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리뷰] ‘갈매기’, 사랑도 꿈도 잔향을 남긴다

[텐아시아=박미영 기자]

영화 ‘갈매기’ 포스터

그 여름, 배우를 꿈꾸는 니나(시얼샤 로넌)와 작가를 꿈꾸는 콘스탄틴(빌리 하울)은 푸릇하게 열애 중이다. 콘스탄틴의 어머니이자 유명한 배우인 이리나(아네트 베닝)가 여름 휴가를 보내려고 오빠 소린(브라이언 데니히)과 아들이 있는 고향 별장을 찾는다. 연하의 연인이면서 촉망받는 작가인 보리스(코리 스톨)를 대동하고.

콘스탄틴이 극작과 연출을 맡고, 니나가 주인공을 맡은 연극이 야외에서 펼쳐진다. 소린은 꾸벅꾸벅 졸고, 이리나는 툭툭 내뱉는 말로 흐름을 끊어놓는 등 관객으로 온 이들의 반응이 시원찮은 가운데 콘스탄틴을 대놓고 흠모하는 마샤(엘리자베스 모스)만 연극에 몰입한다. 화가 치민 콘스탄틴은 남은 공연을 접어버린다.

니나가 보리스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하고, 보리스는 니나를 통해 다시 글이 써질 것만 같은 영감을 얻는다. 그들의 숨겨지지 않는 감정은 콘스탄틴과 이리나를 깊은 절망에 빠뜨린다. 이리나는 니나를 생각만 해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아들을 위해, 더 정확히는 자신의 품격에 걸맞는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영화 ‘갈매기’ 스틸컷

‘갈매기’는 안톤 체호프의 대표적인 4대 희곡 중 하나인 동명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다. 고전으로 추앙을 받아온 작품답게 원작의 무게감이 남다르다. 브로드웨이를 대표하는 연출가의 한 사람으로서, 특히 고전을 재해석하는 능력으로 정평이 난 마이클 메이어가 감독을 맡았다. 이번에도 그는 매끈하게 스크린에 담아냈다.

시얼샤 로넌은 어떠한 시공간에 놓여져도 마치 그곳에서 태어나서 쭉 자란 것처럼 인물 속으로 섞여 들어간다. 앞으로 희곡으로 ‘갈매기’를 읽더라도, 니나의 대사와 몸짓에는 그녀가 덧입혀질 듯싶다. ‘체실 비치에서’에 이어 이번에도 시얼샤 로넌을 향한 슬픈 사랑을 하는 빌리 하울은 콘스탄틴이 가진 감정의 진폭을 잘 살렸다. 아네트 베닝의 고혹적이고 농염한 매력 또한 눈을 뗄 수 없었다. 가만히 있는, 즉 지루함을 못 견디는, 일상도 무대처럼 살아가는 이리나를 더할 나위 없이 그려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모스는 콘스탄틴과 보드카에 중독된 마샤를 감정이 뚝뚝 흘러나오는 연기로 승화하여 관객을 매혹시켰다.

니나와 콘스탄틴의 꿈이 진행형이라면, 이리나와 보리스는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즉 니나와 콘스탄틴이 바라는 꿈의 완성형과도 같은 대상이다. 네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이 갖지 못한 사랑을, 꿈을 탐한다. 열망한다. 사랑과 꿈의 잔향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존재는 비단 그들 뿐 아니라 관객인 우리도 마찬가지다. 차가운 공기로 점점 깊어지는 겨울, 안톤 체호프의 뜨거운 작품 ‘갈매기’를 스크린으로 누리는 호사를 마다할 이유는 없을 듯싶다.

12월 13일 개봉. 12세 관람가.

박미영 기자 stratus@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