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인터뷰] ‘크게 될 놈’ 김해숙 “수만 가지 캐릭터의 ‘엄마’…대변할 수 있어 자부심”

[텐아시아=태유나 기자]

영화 ‘크게 될 놈’에서 사형수 아들을 둔 까막눈 순옥 역을 연기한 배우 김해숙. /사진제공=준앤아이

TV와 스크린을 넘나들며 다양한 어머니상을 보여온 배우 김해숙이 다시금 모성 연기를 선보인다. 어머니라는 익숙함 속에 매번 새로운 연기를 선보였던 김해숙이 이번에는 투박하지만 속정 깊은 어머니 순옥으로 분했다. 지난 18일 개봉한 영화 ‘크게 될 놈’은 헛된 기대만 품고 살다 사형수가 된 아들 기강(손호준 분)과 그런 아들을 살리기 위해 글을 배우는 까막눈 어머니 이야기다. 김해숙은 자식을 향한 모성애를 절절하게 표현하며 또 하나의 어머니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이 세상 모든 어머니를 대변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김해숙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10. 왜 이 영화에 출연하겠다고 마음 먹었습니까?
김해숙: 시나리오를 보니 순옥이 아들 기강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가 가슴에 와 닿았어요. 순옥의 편지가 마치 내 어머니가 보내주신 편지 같다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났어요.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2년 정도 됐을 때였거든요. 아직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문득 울컥할 때가 많습니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다 그런 것 같아요. 이 영화는 작지만 요란하지도 않고, 거창하지 않지만 진심을 담았어요. 이런 영화가 한 편은 나와 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출연하게 됐어요.

10. 지금까지 다양한 어머니상을 보여주셨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어떻게 차별화하셨나요?
김해숙: 전작들의 캐릭터와 비슷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한 사람이 매번 다른 어머니의 모습을 표현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순옥은 아들을 위해 글까지 배울 수 있는 강한 엄마예요.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지만 자식을 위해서는 못할 게 없는, 한없이 강해지고 또 약해질 수 있는 인물이죠. 그래서 초반에는 담담한 척 연기하지만 아들이 사형수가 됐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뒤로는 애끊는 모정을 최대한 표출하려 노력했어요.

10. 엄마 역할만 맡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김해숙: 예전에는 할 수 있는 역할이 엄마로 한정돼있다는 것에 답답함을 느낀 적이 있어요. 하지만 영화 ‘해바라기’에서 아들을 죽인 사람을 아들로 받아들이는 엄마인 양덕자 역을 연기하면서 내가 얼마나 건방진 생각을 해왔는지 깨달았죠. 엄마라는 단어에는 수만 가지 캐릭터가 있습니다. 작품마다 엄마의 외모, 성격, 환경, 사연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세상의 다양한 엄마들을 연기할 수 있어 감사했고, 엄마라는 존재를 대변할 수 있는 배우로 기억되는 것에 자부심 느끼고 있어요.

10. 아들 역인 손호준과의 호흡은 어땠습니까?
김해숙: 아들이 일찍 가출해서 같이 연기하는 장면이 많지 않았어요.(웃음) 손호준 씨는 전부터 굉장히 좋게 생각하는 후배 배우 중 한사람이예요. 잠깐이지만 같이 호흡을 맞추면서 젊은 배우의 진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어요. 아들로 호흡을 맞춰 보니 그 배우가 갖고 있는 많은 것들이 눈에 보이더군요.

10. 손호준 씨는 코믹하고 헐렁한 이미지가 강한데, 촬영하면서 어떤 점이 인상적이었나요?
김해숙: 호준 씨가 유치장에서 혼자 오열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 연기를 보고 칭찬을 많이 했죠. 이때 까지 보지 못했던 모습을 봐서 인상 깊었어요.

영화 ‘크게 될 놈’의 한 장면. /사진제공=밀짚모자영화사

10. 아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딸 기순(남보라 분)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우려도 있어요.
김해숙: 부모님들은 이해하실 겁니다. 딸은 알아서 잘 하니 믿음이 있었고, 아들은 늘 사고만 쳐서 불안했기 때문에 그만큼 더 챙겼던 거죠. 물론 영화를 보시는 딸 입장에서는 ‘왜 아들만 저렇게 챙기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하하. 모자란 자식을 품에 안고자 했던 엄마의 사랑이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10. 교도소로 아들을 만나러 갈 때마다 새하얀 한복을 입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가요?
김해숙: 감독님은 깔끔한 평상복으로 입자고 했는데 내가 한복을 고집했어요. 아직도 나이 드신 분들은 중요한 곳에 갈 때 한복을 입잖아요. 시골 섬마을 엄마가 한복을 입는다는 건 아들에게 보일 수 있는 가장 좋은 옷인 겁니다. 엄마의 깨끗한 사랑을 한복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10. 촬영 내내 발 골절로 힘들었다던데, 연기에 지장은 없었습니까?
김해숙: 다리에 깁스를 하고 촬영하다 보니 옷도 자유롭지 못했고 움직이는 것도 제한적이었어요. 몸이 불편하면 연기에도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었어요. 촬영 하는 내내 서러워서 운 적도 많았습니다.

10. 촬영 중에 생긴 부상이었나요?
김해숙: 그렇지는 않고요. 촬영 들어가기 직전에 다쳤어요. 당시 뼈가 안 좋은 상태여서 회복도 오래 걸렸어요. 1년 동안은 제대로 걷지 못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뼈는 붙었지만 인대가 두 군데 찢어져있어 조심하는 중이예요. 앞으로 액션 연기도 해야 하는 데 걱정입니다. 호호.

10. 아픈 와중에 연기 걱정이라니요.(웃음) 최근 본 작품 중에 욕심 났던 캐릭터가 있나요?
김해숙: 얼마 전에 영화 ‘어바웃 리키’를 봤는데,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리키가 인상적이었어요. 자식이 있는 엄마이지만 음악에 대한 꿈이 있는 로커여서 기억에 남아요. 나이에 상관 없이 도전할 수 있는 역할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에서 초강대왕 역을 맡았을 때 너무 재밌었어요. 내가 코미디에 소질이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죠. 내가 내 연기를 보고 웃을 정도였으니까요. 호호. 내가 이렇게 욕심이 많아요. 아직도 해보고 싶은 게 이렇게 많으니.(웃음)

10. 그런 욕심이 46년 차 배우 생활의 원동력인 것 같은데요.
김해숙: 나는 일하고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고 새로운 캐릭터가 들어오면 흥분돼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내가 40년이 넘게 꾸준히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건 아직까지도 왕성하게 활동 하시고 계신 훌륭한 선배님들을 보며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김해숙은 ‘크게 될 놈’을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영화”라고 소개했다./사진제공=준앤아이

10. 스케줄이 많으면 건강관리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김해숙: 나이가 들면서 살 찌는 내 모습에 스트레스 받기도 하고, 건강에도 예민해졌는데 요즘에는 다 내려놨어요.(웃음) ‘이건 몸에 나빠’가 아니라 ‘먹고 싶으면 먹자’예요. 주위에 나 같이 푸근한 엄마 캐릭터도 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 핑계로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스트레스 안 받고 사는 중입니다. 살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좋으면 하나가 안 좋다는 거예요. 두 가지를 다 가지려고 하면 욕심이 되고 힘들어져요. 모든 것에 아등바등하지 않고 순응하려고 해요. 그게 건강의 비결이 아닌가 싶어요.

10. 배우 김해숙의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요?
김해숙: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자연스레 노인들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사람은 나이대로 가는 것 같아요. 젊었을 때는 사랑 이야기가 좋았는데 지금은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삶에 대한 이야기가 좋아요.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노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작품들이 많이 나와줬으면 해요.

10. 관객들이 영화를 어떻게 봐주셨으면 좋을까요?
김해숙: ‘크게 될 놈’은 어머니의 깊은 사랑과 그 사랑을 통해 변화하는 아들, 그 아들이 다시금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눠주는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마음이 힘들고 지칠 때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네 부모님의 사랑을 다시금 떠올리고, 공감과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태유나 기자 youyou@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