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리뷰] ‘미스 스티븐스’, 아물지 않는 상처를 토닥이는 당신

[텐아시아=박미영 기자]

영화 ‘미스 스티븐스’ 포스터.

*이 글에는 미스 스티븐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극장에서 연극을 보고 있는 레이첼 스티븐스(릴리 레이브), 공연이 끝나고 다른 관객들은 하나둘 자리를 뜨건만 우두커니 앉아서 눈물을 글썽인다. 집에 돌아와서 술잔을 기울이는 그녀의 모습이 어쩐지 적적하다. 다음날, 프랭클린 고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그녀는 켄 키지의 소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가지고 수업을 한다. 한 교실에 있는 학생들이지만 마고(릴리 라인하트)는 수업에, 빌리(티모시 샬라메)는 스티븐스에 집중한다.

다른 교사들이 거절한 2박 3일 일정의 연극 대회 인솔을 자청한 스티븐스는 연극 대회 참가를 야무지게 기획한 마고, 붙임성이 좋은 샘(앤서니 퀸틀), 교장으로부터 행동장애가 있다고 주의 사항을 전해 들은 빌리를 데리고 출발한다. 스티븐스의 낡은 차 타이어가 그만 터지고 만다. 스티븐스의 입에서는 얼결에 욕이 터져 나오고, 빌리는 평소와 다른 스티븐스의 행동이 재미나다. 스티븐스가 붙박이로 틀어놓는 라디오 채널에서는 밴드 아메리카(America)의 ‘Sister Golden Hair’가 흘러나온다. 옛날 노래, 아빠들 노래라며 질색하는 마고와 달리 다른 세 사람은 노래를 즐긴다. 그들 앞으로 목적지가 점점 가까워진다.

영화 ‘미스 스티븐스’ 스틸컷.

‘미스 스티븐스’(2016)는 연출을 맡은 줄리아 하트가 교사였던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영감을 얻어서 각본으로 녹여낸 작품이다. 스티븐스 역의 릴리 레이브는 섬미한 감정을 차분하게 그려낸다.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인 애덤 맥케이의 ‘바이스’(2018)에서 그녀가 보여준, 야심이 넘치는 리즈 체니 역과는 사뭇 다른 얼굴로. 빌리 역의 티모시 샬라메는 ‘미스 스티븐스’를 자신의 연기 여정의 프롤로그라고 표현했다. 빌리가 무대에서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 속 모놀로그를 연기하는 모습은 광채가 난다. 티모시 샬라메는 루카 구아다니노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에서 치명적인 매력을 뿜던 열일곱 살 소년 엘리오로 등장하기 전에도 감정의 결을 켜켜이 쌓아가고 있었다.

스티븐스는 학창 시절 연극을 했을 때 키도 크고 엉덩이가 작아서 남자 역을 많이 했다. 공연 중에 상대역을 하던 여자아이가 진짜 키스를 하는 바람에 교장실로 불려가지만 친구 탓으로 돌리지 않는 속 깊은 소녀였다. 교사가 된 그녀는 아이들 앞에서만 말하다 보니 자신과 같은 성인들과 대화하는 법이 서툴다. 스티븐스는 연극 대회를 오기 전날, 고인이 된 엄마가 배우로 공연하던 극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1년 전 떠나보낸 엄마를 다시 보내는 기분에 젖어든다. 그녀는 차마 지우지 못한 엄마와의 문자 메시지를 읽어 내려가고, 한잔 술에 기대고,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한다.

빌리는 연기에 남다른 재능이 있다. 그렇지만 감정들이 불쑥거린다. 그는 일주일 전까지 꼬박꼬박 먹었던 약을 남들 몰래 끊었다. 슬프지 않으려고 먹는 약이지만 그 약을 먹으면 아무 것도 느낄 수가 없기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슬프든지 혹은 멍하든지. 빌리는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채 슬픔을 온 마음으로 끌어안고 있다.

‘나를 조금만 이해해 줄래요/ 나를 조금만 기다려 줄래요/ 나를 조금만 사랑해 줄래요/ 사랑이 느껴질 만큼만/ 괜찮은 척했지만 이젠 말할래요/ 참기 힘들어요’. 극 중 흘러나오는 ‘Sister Golden Hair’의 가사로 스티븐스와 빌리의 감정이 고스란히 배어난다. 까칠하고, 친구도 별로 없는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기웃거린다. 그리고 아물지 않는 상처를 토닥거린다. 그윽한 위로가 된다.

5월 2일 개봉. 12세 관람가.

박미영 기자 stratus@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