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감도>│감각의 문을 여는 다섯개의 키

좋은 재료는 당연히 맛있는 요리의 기본이다. 그러나 언제나 좋은 재료가 음식의 질을 담보할 수 있을까? 허진호, 민규동 등 한국영화계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확보한 5명의 감독들과 배우들이 만든 옴니버스 영화 <오감도>의 기자 시사가 지난 30일 왕십리 CGV에서 열렸다. 참여감독들과 주연배우들이 대부분 참석한 자리는 소문난 잔치답게 북적였다. 다음은 ‘에로스’라는 이름 아래 모인 5편의 단편영화들이다. 관객들은 과연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있을지, 없을지 7월 9일 확인할 수 있다.

변혁 감독 ‘his concern’

_기차 안에서 이어진 하룻밤

내 옆자리에는 누가 탈까? 굳이 여행이 아니라 할지라도 기차를 타는 경험은 일상을 벗어난 설렘을 동반한다. 옆자리에 괜찮은 분위기의 이성(차현정)이 타기라도 한다면 주인공 남자(장혁)처럼 접근하는 상상을 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 남자가 일상에서 벗어나서 인연과 운명을 만드는 것 같은 느낌이 좋았다”는 장혁의 감정은 대사의 90%를 차지하는 독백에 의해 공감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어 몰입을 방해한다.


허진호 감독 ‘나, 여기 있어요’

_세상에서 가장 슬픈 숨바꼭질

“<행복> 때 제작진과 함께한 작업”인 만큼 감독의 전작 <행복>의 연장선상에 있는 느낌이 강하다. 몸이 아픈 아내(차수연)와 자상한 남편(김강우)의 장난스러운 숨바꼭질은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 영원히 찾을 수 없는 숨바꼭질이 되어버린다. 영화는 차분한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아내를 잃어버린 남자의 슬픔을 몸의 기억을 통해 과장되지 않은 에로스로 보여줬다. “장편보다 오히려 집중이 잘 됐다”는 김강우는 20여분의 짧은 시간 안에 에로스와 슬픔, 두 가지 감정을 절절하게 담아냈다.


유영식 ‘33번째 남자’

_아무도 모르는 그녀의 섹시함의 비결

정상의 여배우(배종옥)가 순진한 신인(김민선)에게 괴팍한 감독(김수로)을 유혹하는 비법을 전수한다는 설정은 에로스라는 주제와 함께 자극적으로 다가오지만 오히려 다른 작품들에 비해 발랄하고 코믹하다. 어색한 특수효과 연극무대에서 옮겨온 듯한 배종옥의 섹시한 여배우 연기는 위악적으로 느껴지지만 마지막 반전이 허허실실한 웃음을 준다.


민규동 감독 ‘끝과 시작’

_한 남자와 두 여자, 엇갈린 시선

후배 나루(김효진)와 밀회를 즐기다 죽은 남편(황정민) 때문에 괴로운 정하(엄정화)에게 나루는 자꾸 찾아와 동거를 요구하며 기이한 행동을 한다. 당연히 삐걱거려야 할 두 여자의 관계는 심상치 않은 에로스를 자아낸다. 그러나 기대감을 갖게 하는 만든 이들의 이름에 비해 영화는 시종 일관 길을 잃고 헤맨다. 20여분이라는 짧은 시간을 쉬이 버텨내기 힘들 만큼 이야기는 작위적이고, 서로를 묶는 행위에 집착하는 주인공들의 행위도 어쩔 수 없이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언두>를 연상케 한다.


오기환 감독 ‘순간을 믿어요’

_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최근 주목받고 있는 신세경, 이성민, 송중기, 이시영, 정의철 등 신인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순간을 믿어요’는 하루 동안 스와핑을 하게 된 세 커플들의 이야기다. 청소년 드라마의 외피에 담아낸 에로스는 사랑하는 감정이 없이도 성적인 교감이 가능한가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스와핑을 하는 아이들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통해 답을 하고 있다.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고, 야하지도 않고
<오감도>를 구성하고 있는 5편의 단편들은 저마다 작품의 밀도 차이가 너무 크고, ‘에로스’에 대한 시선마저 균일하지 않아 각 영화는 키스 신 외의 공통분모가 없다. 서사를 압축시키는 대신 자유로운 시도가 가능한 단편영화만이 가지는 장점 자체를 살려낸 작품도 찾기 힘들다. 대신 그 자리를 배우들의 열띤 신음소리가 가득 채웠다. 첫 번째 단편 `‘his concern’에 출연한 장혁은 “옴니버스 식으로 여러 배우와 감독이 변화를 가져가보자는 기획의도 때문에 출연했다”고 밝힌 만큼 출연료보다는 영화계의 새로운 시도를 위했다는 배우들의 자세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신선한 시도가 그저 시도에만 그치고 말았을 때 여전히 관객들이 그들의 결과물에 박수를 보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