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리뷰] ‘지킬앤하이드’, 조승우의 힘…그 무엇보다 강렬한

[텐아시아=김하진 기자]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에서 지킬·하이드 역을 맡은 배우 조승우. / 제공=오디컴퍼니

지난 24일 서울 잠실동 샤롯데씨어터. 배우 조승우가 나지막이 “지금 이 순간”이라고 입을 떼는 순간 객석엔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정적이 흘렀다. 찰나의 순간도 놓칠 수 없다는 듯, 관객의 눈과 귀는 무대 위에 홀로 선 그에게 쏠렸다. 지난 13일 막을 올린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연출 데이비드 스완)의 공연 현장이다.

2018년 버전의 ‘지킬앤하이드’는 조승우가 지킬·하이드 역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개막 전부터 주목받았다. 2004년 ‘지킬앤하이드’의 초연을 함께한 그는 당시 이 작품으로 한국뮤지컬대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2010년 군 복무를 마친 뒤에도 ‘지킬앤하이드’를 복귀작으로 선택하며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는 그는 이듬해 더뮤지컬어워즈에서 남우주연상을 꿰찼다. 현재까지 출연 횟수는 243회로, 지킬·하이드 역을 맡은 배우 중 가장 많다. 일명 ‘조지킬’로 불리며 조승우 하면 ‘지킬앤하이드’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정도다.

‘지킬앤하이드’는 영국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의 이상한 사건’을 원작으로 한다.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과 작가 레슬리 브리커스가 협업해 뮤지컬로 만들었다.

한 인물이 ‘지킬’과 ‘하이드’라는 두 가지 인격을 갖고 있다는 설정이다. 지킬과 하이드는 각각 선(善)과 악(惡)을 상징한다. 지킬은 선량한 의사이며, 하이드는 무자비한 폭력성을 표출하는 또 다른 인물이다. 극은 이 범상치 않은 주인공으로 인해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이 넘친다. 지킬과 하이드가 부르는 넘버(뮤지컬 삽입곡) 역시 전혀 다른 분위기로 극과 극의 양면을 살린다.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지킬 박사의 애처로움을 시작으로, 그의 앞에 나타난 약혼녀 엠마와 자유분방한 루시의 소개를 마치면 극은 마침내 출발한다. 이를 알려주는 노래가 바로 ‘지금 이 순간(This Is The Moment)’이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자, 지킬은 자신의 몸에 직접 실험을 한다. 지킬에서 하이드로 변하는, 인간의 이중성을 처음 표현하는 장면이다. 작품의 핵심 메시지이기도 해서 여러 모로 놓치면 안 되는 순간이다.

배우 조승우. / 제공=오디컴퍼니

‘지금 이 순간’은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를 보지 않았더라도 후렴구만 들으면 금방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곡이다.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서 사용되며 널리 알려졌다. 그런 익숙한 곡을, 심지어 초연부터 호흡을 맞춘 조승우가 부르는데 전혀 진부하지 않다. 오히려 세월의 연륜과 깊이가 더해져 신선하기까지 하다. 그는 차분하게 읊조리다 서서히 무르익은 감정을 나타내면서 결국 폭발했다. 200회를 훌쩍 넘게 지킬과 하이드를 오간 조승우의 내공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2004년 이후 여러 장르의 작품을 하면서 차곡차곡 쌓인 경험과 실력이 스며들어 3년 만에 돌아온 ‘조지킬’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을 기점으로 색이 확 변하는 극처럼 조승우도 더 또렷하게 빛나기 시작한다. 소름 끼치게 낮은 목소리로 사람을 해치며 폭주하는 하이드가 됐을 때는 광기 어린 눈빛과 난폭한 몸짓으로 관객들을 얼어붙게 만든다. 또한 불쑥 튀어나오는 하이드를 제어하지 못해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지킬의 간절함도 놓치지 않았다. 덕분에 수시로 극과 극을 오가는데도 집중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조승우는 음성의 높낮이, 눈빛의 온도차 등으로 지킬과 하이드의 다름을 나타냈다. 특히 엠마와 루시 앞에서 각각 부드럽거나 거친 모습으로 확확 변해 극에 긴장과 재미를 동시에 불어넣었다. 그의 활약은 초 단위로 변하는 지킬과 하이드를 표현할 때 정점을 찍는다. 왼쪽과 오른쪽으로 번갈아 고개를 돌리고, 팔을 올렸다 내리며 분노와 혼란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관객들의 시선을 확실하게 잡아끌며 혼자서도 큰 무대를 가득 채운다. 가슴을 조이는 조승우의 절규에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2004년부터 14년째 공연되고 있는 ‘지킬앤하이드’가 2018년에도 여전히 신선하고 감동적인 건 그가 제 몫을 톡톡히 했기 때문이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공연 장면. / 제공=오디컴퍼니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와 배우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2층 구조의 다이아몬드 형태 무대, 자신의 자리에서 알맞게 빛을 내준 배우들도 ‘지킬앤하이드’를 더욱 빛나게 했다. 지킬의 온화함을 끌어내며 청아하고 맑은 소리로 극을 풍성하게 만든 엠마 역 이정화의 새로운 시도와 매혹적인 자태로 깊은 인상을 남긴 그룹 마틸다의 해나도 눈에 띄었다. 내년 5월 19일까지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된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