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리뷰] ‘한강에게’, 詩가 뚝뚝 흐른다

[텐아시아=박미영 기자]

영화 ‘한강에게’ 포스터.

진아(강진아)의 오랜 연인 길우(강길우)는 사고로 의식을 잃은 채 병상에 누워 있다. 그래서 진아는 요즈음 첫 시집을 준비 중인데도 자신의 시를 읽는 것이 힘들다. 지인들은 진아의 마음을 살피지만, 진아에게는 이마저도 힘들다. 어느 날, 술에 취한 진아는 길우의 친구인 기윤(한기윤)에게만 버거운 속내를 털어놓는다. “자꾸 괜찮냐고 물어보니까, 안 괜찮은데 괜찮다고 말해야 되잖아.”

시를 쓰는 진아와 연기를 하는 길우는 10년이 넘게 연애를 했다. 진아에게는 둘만의 느릿한 농담도, 부쩍 늘어난 새치를 염색해주는 길우의 손길도, 뒤에서 끌어안는 길우의 몸짓도 편안하고 익숙했다. 그리고 한강에서 기윤까지 가세해 셋이서 자전거를 타고, 폭죽놀이를 하고, 술잔을 기울였다. 진아는 일상을 채웠던, 밀려오는 추억을 뒤로하고 살아도 살아도 헛헛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책방의 낭독회에도 가고, 대학에서 시 수업도 하면서. 그렇지만 진아는 길우의 사고가 있던 날 다툼이 못내 걸린다. 사고가 자신 때문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영화 ‘한강에게’ 스틸컷.

지난 4일 개봉한 ‘한강에게’는 ‘스윙’(2012) ‘사일런트 보이’(2014)의 박근영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제18회 전북독립영화제에서 옹골진상(대상)을 수상했다. 실재와 실재가 아닌 것이 서로 간섭하면서 생기는 느낌을 좋아하는 박근영 감독은 캐릭터의 이름을 배우의 실명으로 한다든지, 배우의 목소리가 다소 묻힐지라도 주변의 소리 즉 생활 소음을 그대로 쓴다든지, 배우들과 감독으로만 진행하는 촬영 등으로 현장성을 담아냈다.

책의 첫 장에 그 사람을 써서 보냈다

그가 손목을 잡아 당겼다

그의 말이 떠오르고

떠오르는 모든 것을 미워했다

극 중에도 등장하는, 진아가 쓴 시 ‘한강에게’의 일부다. 이 영화는 시의 연과 연 사이처럼 종종 침묵이 흐른다. 박근영 감독의 바람처럼 영화의 한 신이 시의 한 행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강에게’의 매력을 꼽자면, 진아의 슬픔을 섣불리 재단하지 않고, 오롯이 그녀의 시점 즉 감정에만 따라붙는 카메라다. 선연한 울림이 되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시(詩)가 뚝뚝 흐르는 스크린에는 ‘소공녀’(2017)의 전고운 감독, ‘범죄의 여왕’(2015)의 이요섭 감독, 박시하 시인과 안희연 시인도 등장한다.

12세 관람가.

박미영 기자 stratus@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