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인터뷰] ‘항거’ 고아성 “가장 특별한 3.1절, 그 마음을 담아 찍은 영화죠”

[텐아시아=노규민 기자]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에서 유관순으로 열연한 배우 고아성./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봉준호, 홍상수, 한재림 등 영화계 거장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 고아성이 유관순 열사로 분했다. 1919년 3·1 만세운동 이후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유관순이 서대문 감옥 여옥사 8호실에 갇혀 지낸 1년여를 담은 ‘항거: 유관순 이야기’에서다. 모두가 알고 있는 위인이지만 미처 알지 못했던 열일곱 살 유관순의 내면을 밀도 있게 담아낸 고아성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10. 영화가 개봉했다. 기분이 어떤가?
고아성: 시나리오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촬영, 개봉하기까지 시간이 다른 작품보다 짧았다. 관객들에게 공개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처음부터 걱정이 많았기에 더 그런 것 같다.

10. 어떤 걱정을 했나?
고아성: 실존 인물도 처음이고, 모두가 너무나 잘 아는 분이라 어떻게 접근해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처음엔 막막했다. 부담이 컸다.

10. 어려울 줄 알면서도 왜 작품을 선택했나?
고아성: 내가 연기한다는 것과 별개로 유관순 열사를 영화로 보여드릴 수 있다는 점이 반가웠다. 나 자신에겐 도전할 용기가 필요했지만, 그건 뒷일이었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유관순 열사뿐 아니라 서대문 감옥 여옥사 8호실에 수감된 분들이 하나로 뭉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10. 실존 인물을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풀어나갔나?
고아성: 유관순 열사에 대해 알고 있던 그대로를 표현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고, 상상에 의존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특히 그분의 내면을 연기해야 할 때 힘들었다. 고민 끝에 ‘유관순’이라는 이름 석 자를 지우고 시나리오를 봤다. 감옥에 처음 들어섰을 때의 낯선 시선부터 한동안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 ‘우리는 개구리가 아니다’라고 외치는 부분까지 유관순이 아니라 어떤 한 사람이 특수한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이라 생각하고 연기했다. 그렇게 시작했더니 조금 편했다.

10. 유관순 열사는 어린데도 리더의 역할을 했다. 그런 것은 어떻게 표현하려고 했나?
고아성: 조민호 감독님의 도움을 받았다. 사실 감독님이 일일이 다 말씀해 주는 스타일이 아니다. 힌트만 던져준다. 시나리오 앞장에 ‘우리나라뿐 아니라 체 게바라 같은 리더도 주변 사람들에게 ‘나, 잘하고 있냐’고 물어봤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그걸 본 후 리더는 자신의 신념만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후회하기도 하고, 고민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기도 하고, 눈물도 흘린다는 것을 알았다.

10. 언론 시사회 때도 조 감독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호흡이 좋았던 것 같은데.
고아성: 촬영 초반에 감독님께 힘들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유관순이라는 인물이 되는 건 어려운 일이니 그 분이 옆에 계신다고 생각하며 연기하는 건 어떨까?’라고 하셨다.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 감동했고, 전에 없던 자신감도 생겼다. 카메라 앞에 서면 오롯이 나 자신이 해내야 할 일이 있다. 배우밖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는데 그런 부분을 감독님이 덜어주셨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의 고아성. 그는 “모두가 너무나 잘 아는 분이라 어떻게 접근해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막막했다”고 털어놨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10. 유관순 열사가 당당하면서도 겁을 내고, 걱정하는 모습이 자연스레 비춰졌다. 어떻게 연기했나?
고아성: 한 사람의 심리를 뚜렷하게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혼자 있을 때와 여러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극명하게 다를 것으로 생각했다. 서대문 감옥이라는 곳은 혼자 있을 수 없는 공간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혼자라고 느낄 때가 있었을 것이다. 3평 남짓한 공간에서 수감자들과 원을 그리며 돌 때는 소속감을 느꼈을 텐데 ‘개구리가 아니다’라고 외친 후 고문을 받고 돌아왔을 때 혼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10.  힘든 상황에서도 밝은 표정을 잃지 않는 유관순 열사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고아성: 당시 8호실에 있었던 실제 수감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유관순 열사는 장난기도 많았단다. 그런 것도 리더십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짧은 촬영 기간이었는데 실제 배우들끼리도 많은 장난이 오갔다. 그래서 유쾌했다. 그런 분위기가 영화에 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0. 연기하면서 감정을 못 추스를 정도로 힘들었던 장면은 뭔가?
고아성: 나를 비롯해 여옥사 8호실에 수감된 30여 명 모두 이름이 있고 사연이 있다. 감독님이 다 이야기해주셨다. 모든 연기자가 각자 고민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촬영 현장은 달랐다. ‘나 힘든데, 너도 힘드냐?’는 말은 안 했다. 극 초반부 다 같이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할 때 힘들었다기보다 뭉클했다. 촬영을 마치고도 여운이 길었다.

10. 독립선언서를 읽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장면을 찍기 전에 특히 많은 준비를 했다고 했는데?
고아성: 지금도 생생하다. 사흘 전부터 카운트다운을 했고, 촬영 날 아침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대사도 길어서 모든 감정을 끌어 올려야 했다. 그런 장면일수록 한 번 꼬이면 힘들어진다. 한 번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다행히 한 번에 OK 사인이 떨어졌다.

10. ‘대한독립만세’를 외칠 때 목소리 톤이나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연습 때 몇 번이나 외쳐본 건가?
고아성: 여러 버전으로 연습했다. 저도 감독님도 녹음을 했고, 아직도 휴대전화 안에 담겨있다. 수도 없이 연습한 끝에 영화에서의 톤이 나왔다.

10. 촬영을 위해 금식을 했다던데.
고아성: 처음에 시나리오 회의를 할 때 감독님께서 유관순 열사의 마지막 모습이 달랐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동의했다. 내면뿐만이 아니라 외면을 통해서도 그분이 처한 상황을 깊이 와 닿게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단식은 처음이었다. 음식보단 물을 먹지 못하는 것이 힘들었다. 건강에 이상이 가지 않는 선에서 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힘들진 않았다.

10. 많이 맞고, 고문도 당했다. 그런 장면들을 찍고 병이 나진 않았나?
고아성: 촬영 때는 진짜 고문을 하지는 않았다. 미리 동선을 짜고 안전한 상태에서 촬영했기 때문에 다친 적은 없다. 어려운 장면이어서 심적인 부담이 있었지만, 스태프들의 배려로 수월하게 찍었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의 고아성./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10. 한 공간에서 촬영한 여옥사 8호실 배우들과 실제로도 친해졌나?
고아성: 김새벽, 김예은, 정하담, 그들을 만나 너무 기쁘다. 오랫동안 유지할 우정이다. 깊은 이야기를 솔직하게 터놓고 소통했다. 촬영하면서 흔하지 않은 경험이다. 그때 그분들처럼 우리도 하나가 됐다.

10. 유관순 열사와 닮았다고 말하는 관객들이 많다. 그런 것 같은가?
고아성: ‘ 내가 진짜 닮았나?’ 하는 의문을 품어 본 적은 없다. (웃음) 닮았다는 얘길 들었을 때 너무 기뻤다. 닮았다고 해 주신 분들, 너무 감사하다.

10. 언론 시사회 때 ‘유관순이 죽음이 아닌 삶이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어떤 의미인가?
고아성: 예상치 못한 상황에 눈물이 터져서 그날 무슨 말을 했는지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그 말 만큼은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감독님이 우리 영화는 비극이나 참혹함에 집중하지 않고, 그분이 어떤 시도를 했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것과 같은 의미다. 그분의 삶이 영원히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10. 왜 그렇게 울었나?
고아성: 계속해서 죄책감이 들었다. 촬영 때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10.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자신에게 어떤 의미의 작품인가?
고아성: 많은 고민을 했고 큰 용기를 낸 작품이다. 영화를 찍는 것도 그동안 살면서 했던 일들과 비교했을 때 어려운 점이 많았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연기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걸 알려준 작품이다. 어떤 일이든 도전하고 시도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힘들었지만 시간을 되돌려도 다시 할 것 같다. 그만큼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10. 이번 3.1절은 더 특별할 것 같은데?
고아성: 그렇다. 가장 특별하고 의미 있는 3.1절이 될 것 같다. 그 특별한 마음을 담아 영화를 찍었다. 내 진심이 관객들에게도 전해지길 바란다.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