제까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나. 하하. 잘할 수 있을만한 것 혹은 지금같이 새로운 것을 할 것 같다. 지금 보고 있는 것 중에 그런 게 있다.

Q.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욕구가 막 솟구치나 보다.
이정재 : 도전은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어떤 기자분은 ‘당신은 장르 혹은 캐릭터를 너무 확 바꾸니까 힘들어한다. 관객들이 보고 싶어 하는 이정재의 모습도 있는데 그걸 보여줘야 하지 않나’라고도 했다. 근데 그건 내 성격과 맞지 않는 것 같다. 호기심 좋아하고, 겁 없고, 새로운 것을 더 하고 싶고, 그런 것에 눈이 더 쏠린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