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인터뷰] ‘말모이’ 윤계상 “우리말 지켰던 독립투사…깜냥도 안되는데 덤볐나 자책했죠”

[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영화 ‘말모이’에서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 역으로 열연한 배우 윤계상.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범죄도시’에서 극악무도한 조폭 두목 장첸 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윤계상이 ‘말모이’로 선량한 지식인이 되어 돌아왔다. 그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 우리말을 지키려 했던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을 연기하며 몇 번이나 오열했다고 밝혔다. 독립투사들이 가졌던 불굴의 신념이 가슴을 저몄기 때문이었다. 윤계상은 정성을 쏟았던 영화들이 사랑을 받지 못하면서 힘든 시간을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돌아보니 그 시간은 저한테 필요했다”며 “진정성 있는 배우를 꿈꾼다”고 했다.

10. 일제강점기 우리말 사전을 편찬하기 위해 학자들과 국민들이 우리의 말과 글을 모았던 실화, ‘말모이’ 작전을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다. 이 사건에 대해 알고 있었나?
윤계상: 캐스팅된 후 제작진에게 자료를 받았다. 정환이라는 인물은 당시 서너 분의 선생님을 뭉쳐놓은 가상의 캐릭터다. 사전을 편찬하기 위해 공청회를 연 것, 원고를 빼앗기는 것, 해방 후 경성역에서 사전 자료를 찾게 되는 이야기 등은 실화다.

10. 영화 ‘범죄도시’를 끝내고 출연 제의가 많았을 것 같은데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윤계상: 어마무시하게 들어올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내심 기대도 했는데 말이다.(웃음) 전보다 다양한 장르가 들어오는 건 확실하다. 예전에는 역할도 착한 역 위주였다. ‘말모이’를 읽고 선택한 이유는 첫 번째가 재미, 그 다음이 갖고 있는 의미, 세 번째가 (유)해진 형이었다. 이 영화에는 ‘절대악’이 없다. 악역들도 부성애라든지 인간적인 면모가 바탕이 된다. 궁지에 몰리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는 씁쓸함이 잘 그려져 더 좋았다.

10. ‘범죄도시’로 워낙 인기를 끌었으니 연기에도 자신감이 붙었을 것 같다.
윤계상: 잘하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 했는데 어려워서 난리가 났다. 시나리오는 일단 말이 아니라 글이다. 현장에서 배우의 아이디어가 가미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번 촬영장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는 데다 극에서 중심을 잡아야 하는 사람이 정환이기 때문에 너무 어려웠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떻게 버텼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못한다는 걸 계속 증명하는 느낌이었다.

10. ‘범죄도시’ 장첸과 ‘말모이’ 류정환은 어떻게 다른가?
윤계상: 장첸은 폭력성과 잔인함이 행동으로 드러난다. 반면 정환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깊이를 더했다. 관객들은 그런 정환을 보면서 ‘얼마나 힘들면 표현조차 못하나’ 하고 더 공감하게 될 거다. 사전의 원고를 다 빼앗긴 장면을 연기할 때는 카메라 앞에서 오열하고 말았다.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다.

영화 ‘말모이’의 한 장면.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더 램프

10. 정환은 동료들이 고문을 당하고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우리말 사전 만들기를 꿋꿋이 이어나간다.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것이 어떤 건지 알게 됐나?
윤계상: 솔직히 지금도 그 깊이를 모르겠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가서 물어보고 싶다.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어려운 상황에서 그 신념을 지키려 했다.

10. 상대역인 유해진 씨가 계상 씨에 대해 전보다 깊이가 생긴 것 같다고 하던데, 어떤 모습을 보고 그렇게 말한 것 같나?
윤계상: 소주의 깊이? 하하. 예전에는 술을 전혀 못 먹었는데 함께할 수 있는 자리가 늘어나서 해진 형님이 좋아하시는 것 같다. 감사한 말씀이다.

10. 영화 ‘소수의견’ 때도 그렇고, 유해진과 함께할 때마다 케미가 남다르다. 자신도 그렇게 느끼나?
윤계상: 확실히 있다. 하하. ‘그냥 해보는 것’, 이게 해진 형님의 특화된 부분이다. 예를 들어 극 중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장면에서, 노크를 해서 누군가 열어주는 문으로 들어오는 것과 해진 형님이 직접 문을 확 열고 오는 것, 두 가지 버전이 있다. 다른 배우들은 시도해보지 않고 포기한다.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게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진 형님은 한 번 해본다. ‘소수의견’ 때 형님이 해준 말이 있다. “계상아, 창피해 하지마. 그건 우리만 알고 보는 사람은 몰라. 좋은 모습을 담으면 돼.” 시도 자체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얘기였다.

윤계상은 힘든 시간을 겪으면서 주위를 돌아보고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10. 지금은 인정받고 있지만 몇 년간 영화도 잘 안 됐고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그 시간은 어떻게 버텼나?
윤계상: 시간이 해결해줬다. 지나고 보니 그 시간은 나한테 필요했다. 정환처럼 한 곳만 죽어라 판 적이 있다. 열심히 하면 다 좋아질 줄 알았는데 시야가 좁았다. 어우러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몰랐다. 불안하면 불안하다고 솔직하게 얘기하면 주위에서 도와줬을 텐데 혼자 떠안으려고 했다.

10. 그걸 깨달은 때는 언제였나?
윤계상: 인생과 부딪히면서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그걸 알게 되고 ‘범죄도시’ 때는 좀 더 마음이 편해졌다.

10. ‘범죄도시’는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윤계상: ‘범죄도시’로 받은 올해의 발견상(제9회 올해의 영화상) 트로피는 진열장 한 가운데 있다. 뜻깊은 상이다. 소감을 말할 때도 울 뻔했다. 나이가 드니 눈물이 많아졌다. 감동의 진폭이 크게 온다. 남성팬도 생겼다. 식당에 가면 저를 장첸으로 본다.(웃음)

10. 내년 계획은?
윤계상: 영화 ‘유체이탈자’(가제) 촬영을 시작한다. ‘심장이 뛴다’의 윤재근 감독님이 연출한다.

10. 지금 자신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은?
윤계상: 연기, 그리고 작품.

10. 그렇다면 노래는?
윤계상: 소통의 창구인 것 같다. 콘서트에 20대 중후반 팬들이 많은 게 이상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 6~7살쯤이었던 팬들이 당시 god를 보지 못한 아쉬운 마음에 이제 보러 오는 거라고 하더라. 당시 열성적으로 우리를 좋아했던 팬들은 한 발 물러나서 과거를 추억하듯 자기 세계에 빠져있다. 그런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재밌다. 노래를 부르면서 나도 추억이 되살아난다. god로 활동할 때는 이상한 기분이 든다. 20년 동안 똑같은 걸 해왔는데 이제는 팔다리가 예전 같지 않아서 많이 틀린다. 똑같이 밥 먹는데도 숟가락을 떨어뜨리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춤추는 게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웃음)

윤계상은 진정성 있는 배우를 꿈꾼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10. 얼마 전 god 멤버들과 스페인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걸으며 우정을 다졌다. 걸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
윤계상: 처음에는 의도에 의해서 걷기 시작한다. 걷다 보면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다. 그걸 잊으려고 자기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의 기억까지 돌아가는데도 시간이 남는다. 그러면 옆에 있는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추억을 돌아보다가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 한순간 머리가 열리는 것처럼 ‘아무 것도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다가온다. 그래도 여전히 걷고 있다.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도착했을 때 성당을 가리키는 광장의 동상을 보면서 ‘생명이 다해서 죽는 날이 오면 이런 마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생을 보는 시각도 완전히 달라졌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내가 결정하는 거라는 걸 깨달았다.

10. 멤버들과도 더 끈끈해졌을 것 같다.
윤계상: 프로그램을 하면서 온전하게 멤버들과 하나가 됐다고 느낀 순간도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는 싸운다. ‘자몽티 먹을래, 딸기티 먹을래?’ 이런 걸로 말이다. 자기가 좋으면 남들도 좋아할 거라고 우기는 소년 같다.(웃음)

10.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윤계상: 진정성 있는 배우. 진정성이라는 말이 참 좋다. 온 힘을 다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대중과 내 의견이 맞지 않을 때도 있겠지만 꿋꿋하게 일을 해나갈 거다. 10점짜리 과녁을 여러 번 맞히는 사람보다 0점을 맞혀도 뻥 뚫어버리는 배우가 되고 싶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