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인터뷰] ‘말모이’ 유해진 “말맛 한번 제대로 보여드릴게요”

[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영화 ‘말모이’에서 까막눈 김판수로 열연한 배우 유해진.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스크린 안에서도, 밖에서도 유해진은 재치가 넘친다. “으허허허허.” 인터뷰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을 만큼 그의 말에서는 감칠맛이 났다. 또 어떤 말로 구미를 당길까. 툭 던진 애드리브 같지만 유해진은 이미 알고 있다. 그것이 관객을 웃게 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엄유나) 감독님이 저를 캐스팅한 첫 번째 이유가 외모 아니겠어요? 허허허. 제가 제일 말맛을 잘 살릴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같이 연기한 동료배우들이 판수를 보고 ‘골 때린다’고 하더군요. 저한테 할 얘기를 돌려서 하는 건지. 하하.”

오는 9일 개봉하는 영화 ‘말모이’에서도 유해진은 익살스럽다. ‘말모이’는 194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우리말 사전 ‘말모이’ 편찬을 위해 비밀리에 전국의 말을 모으는 이야기다. 유해진은 허세는 일품, 말은 청산유수지만 까막눈이라 ‘가나다라’를 못 읽는 김판수 역이다. 조선어학회에서 잡일을 하던 판수는 우리말과 동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독립투사로 거듭난다.

“편찬할 사전의 원고가 없어져 회원들이 절망하는 장면이 있어요. 컷을 하고 나서도 다들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더라고요. 우리는 비록 우리말을 지키려했던 분들을 연기한 것에 불과했지만 그 분들이 얼마나 소중하게 지켜왔는지 느꼈어요. 그 때의 상실감과 강탈감은 얼마나 컸을까요? 짠했습니다.”

영화 ‘말모이’의 한 장면.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더 램프

동네 껄렁패였던 판수는 조선어학회에서 일하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한글을 배우게 된다. 기역 니은을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져서는 잘 나오지 않는 연필심에 침까지 발라가며 늦은 밤에도 학구열을 불태운다. 단골 술집의 메뉴판부터 길거리 간판까지 더듬더듬 읽을 수 있게 된 게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다.

“전 국민학교 세대인데, 당시는 이름만 삐뚤빼뚤하게 쓸 줄 아는 상태에서 입학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어머니 따라 시장 가던 길에 간판을 따라 읽었던 기억이 나요. 그런 모습들을 영화에 넣어봤어요. 제가 처음 한글을 배워가며 느꼈던 기쁨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유해진은 극 중 딸 역할의 아역배우 박예나에 대해 “MSG 없는 순두부 같은 친구”라며 귀여워했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 역인 윤계상과의 연기 호흡도 자랑했다. 극 중 판수는 아들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정환의 가방을 훔치다가 그와 만난다. 두 사람은 사사건건 부딪혔지만 점차 끈끈해지며 우리말을 지키는 ‘동지’가 된다. 유해진은 윤계상과의 관계에 대해 “더 진득해져가는 이런 게 인간관계이지 싶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2015년 개봉한 영화 ‘소수의견’에도 함께 출연했다.

“동지란 뜻을 같이한다는 거잖아요. ‘말모이’ 배우들과는 진짜 동지가 된 거 같아요. 특히 계상과는 더욱 그렇습니다. 드립 커피가 한 방울씩 모여 진해지는 것처럼 계상과도 더욱 끈끈해지는 것 같아요.”

유해진은 말모이에 대해 “순두부 같은 영화”라고 소개했다. 이번 영화를 통해 자신의 어떤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느냐고 물으니 “그런 거 없다”고 기분 좋게 ‘허허’ 웃으며 “이야기에 겉돌지 않은 인물이 되려고 했다”고 말했다.

“영화로만 보면 뻔한 이야기일 수 있어요. 하지만 당시 사전을 만들려 했던 분들의 어떤 노고가 있었는지, 어떤 희생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게 관건이죠. 그걸 느끼게 하는 게 저의 일입니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