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데뷔 2000일③] 소년들, 세계를 울리다…방탄의 피땀눈물

[텐아시아=김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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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8 멜론뮤직어워드’에 참석한 그룹 방탄소년단. / 이승현 기자 lsh87@

‘서울 강원부터 경상도 충청도부터 전라도 마마 머라카노! 마마 머라카노! 우리가 와불따고 전하랑께 우린 멋져부러’

2013년 9월 11일 방탄소년단의 첫 미니음반 ‘O!RUL8,2?(Oh! Are you late, too?)’에 담긴 ‘팔도강산’의 후렴구다. 늘어놓은 지역 중에는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고향이 있고, 노래 제목처럼 팔도강산에 흩어져 살던 7명이 모여 방탄소년단으로 뭉쳤다. 전혀 다른 억양의 지역 사투리처럼 일곱 소년들도 누구하나 같은 색깔이 없다. 팔도강산이 다채로워서 아름다운 것처럼 방탄소년단도 그래서 더욱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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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방탄소년단 진. / 이승현 기자 lsh87@

▶ 배우를 꿈꿨던, 김석진(진)

지금은 무대 위를 훨훨 날지만, 진은 원래 배우를 꿈꿨다. 1992년 경기도 과천에서 태어난 그는 데뷔 초 텐아시아와 인터뷰에서 “연기자 준비를 하다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연습생이 됐다. 힙합을 하는 팀이 있다고 해서 들어가고 싶었는데, 방탄소년단에 합류했을 때 정말 기뻤다”고 말했다.

연기자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건국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고, 학교를 가던 길에 빅히트 관계자의 눈에 띄었다고 한다. 애초에 가수를 꿈꿨던 게 아니었기 때문에 방탄소년단이라는 팀에 합류하고 나서야 힙합이란 장르에 푹 빠졌다. 게다가 배워본 적 없는 현란한 춤도 매끄럽게 표현하기 위해 무척 애썼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어릴 때부터 춤을 췄던 일부 멤버들과 비교될 수밖에 없었고, 어딘가 어색한 기운이 흐른다고 해서 팬들이 붙여진 ‘어색하진’이라는 애칭도 있다. 스스로도 자신을 “팀에서 ‘댄스 구멍’”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춤에 자신이 없었다. 밝고 온화한 성격 덕분에 자칫 콤플렉스나 약점이 될 수 있는 부분도 웃음으로 승화시켜, 오히려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더불어 부단히 노력해 지금은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 감각적으로 역량을 드러낸다. 오직 연습과 노력만으로 방탄소년단의 전매특허 ‘칼군무’에 녹아들었다는 건 칭찬할만하다. 뿐만 아니라 팀에서 동생들을 지키는 든든한 맏형 역할도 제대로 하고 있다. 그는 작사에 참여한 두 번째 정규 음반 ‘윙스(WINGS)’의 ‘어웨이크(AWAKE)’에서 ‘나는 너무 무서워
그래도 여섯 송이 꽃을 손에 꼭 쥐고 난 걷고 있을 뿐’이라고 썼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을 꽃잎으로 형상화해 희망을 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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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방탄소년단 RM. / 이승현 기자 lsh87@

▷ 에픽하이가 바꾼 인생, 김남준(RM)

“저는 대한민국 서울 근교에 위치한 일산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곳은 호수와 산이 있고, 해마다 꽃 축제가 열리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곳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저는 그저 평범한 소년이었습니다.”

RM이 지난 9월 24일(현지시간) 뉴욕 UN 본부 신탁통치이사회 회의장에 마련된 UN총회 무대에서 한 말이다. 1994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도 일산에서 자란 그는 데뷔 초 썼던 이름인 랩몬스터도, 현재 활동명인 RM이 아닌 ‘김남준’이었던 시절을 떠올렸다. 어릴 적 그의 안식처는 ‘음악’이었다고 한다. 꿈을 확실히 정한 계기가 된 건 그룹 에픽하이가 2005년 10월 발표한 ‘플라이(Fly)’를 들은 뒤부터다. 그때부터 세상이 달라졌다.

그는 “랩으로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다는 것에 충격 받았다”고 했다. 힙합 커뮤니티에 자작 랩을 올리고 크루를 만들어 공연을 하는 등 데뷔 전부터 소소하게 활동을 펼쳐왔다. 무대 위에서 화려한 랩을 구사하는 RM을 눈여겨본 래퍼 슬리피가 그를 방시혁 대표에게 소개했다. 방 대표는 RM을 처음 봤을 때 “내 기준에서 정말 잘하는 친구”라며 “무조건 데뷔시켜야겠다는 소명의식을 느꼈다”고 밝혔다. 사실 힙합 가수로 키울 생각이었지만, 아이돌 그룹이 아니면 가요계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일부의 의견을 수렴해 지금의 방탄소년단을 꾸렸다. 시작이 RM인 셈이다.

RM은 노래에 자신이 느낀 점을 곧잘 담아낸다. 방 대표는 방탄소년단에게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역시 이에 공감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RM은 자신들의 진심이 대중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힘줘 말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에 녹이는 래퍼가 될 줄 알았으나 역동적인 춤까지 보여줘야 하는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를 준비하며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진과 마찬가지로 역시 RM도 춤 연습을 어려워한 멤버 중 하나다. 이 과정에서 그의 마음을 돌린 건 한 팬의 진심 어린 조언 덕분이었다. ‘아이돌 가수는 특정 장르의 상위 개념이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지금 아이돌로 보여줄 수 있는 에너지를 모두 보여줘라. 아티스트라는 말은 남들 같지 않은 면을 드러내면 자연스럽게 따라올 명찰이다’라는 편지였다. RM은 앞서 한 인터뷰에서 “아이돌의 사전적으로 ‘우상’이다. 내 말과 생각을 대변해주는 존재”라며 “방탄소년단이 진정한 아이돌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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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방탄소년단 제이홉. / 이승현 기자 lsh87@

▶ 춤에 대한 사명감, 정호석(제이홉)

“여러분의 호프(hope), 여러분은 나의 hope”는 제이홉이 콘서트 때 자신을 소개하는 말이다. 이름처럼 항상 밝고 명랑한 모습으로 방탄소년단에서 ‘희망’을 맡고 있다. 전라도 광주 출신인 그는 RM과 슈가에 이어 세 번째로 빅히트에 들어왔다. 춤을 처음 배운 RM, 슈가와 다르게 그는 고향에서도 춤으로 이름을 좀 날렸다. 동방신기 유노윤호, 빅뱅 승리와 같은 댄스 학원에서 꿈을 키웠고 스트리트 댄서로도 활동하며 댄스 배틀에서 우승한 경험도 있다. 당시 댄스학원에서 빅히트 오디션을 봤는데, 남다른 열정을 갖춘 덕분에 발탁됐다.

춤에 자신 있었던 제이홉은 연습생 시절부터 멤버들의 ‘춤선생’을 자처했다. 별명도 ‘안무팀장’으로 불렸다. 그래서인지 팀에서 춤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 있다. 연습생 때 멤버들에게 팝핀의 기초를 알려주고, 지민·정국과 새벽 연습을 주도해 멤버들이 춤에 재미와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왔다. 연습생 시절 빅히트를 나갈 뻔했는데, 다른 멤버들이 “(제이홉이) 꼭 돌아와야 한다”고 눈물까지 보였을 정도로 멤버들을 잘 이끌었다. 방탄소년단 춤의 ‘정신적 지주’라고 불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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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방탄소년단 슈가. / 이승현 기자 lsh87@

▷ 포기하지 않았다, 민윤기(슈가)

1993년 대구에서 태어난 슈가. 음악을 시작한 배경이 RM과 비슷하다. 그룹 스토니스컹크의 ‘레게 머핀(Ragga Muffin)’을 듣고 ‘음악’이라는 꿈을 가졌다. RM과 마찬가지로 에픽하이 ‘Fly’도 마음을 흔든 노래 중 하나다.

그는 자신이 속한 힙합 크루에서 곡을 쓰는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빅히트의 공개 오디션을 보고 입사했는데, 당시 자신이 프로듀서로 뽑힌 줄 알았다고 한다. 방시혁 대표의 “원타임 같은 힙합 그룹을 만들 것”이라는 말을 믿고 도전했지만, 이후 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방 대표를 향해 “춤은 율동 정도만 하면 된다고 했으면서”라며 억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데뷔를 앞두고 연습을 하면서도 배달 아르바이트를 병행한 슈가는 배달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어깨를 다쳤다. 빅히트에 조심스럽게 이 사실을 알렸고, 소속사는 학비까지 지원해주며 슈가의 꿈을 위해 적극 지원했다고 한다.

무뚝뚝하고 솔직한 성격을 갖고 있는데, 그래서 연습생 때도 멤버들에게 직설적인 조언을 하는 역할을 맡았다. 승부욕이 강한 성격 덕분에 처음 배우는 춤 연습에도 최선을 다했고, 사투리를 고치기 위해 기사를 소리 내어 읽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쉬는 날이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걸 가장 좋아하고 말도 행동도 느려, ‘민달팽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그가 누구보다 빠르고 부지런해지는 순간은 오직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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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방탄소년단 지민. / 이승현 기자 lsh87@

▶ 모두가 인정한 노력파, 박지민(지민)

1995년 부산에서 태어난 지민의 좌우명은 ‘할 수 없을 때까지 해보자’이다. 팀에 가장 마지막으로 합류한 그는 멤버들은 물론 빅히트 직원들도 인정한 ‘연습벌레’다. 연습생이 되기 전 2년 동안 부산예술고등학교에서 현대무용을 배웠고, 멤버들의 포지션이 모두 정해진 다음 들어왔기 때문에 빅히트의 고민도 깊었으나 워낙 성실하게 연습하면서 끈기와 열정을 보여줘, 멤버로 뽑혔다.

지금은 무대 위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한 것이 빛을 발하지만, 연습 과정에서는 발목을 잡았다. 지민은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연습생으로 발탁된 후 춤을 잘 못 춰서 데뷔가 어려워질 뻔도 했다”며 “현대무용과 안무가 많이 다르다”고 떠올렸다. 그에게는 연습만이 살길이었다. 오죽하면 스태프들이 연습하는 것을 말릴 정도로 지독하게 쉬지 않는 멤버였다고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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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방탄소년단 뷔. / 이승현 기자 lsh87@

▷ 도전에는 끝이 없다, 김태형(뷔)

1995년 대구에서 태어난 뷔 역시 초등학생 때부터 가수가 꿈이었다. 가수라면 악기 연주는 필수라는 생각에 색소폰을 3년 동안 배웠고 방송 댄스 학원에 등록해 춤도 익혔다. 이후 친구를 따라 빅히트 비공개 오디션에 지원했고, 합격하는 기쁨을 맛보면서 본격 데뷔 준비를 시작했다.

빅히트에 연습생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방탄소년단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팔도강산’이라는 곡으로 오디션 홍보를 한 멤버들의 모습을 보고, 꼭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춤이라곤 방송 댄스 학원에서 배운 게 전부였던 그는 제이홉과 지민을 통해 춤에 흥미를 붙였고, 유쾌한 성격으로 방송을 통해서는 ‘흥부자’라고 불리지만 무대 위에서는 돌변한다. 눈빛의 온도 차이도 또렷하고, 단숨에 보는 이들을 숨죽이게 만드는 카리스마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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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방탄소년단 정국. / 이승현 기자 lsh87@

▶BTS의 ‘황금 막내’, 전정국(정국)

1997년생 부산 출신인 정국은 그룹 빅뱅 지드래곤의 ‘하트브레이커(Heartbreaker)’를 듣고 가수를 꿈꿨다. 꿈을 이루기 위해 2011년 Mnet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3’에 지원했으나 예선에서 떨어졌다. 당시 부드러운 음색을 살려 그룹 2AM의 ‘이 노래’를 부른 그는 여러 엔터테인먼트에서 캐스팅 제안을 받았고, 그중 빅히트를 택했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정국을 두고 ‘황금 막내’라고 부른다. 실력과 재능이 타고나,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이유에서다. 막내지만,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매섭게 돌진한다. 2015년 4월 미니음반 ‘화양연화 파트1’에 담긴 ‘아웃트로 : 러브 이즈 낫 오버(Outro : Love is Not Over)’는 정국의 자작곡이다. 전까지 개인 작업실이 없었던 그는 옷장이 있는 방에서 독학으로 배운 피아노를 연주하며 만들었다. 데뷔 전, 한 달 동안 미국으로 춤 연수도 다녀왔다. 연습 당시 정국이 가진 많은 가능성이 좀처럼 발산되지 않아 걱정이었던 손성득 안무가는 방시혁 대표에게 제안해 정국과 미국으로 향했다. 당시 정국은 유명 안무가에게 다양한 분위기의 춤을 배웠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