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인칭 관찰자 시점] ‘헬보이’, 성큼 자라는 뿔 면도를 해야 하는 지옥소년

[텐아시아=박미영 작가]

영화 ‘헬보이’ 스틸컷.

*이 글에는 헬보이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반쪽이’라는 전래 동화가 있다. 어릴 적 보았던 동화라서 기억도 흐릿하지만 흑백 삽화 속 반쪽이는 참으로 기이하고 구슬퍼 보였다. 옛날 옛적에 아이가 간절했던 어느 부부에게 삼형제가 점지된다. 평범한 첫째 둘째와 달리 막내는 눈도 귀도 팔도 다리도 하나씩으로 태어나 반쪽이로 불린다. 그렇지만 반쪽이는 고비가 닥쳐도 힘과 기지로 헤쳐 나간다. 나는 반쪽이에게 사로잡혔다. 흑백으로 담길지라도 곱디고운 소녀 (심)청이나 콩쥐가 아니라 기구하면서도 기괴한 소년 반쪽이에게. ‘헬보이’의 모습에 추억 속 그 소년이 겹쳐졌다.

서기 517년. 암흑시대의 영국. 전설의 아서왕과 대마법사 멀린이 ‘피의 여왕’으로 일컫는 마녀 비비안 니무에(밀라 요보비치)에게 항복한다며 찾아간다. 니무에의 최측근 마녀 가네다의 도움을 받은 아서왕은 전설의 검 엑스칼리버로 니무에의 몸을 6조각으로 나눈 후 각각 상자에 넣어서 성수로 봉인한다. 오직 신을 섬기는 자만이 풀 수 있게끔.

현재 멕시코의 티후아나. ‘B.P.R.D’(Bureau of Paranormal Research & Defense: 초자연 현상 연구 방위국)의 세계 최고 초자연 현상 수사관 헬보이(데이빗 하버)는 마물로 변해버린 동료 루이즈를 찾아낸다. 둘 사이에 격투가 벌어지고,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 루이즈가 말한다. “영웅인 척 하지 마. 난 네 정체를 알아. 네 심장은 분노로 가득 차지. 결국 어느 편을 택할지 알아. 끝이 오고 있어. 아눙 운 라마(Anung Un Rama)!”

미국 콜로라도 ‘B.P.R.D’ 기지. ‘B.P.R.D’의 수장 브룸 교수(이언 맥셰인)는 동료 루이즈를 잃은 슬픔으로 3주나 술독에 빠져 있던 아들 헬보이를 위무한다. 구원의 여지가 없는 마물이었노라고. 그리고는 헬보이의 성큼 자라는 뿔을 다듬어 준다. 브룸 교수가 미남이라며 추어올리자 헬보이는 기꺼이 받아들인다.

영국 오컬트 조직 ‘오시리스 클럽’. 브룸 교수의 부탁으로 헬보이가 거인 사냥을 돕기 위해 찾아든다. 예견자 레이디 해튼(소피 오코네도)은 헬보이에게 그가 세상에 왔던 날을 들려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고 독일의 패배는 기정사실화였던 즈음, 스코틀랜드 어느 섬에서 흑마술사 라스푸틴이 지옥의 끝에서 마물을 소환했는데 그 마물이 바로 너라고. 모두의 만류에도 브룸 교수는 인내와 이해, 잠재력을 보고 너를 아들로 키웠노라고. 다음날 ‘오시리스 클럽’ 멤버들은 거인 사냥으로 위장해서, 과거의 실수를 바로잡겠다며 헬보이를 공격한다.

헬보이에게 해묵은 응어리가 있는 외눈박이 바바야가와 괴물 돼지 그루아각은 조각난 몸이지만 살아있는 니무에를 되살리려고 한다. 마침내 부활한 니무에는 이 세상에 피의 세례를 내리고자 한다. 헬보이는 죽은 자들과 대화하고 영혼을 불러올 수 있는 영매 앨리스(샤샤 레인)와 M-11 특수작전 책임자이자 재규어로 변신하는 벤 다이미오(대니얼 대 김)와 함께 니무에로부터 인류를 구하고자 한다.

지난 10일 개봉한 ‘헬보이’는 기예르모 델 토로의 ‘헬보이’(2004) ‘헬보이2’(2008)와는 별개로 리부트된 작품이다. 개봉에 앞서 가장 기대를 모은 점은 ‘헬보이’의 원작자 마이크 미뇰라가 각본에 참여하고, ‘디센트’(2005)로 공포의 진수를 보여준 닐 마셜 감독이 연출을 맡는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연유로 이야기의 타래가 성글고 투박한 것은 더없이 아쉽다. 그렇지마는 초자연적 빌런들, 즉 크리처가 선연하고, 액션은 시원시원하고, 콸콸콸 터지는 피를 비롯해서 애매한 청불이 아니고, 쿵짝대는 음악도 영화의 톤과는 묘하게 들어맞는 등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있다.

헬보이가 첫 등장하는 순간, 스마트폰에서 브룸 교수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빠 말 들어.” 헬보이는 아버지인 브룸 교수의 말을 따르지만 노상 징징거린다. 형광빨강의 살빛에 뿔끈거리는 몸집, 이마에는 치솟는 뿔, 싯누런 눈, 지글지글 끓는 목소리, 파멸의 오른손, 살짝 말린 꼬리를 가졌으면서도. 헬보이는 우상인 랍스터 존슨을 보면 마구 기쁘고(喜), 골나면 돌진하고(怒), 슬픔은 술로 달래고(哀), 언제 어디서든 거리낌 없이 농담을 즐긴다(樂). 또한 겁보 구석도 있고, 자신의 본성과 운명이 궁금하다. 곰곰 따지면 헬보이와 한 팀인 영매 앨리스도 소녀이고, 성인이지만 중2처럼 수시로 울컥하는 다이미오도 소년 같다. 질풍노도의 청춘들이다.

‘헬보이’는 ‘데드풀’(2016) ‘베놈’(2018)처럼 일종의 불량식품 같은 다크 히어로계지만, 차이점을 짚자면 그는 소년이다. 물론 외모로는 셋 중 제일 연장자 필이 나지만, 지옥 맛보다 소년 맛을 강하게 풍긴다. 성큼 자라는 뿔 면도를 해야만 하는, 기이하면서도 기찬 지옥소년의 매력이 은근하다.

쿠키 영상은 2개다. 청소년 관람 불가.

박미영 작가 stratus@tenasia.co.kr

[박미영 영화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한 작가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진위의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텐아시아에서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