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진, 일기장에 적은 뜨거운 마음 하나(인터뷰)

경수진

웃음이 많고, 사람이 참 맑다. 그리고 생각보다 털털하다는 것. 경수진을 만난 첫 느낌이다. 청순한 외모와 일곱 번의 첫 사랑 연기가 남긴 이미지가 그녀의 전부일 거란 편견은 마주한 지 5분 만에 자취를 감췄다.

KBS2 ‘적도의 남자’(2012) 속 말괄량이 지원이 아침드라마 ‘TV소설 은희’의 여주인공으로 거듭났듯, 그녀의 연기 인생은 이제 막 정상궤도에 올랐다. 하지만 얼마 전 케이블채널 tvN ‘백지연의 피플 INSIDE’에 출연해 고백했듯 그녀는 ‘아역 전문 성인 배우’라는 수식이 붙을 만큼 아역을 많이 맡기도 했고, 8편의 작품에서 일곱 번이나 누군가의 첫사랑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첫사랑 역은 많이 맡을수록 좋은 것 같다”는 얘기를 망설임 없이 꺼내놓는다.

스물여섯 살이 돼서야 데뷔했다는 사실도 눈길을 끈다. 스물한 살에 학업을 멈추고 아르바이트와 연기학원을 오갔다는 이야기를 털어놓는 데도 스스럼이 없다. 듣는 입장에서는 쿨한 건지 무심한 건지 감을 잡지 못할 법도 하다. 그런데 소속사와 처음으로 계약을 맺던 날의 이야기를 듣게 된 순간,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잊지 않을 것이다”고 마음에 아로새기듯 일기장에 적은 이 문장은 ‘연기’에 대한 그녀의 갈망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연기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은 그녀가 스타보다는 배우를 꿈꾸게 했고, 그 힘찬 여정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Q. 데뷔작 KBS2 ‘적도의 남자’ 이후 이 정도로 주목을 받은 데는 ‘상어’의 힘이 컸다.
경수진: 처음에는 부담이 컸다. ‘내가 아역을 맡아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웃음). ‘상어’ 덕분에 극 중 호흡을 맞췄던 연준석과 함께 토크쇼에도 출연할 수 있었다.

Q. ‘상어’에서 손예진의 아역을 맡아 외모의 싱크로율이 높았고 극의 초반에 해우의 캐릭터도 잘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수진: 이 정도로 호흡을 길게 가져가는 배역은 처음 맡아봐서 작품 들어가기 전에 준비를 많이 했다. 손예진 선배가 출연한 작품을 살펴보며 디테일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준석이가 연기를 잘해서 그 덕을 본 것 같기도 하다.

경수진

Q. ‘손예진 닮은꼴’이란 수식을 듣는 기분이 어떤가. 여배우에게 외모는 경쟁력이 아닌가.
경수진: 그래서 손예진 선배의 작품을 더욱 꼼꼼히 챙겨보는 편이다. 항상 ‘저분이 갖고 있지 않은 나만의 매력을 드러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한다. 외모가 닮았다는 이야기도 듣기 좋지만, 그보다 ‘배우 경수진’을 먼저 떠올리실 수 있도록 하고 싶다.

Q. 차기작으로 KBS2 아침드라마 ‘TV소설 은희’를 택했다. 인기에 편승하려는 배우들과는 확실히 다른 행보다.
경수진: 작품의 종류는 중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어떻게 연기력을 키울 것인가’하는 거다. 반효정, 최준용, 김혜선 선배에게 촬영 때마다 특훈을 받고 있다. 신인 배우인 나에게는 굉장한 기회다.

Q. 극 중 여주인공 은희를 맡았다. 주인공 여성이 중심인 드라마에서 극을 이끌기가 쉽지는 않겠다.
경수진: 촬영을 거듭하며 은희와 내가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극에 성공이야기가 담겨있다는 점이 나의 인생과도 닮은 점이 있는 것 같다(웃음). 진취적인 성격을 갖고 점차 발전해나가려는 모습이 나와 닮았다. 처음에는 은희라는 옷이 조금 어색했다. 차차 나아지는 모습을 확인하실 수 있을 거다.

Q. 일일드라마라서 힘든 점은 없는가.
경수진: 확실히 미니시리즈와는 호흡이 다른 것 같다. 수원 촬영 센터에서 온종일 머물다 보니 힘든 점이 있다. 나의 생활을 다 포기하게 됐고(웃음). 새벽 5시부터 촬영장에 나와서 보통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촬영과 대기를 반복한다. ‘백지연의 피플 INSIDE’에서 두 달간 부모님을 못 봤다고 했는데 정말 거짓말이 아니다. 힘들지만 배우로서 겪고 넘어서야 한다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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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백지연의 피플 INSIDE’에 나오면서 데뷔 이전의 삶이 공개됐다.
경수진: 중·고등학교에 다닐 적에도 연극부 활동을 하며 배우의 꿈을 키워왔다. 근데 대학은 스포츠산업 학과를 갔다(웃음). 운동을 워낙 좋아했다. 입학 후 딱 한 학기를 다녔는데 적성에 안 맞는다는 걸 느꼈다. 같은 과 선배들이 졸업 후 전부 본인이 공부한 내용과는 관계가 없는 일을 하더라. 그때부터 하고 싶은 일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보기로 했다.

Q. 스물한 살부터 준비를 시작한 것치고는 데뷔가 좀 늦었다. 4년간 혼자서 연기자 공부를 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경수진: 외모와는 다르게 성격은 좀 무모한 부분이 있다. ‘한우물만 파자’고 생각을 굳힌 뒤로는 일하면서 연기학원에 다녔다. 부모님께서는 나의 의사를 존중해주셨지만, 집에 손을 벌리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하면서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나?’하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지금 다시 그 생활을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Q. 힘들었던 만큼 데뷔할 때 기분이 남달랐겠다.
경수진: 말도 못한다(웃음). 소속사 계약한 날은 집에 오자마자 일기도 썼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잊지 않을 것이다”고 적고 입술 도장도 찍었다. 내가 꿈꿔왔던 일이 하나둘씩 이뤄져 간다고 느꼈다.

Q. 배우 경수진의 연기 인생에 전환점은 언제였나.
경수진: KBS2 ‘드라마스페셜-스틸사진’이다. 그전보다 확실히 성장했다는 것을 체감했고 연기에 대한 생각도 열렸다. 좀 더 용기와 자신감을 얻게 된 것 같다. ‘스틸사진’ 이후로 배우로서의 성장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적도의 남자’ 이후 나의 연기의 미숙함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방송연기의 부족함을 채우려 노력을 많이 했는데 ‘스틸사진’을 통해 나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 이후로 무조건 빨리 목적지로 가려고 하기보다는 천천히 나를 돌아보며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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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최근 독립영화 ‘비를 그리다’ 촬영을 마쳤다고 들었다. 독립영화 출연도 그런 생각이 반영된 결과인가.
경수진: ‘배우로서 내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까’를 계속해서 고민했다. 나의 연기력이나 상황을 놓고 보니 장편영화나 상업영화보다는 독립영화가 나에게 더 맞을 것으로 생각했다. 예산이 적었고, 작품 특성상 한 번에 많은 대사를 소화해야 하는 장면이 많아서 어려움을 겪었다. 아직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원래 영화배우를 꿈꿔왔기에 꿈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선 기분이다.

Q. 배우 경수진은 어떤 연기자로 기억되고 싶은가.
경수진: 길게 보려고 한다. 평소에 반효정, 나문희, 고두심 선배를 존경해왔다. 그분들의 연기에서 묻어나는 자연스러움은 쉽게 얻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을 항상 가슴 속에 품고 있다. 배우의 필모그래피는 그 사람의 역사다. 나는 나만의 역사를 만들어나가고 싶다. 여배우로서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려고 한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