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리뷰] 아릿하게 번지는 치매 老부부의 끝사랑 ‘로망’

[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영화 ‘로망’ 포스터. /메리크리스마스 제공

고집불통에 애정 표현도 할 줄 모르는 남편 조남봉(이순재). 아내 이매자(정영숙)와 아들 진수(조한철)의 생일 한 번 제대로 챙겨준 적은 없을 만큼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이지만, 가족에 대한 책임감은 강한 사람이다. 택시운전사로 부지런히 일하며 가족을 건사해왔고, 70줄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택시를 몬다.

진수는 박사 출신 만년 백수다. 밥벌이는 아내 정희(배해선)의 몫이다. 살림을 낼 형편이 안돼서 시부모님 집에 얹혀 사는데 둘째까지 가지게 돼서 정희는 앞날이 더 막막하다.

학원강사로 바쁜 정희 대신 매자가 손녀 은지(이예원)를 챙겨주고 있다. 은지에게 그네를 태워주러 간 어느 날 매자는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순간 은지를 알아보지 못한다. 퇴근하고 온 남봉은 매자가 냄비를 태울 뻔한 걸 발견한다. 매자는 멍한 표정으로 어릴 때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은 첫째 딸 진숙을 찾는다. 매자의 치매 사실을 알게 된 남봉은 매자를 요양병원에 입원시켰다가 다시 데려와 직접 돌보기로 결심한다.

어느 날 출근하려던 남봉은 집 앞에 세워둔 택시에서 사고가 난 걸 발견하고 블랙박스를 확인해본다. 그런데 블랙박스 영상에는 자신의 모습이 찍혀있다. 기억이 없는 남봉. 그도 치매에 걸리고 만 것이다.

영화 ‘로망’ 스틸. /사진제공=메리크리스마스

영화 ‘로망’은 함께 치매에 걸린 70대 노부부와 이들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다. 치매 노부부의 삶을 처절하지 않게, 밝고 사랑스럽게 그리며 치매에 따뜻한 시선과 관심을 보내주길 청한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헌신적인 어머니, 고스펙 청년 무직자와 워킹맘 등 현실적인 캐릭터가 공감을 이끌어낸다.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이 더욱 눈물을 쏟게 만든다.

극 중 아들 내외와 손녀가 잠시 사돈집에 가게 되면서 남봉-매자 부부는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더욱 집중하게 된다. 무뚝뚝하기만 했던 남봉이 다정하게 변하자 매자는 “진작 치매에 걸릴 걸 그랬다”면서 오히려 미소를 짓는다. 남봉과 매자는 정신이 온전할 때 스케치북에, 메모지에 하고 싶은 말을 적어 남긴다. 알콩달콩 살고 싶다는 로망을 가졌던 신혼 때처럼, 때론 아이가 된 것처럼, 기억은 흐릿해져도 사랑은 더 순수하고 애틋해져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마음을 훈훈하게 만든다.

‘명품 배우’ 이순재와 정영숙이 있었기에 ‘로망’의 멜로와 휴머니즘이 있을 수 있었다. 두 원로배우의 연륜과 내공은 말할 것도 없다. 묵직하고 아릿하게 가슴 속으로 감동을 스며들게 만든다. 실제 부부인 진선규와 박보경이 젊은 시절 남봉과 매자로 깜짝 출연하는 점도 인상적이다.

3일 개봉.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