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일│My name is..

My name is 웨일(Whale). 직접 지었다. 열다섯 살 때부터 뮤지션이 되면 꼭 가명으로 쓰고 싶었던 이름이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고래의 이미지 같은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본명은 박은경.
1985년 3월 6일생. 목소리를 듣고는 서른이 넘은 줄 아는 분도 계신데, 실제로 만나보면 어려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기는 한다.
일기를 꾸준히 쓰고 있다. 매년 두꺼운 일기장이 남는다. 또래들 보다 사색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많은데 그런 내용을 기록해 둔다. 곡 작업에도 도움이 많이 되고.
사진 스크랩도 많이 한다. 사진집, 잡지, 신문 가리지 않고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사진은 오려서 벽에 붙여둔다. 그래서 엄마가 싫어하신다. 방이 깨끗하질 못하니까. (웃음)
라디오 헤드를 정말 좋아했다.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아, 나도 이런 음악 한 번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음악을 하고 싶은데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게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뿐이었다. 집에 워낙 CD가 많기도 했고.
어머니는 나에게 음악 선생님 같은 분이시다. 나보다도 최신 음악 정보에 빠르고, 듣는 취향도 고급스러우시다. 장르도 다양하게 들으셔서 “후바스탱크 새 앨범에 몇 번 트랙이 괜찮더라”하고 권해주는 식이다. 앨범 녹음을 할 때도 어머니의 조언을 참고한다.
가요는 앨범을 녹음하면서 본격적으로 듣게 되었다. 한국말 가사를 입에 붙이려고. 그 전에는 좋아하는 몇몇 앨범만 들었다. 패닉, 강산에 같은.
블루스를 무작정 좋아했다. 딱히 누구를 좋아한다기보다는 블루 노트만 나오면 마음이 움직였다. 취향이 비슷한 친구들끼리 모여서 소규모 게릴라 공연을 하기도 했다. 주로 블루스나 재즈, 고전 팝송들을 따라 부르면서 노래 연습을 했었다.
그래도 곡을 커버할 때는 나름의 원칙이 있었다. 똑같이 하지 않겠다는 것. 어느 정도는 내 감정을 갖고 가겠다는 것.
유학을 가고 싶은 꿈이 있었다. 나윤선 선배 같은 과정을 밟아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여건이 뒷받침 되질 않았다. 아마 데뷔하지 않았다면 아르바이트 하면서 어렵게 유학 준비를 하지 않았을까.
코나의 노래를 부를 기회가 종종 있는데, 쉽지는 않다. (웃음) 조금 모던하게 바꿔서 부르기도 한다. 코나가 활동할 당시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W의 리더인 배영준 선생님과는 열여섯 살 차이가 난다. CD를 사러 매장에 갔다가 평소처럼 “오빠” 하고 불렀는데 사람들이 안 좋은 시선으로 쳐다보더라. (웃음) 그래서 대외적으로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쓴다.
기타를 배영준 선생님이 가르쳐 주시니까, 선생님이 맞기는 하다. 하루에 한 시간 정도씩 레슨을 해 주셨고 여러 가지를 알려주신다. 최근에는 소설 <좀머씨 이야기>를 추천해 주셔서 읽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The Blues> DVD를 사주시겠다고 했다. 벌써 기대된다. (웃음)
‘월광’은 녹음하면서 가장 고생했던 곡이다. 첫 레코딩이기도 했지만 뱀파이어에 관한 가사가 와 닿지 않아서 많이 고민을 했다. 속상해서 허공에 발길질을 하면서 부르기도 했다. 솔직히 분노의 힘으로 부른 거다.
W 멤버들과 만나면 작업할 때가 아니면 음악 얘기는 절대로 안한다. (웃음) 주로 먹는 얘기를 하는데, 사거리 지나서 어디가 맛있다더라, 요즘 뭐가 당기더라, 주로 그런 얘기다.
노래를 부르지 않는 방송을 하는 게 힘들고 어려울 때도 있다. 음악만 하고 싶은 거지. 그럴 때는 W 멤버들과 같은 소속사인 호란 언니의 충고가 큰 힘이 된다. 우리의 음악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리니까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도 좋고.
첫 무대는 W 호텔의 파티장이었다. 당시 MC가 홍록기씨였는데 나를 보더니 “넌 분명히 뜰 거다. 그러니까 얼굴 고치지 마라” 그러셨다. 사진을 찍으면서 부족한 부분들이 보이기는 하는데… 뭐, 안 고칠 거다. 하하하.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