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으로 담아낸 서대문 여옥사 8호실…고아성 ‘항거: 유관순 이야기’ (종합)

[텐아시아=노규민 기자]

‘항거: 유관순 이야기’ 메인 포스터.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봉준호, 홍상수, 한재림 등 거장 감독들의 영화에 출연하며 연기력을 인정 받은 배우 고아성이 역사 속 인물 유관순을 그려냈다. 아무도 몰랐을 옥중 열일곱 소녀의 내면과 외면을 몰입도 높게 연기하며 가슴 뭉클함과 깊은 울림을 전한다. 여기에 김새벽, 김예은, 정하담 등 영화계가 주목하는 신예들이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8호실’의 동지로 연기 앙상블을 펼친다. 흑백으로 담아낸 유관순 열사와 여옥사 8호실,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다.

15일 오후 서울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항거: 유관순 이야기’ 언론시사회가 열렸다. 배우 고아성, 김예은, 정하담,류경수와 조민호 감독이 참석했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에서 시작된 만세운동 이후 충남 병천에서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유관순이 서대문 감옥에 갇힌 후 1년여의 이야기를 담았다.

조 감독은 “많은 사람들이 유관순 열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처럼 나 또한 의지가 강하고 신념이 강한 여성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며 ” 우연히 서대문형무소에 갔다가 사진 속 유관순 열사의 얼굴을 봤다. 열일곱 나이인데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눈빛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슬프지만 강렬한 눈빛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됐을까 생각하고 파헤치고 연구했다. 덮여 있던 소녀의 정신을 살아나게 하고,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영화는 근래 보기 드문 흑백 영상으로 펼쳐진다. 대부분이 옥중에서의 장면인데 이는 흑백으로, 짧게 보여지는 유관순의 회상 장면은 컬러로 담겼다. 처음엔 낯설다가도 극에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되진 않는다. 이에 대해 조 감독은 “3평이 채 안 되는 좁디좁은 감옥에서 30명 가까이 되는 여성들이 갖고 있는 희로애락 등의 감정이 드러나야 했다. 그 공간에서 터져 나오는 미세한 감정을 표현하기에 흑백이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 스틸컷/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조 감독은 이어 “우리가 알고 있는 서대문형무소의 모습보다 1919년 당시의 모습은 축사와 다름없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생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며 “컬러로 보여주면 관객들이 못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특히 고문 장면은 참기 힘들고 받아들이기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상상을 하도록 여지를 두고 싶었다. 관객들에게 불만일 수도 있고, 다행일 수도 있는데 제 의도는 흑백을 통해 인물들의 감정 선을 표현하고 순화해서 보여드리려고 했다”고 했다.

고아성은 열일곱 소녀 유관순으로 열연했다. 그는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예상했던 유관순 열사의 이야기가 아니라 감옥에서의 1년이라는 시간을 다룬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다”며 “쉽지 않은 영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 처음엔 겁을 많이 먹었다. 하지만 감독님과 첫 미팅을 하고나서 엄청난 신뢰를 느꼈다”고 털어놨다.

이어 고아성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장면을 촬영하는 날을 카운트다운 해가며 준비했다. 지금까지 연기하면서 한 번에 가장 긴 대사를 했다. 결국 열심히 외워서 해냈다”며 “무엇보다 유관순 열사에게 가까이 접근하려고 노력했다. 성스럽고 존경스럽고, 그 외에 어떤 감정도 느껴본 적 없는 한 사람을 표현해야 했다. 다가가는 과정에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것에 대해 죄책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고아성은 기자간담회 내내 눈물을 흘렸다. 일부러 참으려고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가렸다. 고아성은 “밖에서는 잘 안 우는데 영화를 찍고나서 눈물이 많아졌다. 울어서 죄송하다”고 했다.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김예은은 유관순의 이화학당 선배이자 함께 ‘여옥사 8호실’에 갇힌 권애라를 연기했다. 그는 “뜻 깊은 영화에 참여해 영광이다. 처음에 자료가 많이 부족해서 걱정했는데, 감독님과 배우들을 만난 이후 무조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때 그 시절을 감히 잘 알고 연기하고 있나 하는 죄책감 같은 것이 들어 힘들었다”며 “촬영 내내 이상하게 죄송스러운 마음밖에 안 들었다”고 털어놨다.

정하담은 ‘여옥사 8호실’에 투옥된 다방 종업원 옥이를 연기했다. 그는 “시나리오를 보면서 이렇게 많은 일들이 있었겠구나 생각했다”며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연기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조선인 헌병 보조원 니시다(정춘영)를 연기한 류경수도 “배우 생활을 하면서 두 번 다시 없을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서 참여하게 됐다”며 “악한 인물이지만 무거운 마음으로 임하게 됐다. 실제로 천안 유관순 생가를 방문했다. 주위에서는 ‘뭐 그렇게까지 하느냐, 연기만 잘하면 되지’라고 했지만, 그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조 감독은 영화를 3.1 만세운동 이후 1년으로 설정한 데 대해 “3.1 운동의 전면을 다 다루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감옥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것은 역사적 사실로 남아있고, 그 안에서 박해와 고문을 받으며 죽음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만세를 주동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면서 “유관순이 남김없이 살았던 18년의 삶을 1년으로 축약한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더 울림을 주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고아성은 “유관순 열사가 죽음이 아니라 삶으로 기억 됐으면 좋겠다. 우리 영화는 적은 예산이지만 베테랑 스태프들이 모여 만들었다. 꼭 봐 주셨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2월 27일 개봉.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