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인칭 관찰자 시점] ‘로마’, 흩날리는 기억을 쓸어 담아서

[텐아시아=박미영 작가]

영화 ‘로마’ 스틸컷

*이 글에는 로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엄마, 귀가 늙었어? 내가 가까이서 하는 말을 못 알아들으면서 멀리서 하는 말은 귀신처럼 알아듣네.” 가까운 곳은 안 보이고, 먼 곳은 잘 보이는 것으로 노안(老眼)을 이해하는 열한 살 딸의 볼멘소리다. 정작 귀를 기울였으면 싶은 이야기는 흘려듣고, 눈도 귀도 가렸으면 싶을 만큼 비밀스런 이야기만 알아차린 것에 대한 나름의 원망이다. 노이(老耳)로 낙인찍힌 나는 겸연쩍게 웃었다. 그리고 며칠 후,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를 봤다. 나는 스크린을 넘실거리는, 흩날리는 소리들에 매달렸다. 딸이 했던 말이 설핏 스쳤다. 다행히도 나의 귀는 늙지 않았다.

1970년 멕시코시티 로마. 클레오(얄리차 아파리시오)는 생화학자인 소피아(마리나 데 타비라)의 4남매 토뇨, 파코, 소피, 페페를 돌보며 살림까지 책임지는 가정부다. 동료이자 절친인 아델라(낸시 가르시아)와 함께. 클레오는 잠에 취한 아이들을 달달하게 깨우고, 등하교를 책임지고, 잠자리를 봐주고, 반려견 보라스의 똥을 치우고, 일일이 소등하고, 남은 설거지를 마쳐야만 고단한 하루가 끝이 난다. 거의 에이프런 차림인 즉 일상이 일이건만, 언제나 그녀의 목소리는 사분사분하다.

클레오는 노동요이기도 한 유행가의 가사와 빈민가 출신의 남자친구 페르민에게 마음을 싣는다. 여느 때처럼 극장에서 데이트를 하던 중에 그녀가 임신을 알리자 그는 화장실에 다녀온다는 핑계를 대고 내뺀다. 그녀가 불룩해진 배로 찾아가서 네 아이라며 붙들지만, 그는 으름장을 놓으며 내친다. 고용주인 소피아의 의사 남편도 페르민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젊은 애인과 즐기면서도 생활비는 보내지 않고, 아이들에게는 캐나다 출장 중이라는 거짓 편지를 이어간다. 소피아는 서걱거리는 심장을 느끼며 클레오에게 말을 건넨다. “우린 혼자야.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 여자들은 늘 혼자야.”

민주화를 외치며 시위에 나선 학생 120여 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성체축일 대학살’이 있던 날, 클레오는 뱃속의 아이를 잃는다. 소피아는 자신의 홀로서기를 위해, 클레오를 위로하기 위해 여행을 마련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클레오는 파도에 휩쓸리는 소피와 파코를 구해낸다. 수영을 못하지만 성큼성큼 나아가서 파도를 헤치고. “저는 원하지 않았어요. 그 애를 원치 않았어요. 전 아기가 태어나길 원치 않았어요.” 속울음으로 일렁이던 클레오의 진심이 터져 나온다. 소피아와 네 아이는 흐느끼는 클레오를 보듬으며 함께 아파한다. 돌이켜보면 TV를 보는 일상에도, 아이들은 클레오의 어깨에 자연스레 손을 둘렀다. 클레오와 매 순간을 함께 하고자 했다. 네 아이에게 클레오는 늘 가족이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는 삶을 머금는다. 그래서 ‘이 투 마마’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칠드런 오브 맨’ ‘그래비티’를 보고 나면 장르와 서사에 관계없이 인생의 무게가 오롯이 느껴진다. 영화 ‘로마’는 65mm 필름 흑백 촬영, 최첨단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로 제작된, 즉 극장에서 봐야 하는 작품이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영화인지라 지난해 12월 12일 극장에서 개봉하고 이틀 후 넷플릭스에도 공개됐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극장에서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권한다. 알폰소 쿠아론은 스케줄 문제로 참여하지 못한 엠마누엘 루베즈키 촬영감독 대신 직접 카메라를 들었다. 각본, 감독, 촬영, 제작, 편집까지 구석구석 그가 스며들었다. 그리고 전문 배우가 아닌 얄리차 아파리시오를 캐스팅해서 생경하지만 특별난 공기를 빚어냈다.

소리로 화면이 열린다. 소설에서 몇 문장이 흐르고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그 소리들 속에 클레오가 모습을 드러낸다. 스크린에서 소설의 숨결이 차르륵 펼쳐진다. 그리고 많은 소리들이 관객을 그 공간 밖으로, 그 시간 밖으로 이탈하지 못하게 끌어안는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 개가 짖는 소리, 막 널어놓은 빨래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까지도 영화의 밀도가 된다. 또한 늘 방점이 되는 비행기의 등장도 흥미롭다. 시종여일 땅을 향하던 카메라가 하늘을 품으며 여전한 소리들과 함께 매듭짓는 엔딩도.

‘로마’는 알폰소 쿠아론의 유년기를 책임진 가정부 ‘리보 로드리게즈’를 모델로 한 자전적 영화다. 그래서 영화 말미에 ‘리보를 위하여’라는 자막이 올라간다. 리보가 사용했을 스페인어, 미스텍어(멕시코의 아메리칸 인디언 언어)를 고루 담아낸다. 4남매 중 막내 페페는 왠지 알폰소 쿠아론 같았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말이다. “내가 늙었을 때”로 시작하는 페페의 엉뚱스러운 화법은 늘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들었다. 클레오가 “앞으로 늙으면 말이지?”라고 물으면, 페페는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인 할아버지였을 때라고 답한다. 그래도 클레오는 페페의 말을 흘려듣지 않는다. 머리만 맞대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까지 맞대어 준다.

클레오는 새해를 맞이해서 소피아 가족과 함께 찾아간 시골에서 눈을 감은 채로 큼큼한다. “고향에 온 거 같아요. 거기가 더 건조하지만 느낌이 참 비슷하네요. 소리도 비슷하고, 냄새도 똑같아요.”

때로는 아득한 시간이 더 선명한 경우도 있다. 나에게 ‘로마’와 같은 곳을 꼽자면 ‘창신동’이다. 태어나서 여섯 살 무렵까지 살고, 잦은 이사 끝에 결국 열두 살에 다시 돌아오고야 말았던 동네. 이사 온 첫날부터 스무 살에 다시 떠날 때까지 딱 하나만 생각했다. 창신동 탈출. 낙산 서민아파트에서 살면 평생 가난이라는 등껍질을 얹고 살아가야만 할 것 같았다. 여하튼 나의 소녀시대는 창신동이라는 바탕색에서 그려졌다. 세상의 중심에도, 세상의 밑바닥에도 있는 것 같은 시절이었다. 지금도 나는 이따금 꿈속에서 특유의 냄새를 풍기고, 후미지고, 비좁았던 창신동의 골목길을 내달린다. 숨넘어갈 듯 까르르 웃으면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손수 카메라를 들었듯, 나 역시 언젠가 펜을 들 날이 올 것이다. 흩날리는 기억을 쓸어 담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볼 미지의 누군가도 ‘로마’에 닿아있는 어딘가를, ‘클레오’에 닿아있는 누군가를 길어 올리기를.

박미영 작가 stratus@tenasia.co.kr

[박미영 영화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한 작가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진위의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텐아시아에서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