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평이 추천하는 이 작품] 부르노는 어디로 갔을까?…‘인 디 아일’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영화 ‘인 디 아일’ 포스터/사진제공=M&M 인터내셔널

독일이 통일된 지 어느덧 30년 가까이 된다. 그 사이 세상은 몹시도 변해 한때 온 지구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환희의 순간은 어느덧 옛 기억 속으로 물러서고 말았다. 마침 당시에 독일에 있었던 터라 필자도 환희의 순간을 만끽하는 혜택을 누렸는데 그 역시 희미해지고 말았다. 기억이라는 게 그렇게 물러터진 데가 있다. ‘인 디 아일’(In den Gängen, 토머스 스터버프 감독)에서는 실로 오랜만에 옛 기억이 소환되었고 구(舊)동독의 현재 모습을 만나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보니 동독은 절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 게 아니었다.

구동독 지역 드레스덴 근처 어느 슈퍼마켓에 크리스티안(란츠 로고스키)이 신입 직원으로 들어온다. 고속도로 옆 슈퍼마켓 복도에는 하루 일과가 끝나고 작업을 정리할 때 틀어주는 고급스런 음악이 들려온다. 진열대는 늘 질서정연한 모습을 갖추고, 매사에 꼼꼼하게 확인되고, 고객의 불편을 덜기 위해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서 슈퍼마켓은 손색이 없어 보인다. 영화의 중반까지는 신참 직원 크리스티안이 직장에 점차 적응해가는 모습에 집중한다. 그저 그렇게 영화를 이끌어나간들 별 무리가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메시지를 만나기 위해 관객은 영화의 중반부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영화 ‘인 디 아일’ 스틸/사진제공=M&M 인터내셔널

영화는 세 부분으로 나눠지며 각각 크리스티안, 마리온, 부르노가 그 주인공이다. 덕분에 관객은 세 사람의 인생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고 이는 감독의 세밀한 배려에서 비롯된 작업이다. 사실 영화에 다양한 메시지가 담겨있어서 그렇게라도 정리를 하지 않으면 길을 놓칠 수도 있기에 하는 말이다. 세 사람의 경우를 통해서 30년 전 동·서독 통일이 현재 어떤 경로를 그간 걸어왔는지 밝혀진다. 그 이야기를 좀 해보겠다.

우선 치밀하고 능률적으로 운영되는 슈퍼마켓 운영 시스템은 자본주의 국가인 서독의 것이다. 최고의 경영이익을 내기 위해 어떤 식으로 운영해야 하는지 공산주의 시절의 동독 사람들이 알 리 없지 않은가? 물론 이런 합리적인 시스템을 운영하는 상층부에는 서독 지역에서 온 간부들이 앉아 있다. 그들은 생활환경마저 달라 좋은 차에 멋진 집에서 풍요를 만끽하며 살아간다. 그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크리스티안의 방이란! 문화의 차이가 새로운 계급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동독 사람들의 굴욕감을 꼽을 수 있다. 그들은 한 때 고속도로를 주름잡으며 신나게 달렸던 트럭 운전사들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고작 슈퍼마켓에서 지게차나 몰아야 하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크리스티안이 정식 직원이 되기 위해 지게차 운전 시험을 보는 날, 과거 쟁쟁했던 운전사들이 둘러서서 짐이 오르고 내리는 과정을 지켜본다. 서독의 시스템이 동독을 장악하자 이제 장난감 차를 운전하는 방법마저 배워야 하는 것이다. 안 그러면 한 순간에 직장에서 쫓겨나, 독일어로 하면 거리로 나가 앉을(auf der Strasse) 판이다. 통일 후 서독사람들이 동독사람들을 얕잡아 부르는 말이 ‘오씨(Ossi)’였다는 사실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우리말로 하면 ‘동독 촌것들’ 정도일지 모르겠다.

영화 ‘인 디 아일’ 스틸/사진제공=M&M 인터내셔널

‘인 디 아일’에서 감독은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동료에게 자판기 커피를 스스럼없이 사주는 데서는 인정머리 없는 각각 계산을 꼬집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천시하는 풍조에서는 통일 후 독일 사회의 차별을 알려준다. 초과 수당을 받으려 아픈 몸에도 업무시간을 연장하고, 지게차 운전을 안내하는 교육용 영화에서 잘려나간 몸통을 버젓이 보여주기까지, 어디를 둘러봐도 인간에 대한 존중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니 ‘오씨’들은 유통기간이 지난 음식물 더미를 뒤질 밖에… 크리스티안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볼 때마다 눈으로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구역, 구역 잘 정돈된 복도에서 흘러나오는 ‘비엔나 왈츠’나 ‘G선상의 아리아’는 모두 겉치장일 뿐이다. 작은 것을 잡아 이야기를 확대시키는 감독의 솜씨가 칭찬할 만했다.

마르크스는 역사 발전에서 노동이 갖는 가치를 발견한 사람이다. 그는 일찍이 역사의 주체로서 인간은 노동을 통해 역사에 뛰어들어야 하고, 이것이 바로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노동이 갖는 긍정적 가치를 역설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토머스 스터버프 감독은 자본주의 체체를 고발하는 차원을 넘어 인본주의로서 노동의 가치를 제시한다. 지금은 비록 수조에 갇힌 물고기 신세지만 그래도 내일은 꼭 오고야 말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감독이 과거 공산주의 동독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므로 부르노 말마따나 “진실은 중간 어디쯤 있다.”(Wahrheit warschinlich steht in der Mitte)고 해야 맞을 것이다. 영화 전체를 통틀어 매우 의미 깊은 대사이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에게 전령의 신 헤르메스가 찾아왔다. 그러자 잠을 자고 있던 여신은 눈을 비비며 기지개를 켜고 동굴 밖으로 나왔고, 헤르메스는 제우스의 말을 전한다. “부르노가 어디로 사라졌는가?” “그 사람은 자살하지 않았던가요? 자부심이 송두리째 날아갔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본디 므네모시네는 단순히 기억만 할 뿐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통찰력도 갖고 있는 신이다.

우리도 질문해 보자. 과연 부르노는 어디로 갔을까?

박태식(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