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인터뷰] ‘생일’ 전도연 “거절하고도 끝내 마음에 맴돌았던 작품”

[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영화 ‘생일’에서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엄마 순남 역으로 열연한 배우 전도연./사진제공=매니지먼트 숲

“뭔가를 느끼라고 강요하지 않아요. 생일 모임에 초대 받은 한 사람으로 그 자리에 앉아있는 느낌일 거에요.” 세월호 참사로 소중한 이를 보낸 사람들의 이야기인 영화 ‘생일’. 전도연은 아들을 잃은 엄마 순남을 연기했다. 11살 딸을 키우고 있는 엄마이기에 전도연은 순남이 더 아프고 쓰렸다. 쉽지 않은 소재의 영화여서 처음엔 출연을 거절했다. 그래도 그의 마음속엔 이 영화가 맴돌았다. 용기를 낸 전도연의 ‘생일’, 그의 초대장을 들여다봤다.

10. 영화 ‘밀양’에서 아들을 잃은 엄마를 연기하면서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이번 영화 ‘생일’에서도 아들을 잃었다. 어려운 영화였을 텐데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전도연: ‘밀양’의 신애를 연기한 이후에 아이를 잃은 엄마 역할은 안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신애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걸 다 보여줬다고 생각했고, 세월호 사건을 소재로 하는 부담감 때문에 처음엔 출연을 거절했다. 그래도 이종언 감독님과 만나면 이 영화에 대해 얘기를 나누곤 했다. 지나고 보니 겉으론 거절했어도 마음으로는 작품을 놓지 않았던 것 같다. 출연하자고 용기 냈던 이유는 이 영화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낸,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10. 이종언 감독과는 영화 ‘밀양’ 이후 다시 함께 작업하게 됐는데.
전도연: 감독님이 ‘밀양’ 연출부에 있었을 땐 스크립터였다. 당시 나는 배역 때문에 꽤 날카로워져 있어서 감독님께도 예민하게 굴었던 것 같다. 이번 영화를 하기 전까진 ‘종언아’라고 불렀는데, 이 시나리오를 읽고는 바로 ‘감독님’이라고 존칭하게 됐다. ‘감독님’이라서가 아니라 이 시나리오를 쓴 데 대한 존중의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10.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한 데 대한 부담감을 지울 순 없었을 것 같은데.
전도연: 내가 캐스팅되기 이전에 감독님이 글을 쓰기 전부터, 감독님은 고민과 부담감을 안고 계셨을 것이다. 그래도 해야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만들기로 했을 거다. 나 역시 세월호사건에 대한 피로도,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는 점에서 의견이 분분하다는 점을 안다. 감독님도, 배우들도 (어떤 의견에 대해) ‘좋아요’라고 하지 않고 ‘괜찮을까요?’라고 했다. 하나하나 타진해 가면서 조심스럽게 정했다.

영화 ‘생일’의 한 장면. 사진제공=NEW

10. 순남 캐릭터를 어떻게 잡아나갔나?
전도연: 분석하기보다 한발짝 떨어져서 순남을 보려 했다. 그게 이 영화를 만드는 방식이기도 했다. 모두가 다 아는 사건이고, (나도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를 잃은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가늠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오열했다. 하지만 내 감정이 순남의 것을 넘어설까봐 경계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순남의 것인지 내 것인지를 계속 검열했다.

10. 감정의 표출과 절제를 오가며 적정한 수준을 찾는 게 중요했을 것 같은데.
전도연: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쏟아지는 감정을 참을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촬영은 괜찮았다. (감정을 절제해야 하는 장면에서는) 그 상황을 이해하고 동의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개봉 전 완성된 편집본을 감독님과 함께 봤는데, 내가 감독님에게 ‘순남이 유령같다’고 말했다. 영혼 없이 떠도는 인물처럼 느껴졌다.

10. 세월호 사건 유가족과의 시사회는 어땠나?
전도연: (이 영화 작업을 한 후) 제일 겁이 났던 순간이었다. 어머니 한 분이 손수 꽃수를 놓은 지갑에 노란 리본을 묶어서 “감사하다”면서 내 손에 쥐어주셨다. 내가 여기 오기까지 힘들어했던 게 죄송했다. 그 지갑을 받고 눈물이 터져 상영관을 나올 때까지도 얼굴을 못 들었다. 내가 오히려 위안을 받았다.

10. 영화를 찍으면서 도망가고 싶을 만큼 어려웠던 장면이 있나?
전도연: 혼자 오열하는 신이 있다. ‘아파트가 떠내려가라 운다’라고 대본에 나와 있다. 순남이 뭘 해야 하는지 명확했기 때문에 겁이 났다. 어떻게 울어야 아파트가 떠내려가게 우는 건지, 그렇게 오열하는 순간 순남의 마음은 어떨지, 카메라 앞에서 그걸 구현해낼 수 있을지 두려웠다. 그래서 카메라 앞에 서기까지 어떤 연기를 하겠다고 의도하지 말자고 했다. 아무 것도 아닌 신이라고 생각했는데, 대사 한마디가 아주 어려웠던 장면도 있다. 정일(설경구 분)에게 이혼 서류를 주면서 “많이 생각한 거야”라고 하는 장면. 관계를 정리하는 서류, 그 서류가 주는 의미, 그걸 내미는 마음의 무게감이 크게 느껴졌다.

전도연은 영화를 본 유가족들의 감사하다는 말에 위안을 받았다고 했다. /사진제공=매니지먼트 숲

10. 배우 설경구가 극 중 남편 역을 맡았다. 18년 만에 다시 함께 작업을 한 소감은?
전도연: 예전과 똑같아서 이상하면서도 편했다. (촬영 현장에서) 무뚝뚝해도 묵묵히 지켜주는 느낌. 친정오빠처럼 말이다. 영화에서 정일도 겉도는 것 같지만 항상 옆에 묵묵히 있다.

10.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영화를 봤을 때 감정이 북받쳐 올랐던 순간은?
전도연: 순남이 아들 수호가 찾아오는 환상을 보면서 웃는다. 내가 연기를 잘해서가 아니라(웃음) 그런 순남을 보니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났다.

10. 생일 모임 장면은 30분간 롱테이크로 찍었다고 들었는데, 촬영은 어땠나?
전도연: 거기 있는 50~60명이 모두 주인공인 장면이었다. 카메라가 자기를 찍지 않고 있어도 서로 돕기 위해 다 같이 울었다. 저도 처음인 작업이고,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라고 생각했는데, 슬픔을 같이 나누고 등 한번 토닥여주는 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알았다.

전도연은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는 것에 감사하게 됐다고 했다. /사진제공=매니지먼트 숲

10. 연기자로서 작품을 할 때 ‘진짜에 집착한다’고 한 적 있다. ‘진짜’는 무엇을 의미하나?
전도연: 어떤 연기를 할 것이냐의 방식이다. 슬픔이든 기쁨이든 어떤 감정이나 상황에 대해 정형화된 생각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프러포즈를 받은 여자의 표정은 이러할 것이다’와 같은 식으로. 하지만 막상 경험해보면 생각과 다를 수도 있다. 예전에는 남들이 생각하는 대로 보여주려고 했다면, 지금은 남들이 아니라고 할지라고 내가 그렇게 느낀 적이 있다면 내가 선택한 연기가 ‘진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10. 이번 작품을 통해 찾은 의미가 있다면?
전도연: 변한 게 있다면 특별한 것을 바라기보다 작은 것에 감사하게 됐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 생각하지만 사실 행복이라는 건 뭔가를 한다고 뚜렷하게 오는 건 아니지 않나. 아이와 우리 가족 모두가 건강한 것, 하루를 무사히 보낸 것에 감사하다.

10. 엄마로서의 생활은 어떤가?
전도연: 아이가 있고 없고는 너무 다르다. 아이가 생활의 중심이 된다. 여배우로 화려하고 멋진 삶을 살기도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면 무수리나 다름없다.(웃음) 아이 양말을 신기고 간식을 챙겨주고 학교를 보내며 보통의 일상을 산다.

10. 영화를 어렵게 느낄지 모를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전도연: ‘개봉 안 하면 안 돼?’라는 생각도 한 적 있다. 이 영화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 분들이 없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런 리스크를 안고 가야 하는 것이 ‘생일’의 숙명이다. 다시 아프자고 만든 영화가 아니라, 아팠지만 또 살아가야 하고, 그리고 좋은 이웃이 돼서 응원하고 살아갈 힘을 얻자는 거다. 그런 면에서 영화를 생각해주길 바란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