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장자연 10주기…’31명의 악마…이제는 처벌해야’

[텐아시아=김명상 기자]

KBS <꽃보다 남자> 등에 출연했던 신인 여배우 장자연 씨가 세상을 떠난 지 오늘로 정확히 10년을 맞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다. 이에 따라 2009년 사건 당시 상황을 돌아보고, 10주기를 맞아 이제는 진상을 밝히자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고(故) 장자연 씨는 사회 유력 인사들에게 술자리와 성 접대, 폭력을 당했다는 문건을 남겼다. 문건에는 언론사 관계자, 연예기획사 관계자, 대기업·금융업 종사자 등 31명에게 술 접대와 성상납을 강요당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다.

문건을 통해 고 장자연 씨는 PD들, 감독들, 재벌, 대기업, 방송사 관계자 등이 자신을 노리개 취급하고 사기치고 몸을 빼앗았다고 울부짖었다. 그녀는 “언제까지 이렇게 이용당하면서 살아야할지 머리가 혼란스럽고 터질 것 같고 미쳐버릴 것 같다”는 내용과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리스트’만 존재할 뿐,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수사기관은 의지가 없었다. 고 장자연 씨 문건을 최초로 보도한 KBS 임종빈 기자는 KBS 1TV ‘오늘밤 김제동’에 출연해 당시 상황을 되짚었다. 2009년 취재 당시 임 기자는 검찰 라인의 수사 의지에 의문을 느꼈다면서 “상주했던 경찰 수사본부에서는 ‘검찰 쪽에서 사건을 키우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왔다‘고 전했다. 또한 “담당 수사라인의 검사가 ‘근거가 없어서 혐의 적용이 어렵다. 무엇으로 처벌을 하냐’고 취재진에게 반문하기도 했고, 경찰은 ‘영장을 신청해도, 검찰 쪽에서 막히는 경우가 많다’는 진술도 있었다”고 말했다.

‘장자연 리스트’에는 당시 ‘밤의 대통령’이라 불리던 보수 일간지 사주를 비롯해 사회 유력인사들이 많았다. 사건 발생 당시에도 수사기관이 의도적으로 부실한 대응을 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실제로 2009년 조사에서는 문건에 언급된 사람들은 하나도 기소되지 않고, 소속사 사장 K씨와 매니저 Y씨만 유죄 처벌받았다. 몸통은 놔둔 채 꼬리만 자른 격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장자연 사건은 그대로 가라앉지 않았다. 불씨는 PD수첩이 지폈다. 지난해 PD수첩은 7월 24, 31일에 걸쳐 ‘故 장자연’ 사건에 대한 경찰의 부실수사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과 방정오 TV조선 대표이사 전무,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 등이 제대로 된 경찰수사를 받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장이던 조현오 씨는 조선일보 핵심 관계자가 두 번 찾아와 “‘이명박 정부가 우리(조선일보)하고 한 번 붙겠다는 거냐’는 이야기까지도 했다”며 외압이 있었음을 시인했다.

올해도 진실규명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고 장자연 씨의 10주기를 앞두고 고인의 동료 배우였던 윤지오 씨가 모습을 드러내고 검경의 부실 수사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장자연 리스트’의 유일한 목격자인 윤 씨는 장자연이 성추행을 당할 당시 동석했던 후배로 알려져 있다.

지난 5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윤 씨는 “당시 21살인 제가 느끼기에도 수사가 굉장히 부실하게 이루어졌고, 경찰에서 집에 데려다줄 때도 한 언론사가 유독 미행을 붙기도 했다”고 말했다. 방송에서 그녀는 장자연 리스트를 직접 목격했다면서 “누가 유서에 명단을 나열하고 지장을 찍나. 법적으로 싸우기 위해 만든 문건”이라고 말했다.

또한 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윤씨는 장자연 문건을 언급하며 “이름들이 쭉 나열돼 있는 페이지가 한 페이지가 넘어갔다”며 영화감독, 국회의원, 언론계 종사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고 말했다. 사회자가 국회의원 이름을 기억하느냐고 묻자 윤씨는 “특이한 이름이었다“고 밝혔다.

사회 권력층이 저지른 비리가 한 개인의 비극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장자연 사건은 단순히 한 개인의 안타까운 일로 끝나지 않는다. 연예계가 사회적 권력을 가진 이들과 결탁해 성접대까지 했던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의 압축판이다. 또한 권력이 저지른 범죄를 파헤쳐야할 수사기관이 안일하게 무마해버리면서 국민이 부여한 심판의 권한을 스스로 포기한 사건이기도 하다.

고인의 10주기를 맞아 고 장자연 씨의 죽음을 다시 되돌아본다. 정황과 목격자의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다시 무시해버린다면, 그저 흘러간 과거로만 취급한다면 어디선가 제2의 장자연 사건이 벌어질 수도 있다. 암이 발생한 부위를 도려내야 사람이 산다. 고 장자연의 희생을 바로 그 메스로 삼아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2011년 3월 7일, 천정배 민주당 최고위원은 장자연 리스트를 두고 “우리는 31명의 악마들이 누군지 안다”며 “법 위에 군림하는 악마들을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그 말이 지켜져야할 때다. 공소시효에 상관없이 누가 그런 범죄를 저질렀는지 밝혀야 한다. 밤이 깊을수록 촛불은 더욱 선명하게 타오른다. 장자연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명상 기자 terry@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