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평이 추천하는 이 작품]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깨진 삶도 그저 삶이다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영화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 포스터’/사진제공=아이 엠, 에이케이엔터테인먼트

그런 날이 있다. 문득 그리워지는 것이다. 그 날의 날씨, 그 날의 감정, 그리고 그 날의 냄새. 하지만 가끔 그 날 나와 함께 있었던 사람의 얼굴과 표정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때의 내 감정인지도 모른다. 에르네스토 콘트레라스 감독의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는 그렇게 각자의 기억 속에 갇힌 채 죄의식과 애증으로 남아버린 과거를 보여주며, 현재의 삶을 담아내는 영화다. 그리고 그리워지는 기억과 그 사이에 숨긴 진심을 감당할 자신이 없는 쓸쓸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멸 위기에 놓인 멕시코의 토착 언어인 시크릴어를 구사하는 마지막 원주민, 이사우로와 에바리스토는 한때 둘도 없는 친구였지만, 크게 싸운 뒤 서로 말도 하지 않은지 50년이 넘었다. 마을 사람들은 한 여자를 사이에 둔 삼각관계가 원인이라고 말한다. 그 마을에는 시크릴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딱 세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이 갑자기 죽음을 맞으면서 이사우로는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유일하게 통역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원수처럼 지내는 에바리스토 뿐이다. 시크릴어를 연구하는 언어학자 마르틴은 연구를 위해 두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하려 한다. 하지만 에바리스토의 증오는 생각보다 골이 깊어 이사우로의 마음에 가 닿는 방법을 모른다.

영화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 스틸./사진제공=아이 엠, 에이케이엔터테인먼트

늘 그렇듯 일상처럼 침잠한 비밀은 이방인에 의해 뿌옇게 그 실체를 드러낸다. 과거는 마르틴을 통해 현재로 되돌아온다. 마음을 외면한 죄의식과 그리움, 그리고 각자 상실을 극복하는 다른 방법 때문에 한 사람은 증오로 가득 찬 삶을 살고, 또 다른 사람은 스스로를 가뒀다. 같은 언어를 공유하며 나란히 걷는 법을 모르는 두 사람의 진심은 서로 다른 언어만큼이나 멀리 있다. 이들이 함께 공유하고 있다고 믿는 기억은 편린처럼 떠돈다. 상실의 아픔은 먹먹한 시간과 함께 스쳐 지나가고 각자의 생존법으로 살아가는 두 사람은 교차점 없이 점점 멀어진다.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그 날의 사건은 생각보다 훨씬 더 일찍 그 실체를 드러낸다. 어쩌면 반전일 수도 있는 ‘그 이야기’를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일찍 관객들에게 꺼내놓으면서 에르네스토 콘트레라스 감독은 두 남자의 이야기가 ‘비밀’에 방점을 찍은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혹은 죽음을 앞둔 삶) 자체에 방점을 찍은 이야기라는 사실을 묵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리고 감독은 평생을 거짓말 속에 살아온 사람을, 자신의 욕망을 숨기고 타인의 삶까지 진창으로 끌어내려 버렸을 그 비밀을 비난하거나 동정하지 않는다.

영화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 스틸./사진제공=아이 엠, 에이케이엔터테인먼트

식민지 시대를 거친 기독교와 원주민의 토속적 신앙은 충돌하고 그들의 언어를 갈라놓는다. 끝내 스페인어를 배우지 못한 원주민들은 자신만의 언어에 갇혀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한다. 이야기는 차별과 역사적 맥락까지 품고 있지만 감독은 어떤 다양한 함의와도 상관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에 집중한다. 그저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상황을 인정하고 강퍅해진 마음의 각질이 까슬거리더라도 굳이 벗겨내려 하지 않는다.

현재의 에바리스토는 어딜 가든 자신의 의자를 들고 다닌다. 그의 선택이 일종의 죄의식 때문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등에 짊어진 의자는 십자가처럼 보인다. 어쩌면 자신이 앉을 자리를 정해놓고, 딱 그 자리에 있겠다는 그의 선택을 상징하는 것도 같다. 마르틴은 그에게 일종의 나침반을 내밀며 진심으로 가는 길을 이제라도 찾으라고 자꾸 등을 떠민다. 하지만 에바리스토는 애초에 나침반을 읽을 줄 모르는 삶의 길치였다. 그래서 그 자리에 멈춰 서 있겠노라 선택한 그에게 화살표는 아무 의미가 없어 보인다. 에르네스토 콘트레라스 감독은 텅 빈 에바리스토를 안타까워하며 계속 물을 퍼 나르는 대신, 그가 처음부터 깨어져 있던 항아리였다고 그를 품는다. 깨진 삶도 그저 삶이라고…….

최재훈(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