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인칭 관찰자 시점] ‘그린 북’, 속울음을 함박웃음으로 그러안다

[텐아시아=박미영 작가]

영화 ‘그린 북’ 스틸컷

*이 글에는 그린 북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80년대 KBS 코미디 프로그램 ‘유머 1번지’의 ‘영구야 영구야’로 안방극장이 웃음바다였을 무렵, 심형래 아저씨의 ‘영구’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의 친구였다. 어느 날 친구 늘리기에 슬슬 재미가 붙은, 다섯 살 막내동생이 친구들을 우르르 집으로 끌고 와서는 대뜸 하는 말이 “우리 언니, 영구랑 진짜 똑같아.”

동생의 밑도 끝도 없는 공수표였다. 동생에게 퉁을 놓은 연후에 죄다 돌려보내려고 했는데 한껏 기대하는 초롱초롱한 눈빛에서 그만 멈칫하고야 말았다. 결국 나는 최상은 아닐지라도 최선인 영구가 되었다. “띠리리리리~ 영구 없다!” 속으로는 진심 울고 싶었다. 반면 동생과 친구들은 연거푸 웃음을 터트렸다. 헐거운 코미디에도 찌릿하게 응하는 다섯 살 관객들 덕분에 나도 웃고야 말았다. 메소드 연기라도 하듯, 끝까지 영구처럼 헤벌쭉 웃으며. 웃음의 맛을 느낀 날이었다.

1962년, 뉴욕 브롱스. 나이트클럽 ‘코파’에서 일하는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는 사장이 “떠버리 토니!”하고 부르면 예의 없는 손님을 간단히 주먹으로 해결하는 뜨거운 한 방이 있는 사내다. 핫도그 내기로 집세에 해당하는 50달러를 따낼 만큼 먹성 또한 대단하다. 이탈리아계 이민자인 토니의 집은 늘 가족들로 북적거리고, 그는 사랑하는 아내 돌로레스(린다 카델리니)와 아들 프랭키, 니키와 한방에서 지낸다. 토니는 집을 찾아온 흑인 수리공이 마신 컵을 쓰레기통에 막바로 버릴 만큼 흑인이 영 달갑지 않다. 코파의 리노베이션으로 쉬고 있는 그에게 새로운 일감이 들어온다. 바로 돈 셜리 박사의 운전기사다.

카네기홀 꼭대기에 사는 심리학 박사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는 저명한 피아니스트다. 셜리는 토니의 문제 해결 능력을 높이 산다며 8주간 남부에서 하는 콘서트 투어를 제안한다. 토니는 비록 셜리가 흑인이지만 짭짤한 보수인지라 수락한다. 음반회사 직원은 토니에게 지도, 일정표, 그리고 ‘그린 북’을 챙겨준다. 추가로 셜리가 두 가지 수칙을 명한다. 공연장에 가서 계약서에 명시된 스타인웨이 피아노인지 확인할 것, 매일 밤 숙소에 위스키 한 병을 둘 것. 드디어 콘서트 투어를 향하여 차가 출발한다. 더불어 말투부터 미소 그리고 연주까지 우아함이 뚝뚝 흐르는 셜리를 향한 토니의 거침없는 속사포 수다도.

지난 9일 개봉한 ‘그린 북(Green Book)’은 영화 첫머리에도 나오지만 실화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그린 북’은 아프리카계 우편배달원인 빅터 휴고 그린이 1936년부터 1966년까지 제작한 ‘흑인 운전자를 위한 그린 북(The Negro Motorist Green Book)’을 말한다. 흑인 여행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숙박 시설, 레스토랑, 주유소 등의 정보가 포함된, 즉 흑인의 안전을 담보하는 책이다.

셜리는 환영받지 못하는 곳에서 머무는 건 거부하겠다며 ‘그린 북’에 의지한다. 그러나 책에서는 집처럼 편안하다고 소개된 호텔이 토니의 표현처럼 똥통일 때도 있다. 책의 저자인 흑인에게는 불쾌함이나 불편함마저 당연했나 싶어서 그 기준점이 어릿하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셜리를 초대한 백인 관객들은 음악만 즐길 뿐 그들의 공간은 절대 내어주지 않는다. 식사를 하거나 화장실을 쓸 수도 없고, 대기실로 권하는 공간은 옷장이고, 양복점에 가도 옷을 걸쳐 볼 수도 없다. 격앙된 토니와 달리 정작 당사자인 셜리는 미소로 설움을 감춘다.

토니는 자신에게는 한 끗 차이인 오르페우스(Orpheus)와 고아원(orphanage)이란 단어 때문에 ‘지옥의 오르페우스’를 ‘고아들에 대한 앨범’으로 이해할 만큼 셜리의 음악에 무지했다. 그랬던 그가 점차 셜리의 피아노에 빠져든다. 백미러로 비치는 생각으로 가득한, 슬퍼 보이는 셜리에게도 마음이 쓰인다. 그래서 셜리가 편한 북부 공연을 마다하고 험난한 행보를 택한 것에 의문을 갖자 ‘돈 셜리 트리오’의 멤버인 첼리스트 올렉이 귀띔한다. 천재성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고.

토니는 허풍과 도박, 주먹으로 절대 안 진다. 그렇지만 일자리를 잃고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순간에도 주먹 쓰는 일을 거절하고 전당포에 손목시계를 맡긴다. 그는 무슨 일이 있느냐며 걱정하는 전당포 주인에게 고민도 맡아줄 거냐며 농으로 쓱 넘긴다. 은근히 낭만적인 구석도 있다. 집을 떠나 있으면서 아내의 사진에 입맞춤을 하고, 아내가 장거리 전화 요금보다 싸다는 이유로 쓰라고 한 편지도 묵묵히 써 나간다. 철자도 엉망이고 내용도 단조롭지만. 결국 셜리의 도움을 받은, 겁나 로맨틱한 편지가 시작된다. 나중에는 돌로레스뿐 아니라 온 가족이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충분히 백인답지도, 충분히 흑인답지도, 충분히 남자답지도 않다면…. 대체 난 뭐죠?”

셜리의 속말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그의 흐느낌은 울부짖음으로 들린다. 자신의 음악만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 그 안의 슬픔까지 들여다보는 사람을 향한 솔직한 고백이 아닐까 싶다. 토니는 이따금 속 깊은 말로 셜리를 위무한다. 당신 음악은, 당신 연주는 당신만이 할 수 있어요. 동생에게 편지를 써요. 외로워도 먼저 손 내미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아요. 땅에서 주운 옥석이 행운석이 아니라 두 남자가 서로에게 행운석이지 싶다. 달라도 너무너무 다른 두 남자의 우정이, 관계가 숙성되는 과정이 참 뭉클하다.

‘반지의 제왕’의 아라곤으로, ‘문라이트’의 후안으로 우리를 두근거리게 했던 비고 모텐슨과 마허샬라 알리는 이번 작품에서도 변함없는 마력을 뿜는다. ‘덤 앤 더머’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처럼 독한 유머의 장인(匠人) 패럴리 형제의 형 피터 패럴리가 ‘그린 북’의 연출을 맡았다. 패럴리 형제 특유의 유머를 맛볼 수는 없지만, 드라마에 얹힌 유머는 특별한 힘을 발휘했다. 눈물과 웃음이 번지는 심장을 느끼게 한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도, 셜리의 애끊는 속울음을 그러안은 토니의 넉넉한 함박웃음이 훈훈한 공기 입자들로 부유하면서 나의 감각에 배어들었다. 으하하핫, 토니의 호방한 웃음소리와 셜리의 우아한 미소가 어른거려서 다시금 극장을 찾을 듯싶다. 그리고 그 차에 동석할 것이다. 셜리처럼 포근포근한 무릎 담요를 덮고, 토니처럼 바삭한 프라이드치킨을 뜯으면서.

박미영 작가 stratus@tenasia.co.kr

[박미영 영화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한 작가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진위의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텐아시아에서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