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인터뷰] 김향기 “스무 살의 시작이 ‘증인’이라 행복하죠”

[텐아시아=노규민 기자]

영화 ‘증인’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소녀 ‘지우’로 열연한 배우 김향기./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신과함께’ 시리즈를 통해 ‘쌍천만 배우’라는 타이틀을 얻고, 지난해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은 김향기. 그가 이번에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소녀로 변신했다. 살인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변호사 순호(정우성)가 사건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인 자폐 소녀 지우를 만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증인’에서다. ‘증인’으로 스무 살의 시작을 알린 김향기를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10. ‘증인’에 출연한 이유는?
김향기: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가 좋았다. 한 인물에 집중하기보다 이야기 자체를 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시나리오에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10. 앞서 이한 감독과 ‘우아한 거짓말’ ‘오빠생각’을 함께 했다. ‘증인’까지 세 번째 작업이다. 어땠나?
김향기: 감독님은 한결같다. ‘우아한 거짓말’ 때랑 머리 모양도 똑같다. 현장에서 웃기도 많이 웃고, 눈물도 잘 흘리신다. 감독님의 그런 감정이 영화에 잘 담겨 있는 것 같다. 처음부터 시나리오를 잘 담아 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출연 결정도 빨랐던 것 같다.

10.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지우를 연기했다. 어떻게 준비했나?
김향기: 기본적으로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해 이해해야 했다. 감독님이 영상 자료를 주셨는데, 국내보다 해외 영상이 많았다. 그들의 시선, 인터뷰, 발작을 일으키거나 심리적 압박이 왔을 때의 행동들을 유심히 봤다. 감독님이 추천해 주신 책과 영화도 참고했다. 그리고 그들을 직접 찾아가서 만났다. 세밀한 연기는 현장에서 감독님, 배우들과 맞춰가면서 했다.

10. 현장에서는 어디에 초점을 맞춰서 연기했나?
김향기: 감독님께서 시나리오에 제한을 두지 말고 표현하고 싶은 만큼 다 하라고 하셨다. 상황에 따라 지우가 할 수 있는 말이나 행동을 즉석에서 나오는 대로 표현했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도 원래는 지우가 책을 읽고 자리에 앉으면 끝나는 상황인데, 다른 장면이 만들어졌다. 매일 학교에 가고, 몇 번이나 경험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더니 그렇게 표현하는 게 자연스러울 것 같았다.

10. 어떤 장면을 연기할 때 제일 힘들었나?
김향기: 시나리오를 읽을 때 나 혼자 생각을 많이 했다. 힘들었다기보다 마지막에 미란(엄혜란)을 목격한 상황을 증언할 때 톤을 어떻게 잡을까 하는 고민이 컸다. 지우의 말투로 해야 할지, 미란의 말투를 그대로 따라 해야 할지 고민했다. 결국, 지우가 강한 의지를 가지고 증인석에 선 만큼, 미란의 말투로 더 생생하게 증언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엄혜란 선배님의 장면을 동영상으로 받아서 수 차례 연습했다.

10. 영화를 찍기 전에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친구들에 대한 편견은 없었나?
김향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은 나와 사고방식이 다를 것으로 생각했다. 어떤 일탈적인 행동을 할 때 다가가기 힘들겠구나 하고 단정지어버렸다. 그러면서도 ‘왜 그럴까’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충격적이기기도 했고, 미안했다.

10. 직접 만나보니 어떻던가?
김향기: 만나기 전에 접했던 영상도 그들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을 우선으로 편집돼 있었다. 실제로 만나보니 완전히 달랐다. 다들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와, 우리와 다른 것이 아니라 각자 다 다른 사람일 뿐이었다.

10. 극 중 지우는 어떤 아이인가?
김향기: 지우는 자신이 선택한 행동에 책임을 다한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도 힘든 일이다. 그런데 지우는 고통을 감수하고라도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진실을 밝히려고 한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지우는 자신이 가진 순수한 힘을 잘 표현하는 아이다.

배우 김향기가 영화 ‘증인’에 출연한 이유로 “시나리오에서 따뜻함이 느껴졌다”고 밝혔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10. 정우성과 17년 만에 다시 만났다. 함께 찍는다고 했을 때 어땠나?
김향기: 세 살 때 광고를 함께 찍은 이후 처음이다. (웃음) ‘신과 함께’를 홍보할 때 주지훈 선배가 ‘증인’을 찍는다는 이야길 듣고 ‘재미있을 거야’라고 했다. 정우성 삼촌을 딱 만났을 땐 그냥 신기했다.

10. 나이 차이가 꽤 나는데 소통하는 데 불편하지 않았나?
김향기: 나는 상대방에게 먼저 살갑게 다가가서 말을 건네질 못한다. 타고난 성격이다. 어떤 현장에서든 한쪽에서 대본 읽고, 모니터하고 대부분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 나이 때문에 소통이 불편하다는 생각은 안 했다. 현장 자체가 안정적이고 편했다. 극 중 순호와 지우 사이에서도 그렇게 많은 대사가 오고 가질 않는다, 그런데도 소통이 원활했던 건 정말 편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관객들이 우성 삼촌이 하는 새로운 톤의 연기도 잘 어울릴 거라고 느낄 것이다. 나도 그렇게 느꼈다. 감정이입이 잘 됐다. 순호와 같은 역할을 자주 보여주셨으면 좋겠다.

10. 극 중 지우처럼 선택의 갈림길에 선 적이 있나?
김향기: 연기를 하면서도 용기를 낸 지우가 멋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런 선택의 갈림길에 선 적은 없었던 것 같다.

10. 실제 상황이라면 지우처럼 할 수 있을까?
김향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큰 고통일 것이다. 힘들겠지만 용기를 내보고 싶은 마음은 있다.

10. 오랫동안 아역 배우로 활동하다 성인 배우로 넘어가는 시점인데 고민은 없나?
김향기: 이미지가 굳어지면 어쩌나 하는 고민을 한 적이 있지만 크게 신경 쓰고 스트레스를 받진 않는다. 좋아하는 연기를 계속하고 있고, 늘 배우는 점이 있다. 안 해본 작품들도 하나하나 하고 있어서 지금은 만족한다. 영화나 드라마가 기술적인 부분, 장르 등 여러가지로 발전하고 있다. 열린 마음으로 기다리면 새로운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10. ‘신과함께’ 1, 2가 각각 10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지난해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도 받았다. 관객들의 기대치가 높아져 부담스럽지 않나?
김향기: 부담이 있다.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일부러 변화를 주려고 한다거나 더 잘 보이고 싶어서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싶지는 않다. 억지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스스로 빨리 지칠 것 같다. 그동안 나의 성장을 지켜봐 준 팬들이 제일 빨리 눈치챌 것이다. 지금 연기가 좋고, 연기가 하고 싶은 이 마음을 유지하고 싶다.

10. ‘애어른’ 같다는 소릴 많이 듣는데, 학교에서는 어떤가?
김향기: 친구들이랑 만날 때는 학교생활 얘기만 한다. 하하. 대화가 안 통한다거나 그런 건 없다. 특히 여자아이들끼리는 먹는 얘길 많이 한다.

10. 배우로 활동하면서 학교생활을 많이 못 해서 아쉽지 않나?
김향기: 다행히 학창 시절을 누릴 만큼 누렸다. 어쩌다 보니 영화를 찍을 기회가 더 많았고, 방학 때 주로 촬영했다. 1년에 한 작품 정도 하다 보니 또래 아역 친구들보단 학교에 갈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일 때문에 학교와 친구를 어렵게 생각했다면 스트레스일 수 있었는데, 자연스러웠다. 친구들도 연예인이라고 해서 다르게 대하지 않았다.

배우 김향기는 “잘 보이고 싶어서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10. 평소엔 누구와 가장 많이 대화하나?
김향기: 엄마다. 어렸을 때부터 현장을 함께 다녔는데, 언제나 나를 먼저 생각해주셨다. 내가 원해서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너무 힘들면 안 하는 게 낫다’고 늘 말씀해주셨다. 그런 마인드셨다. 점점 내가 연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시나리오를 선택하고, 연기를 연습하고 고민하면서 엄마에게 물어보면 간단하게 피드백만 해주고 크게 관여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적었다. 예전에는 그런 게 좋은 줄 몰랐다. 하지만 엄마가 그랬기 때문에 내가 연기를 좋아한다는 걸 깨우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

10.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새내기가 됐다. 대학 생활이 기대되나?
김향기: 떨리기는 하는데 환상이나 로망은 없다.(웃음) 연극영화학과뿐만 아니라 대학 생활을 한 언니, 오빠들이 별다를 게 없다고 했다. 굳이 환상을 갖고 있다가 그만큼 부합되지 않았을 때의 충격을 생각해서 처음부터 기대를 안 하려고 한다.

10. 촬영이 없을 땐 주로 뭘 하나?
김향기: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친구들이 놀이동산에 가자고 하면 간다.(웃음) 아니면 마을버스 타고 나가서 극장 주변에서 논다. 극장 주변이 번화가다. 하하. 하지만 활동적인 걸 하면 금방 지친다.

10. 마을버스를 타고 돌아다닐 때 불편하지 않나?
김향기: 괜찮다. 자주 타는데 패딩 입고 모자를 쓰면 아무도 몰라보시더라. 각자 자기 일 하러 다니느라 바쁘다.

10. 4년 만에 드라마에 복귀한다. JTBC 새 월화드라마 ‘열여덟의 순간’에서 워너원 출신 옹성우와 호흡을 맞춘다. 영화와는 또 다른 기분일 것 같은데?
김향기: 오랜만에 장편 드라마를 하는 거라 긴장된다. 특히 학교생활과 병행해야 해서 건강관리를 잘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웃음)

10. ‘증인’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심정이 어떤가? 초조하진 않나?
김향기: 이번 작품을 하면서 나름 얻은 게 많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해 알게 됐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까지 생겼다. 그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 것도 너무 기분 좋은 일이다. 내가 시사회 때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들이 여러 가지로 관객들에게도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돼 스스로 만족스럽다. 특히 스무 살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작품이고, 2019년 새해에 보여드리는 영화가 ‘증인’이라는 사실이 너무 행복하다.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