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량기획 매혹킬러① ‘상어’ 기국서,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인터뷰)

배우 기국서

‘상어’에서 암살자를 연기한 배우 기국서

모두가 한 꺼풀의 거짓으로 자신을 감추고 그 거짓을 숨기기 위해 비밀을 품고 사는 KBS2 드라마 ‘상어’(극본 김지우, 연출 박찬홍 차영훈)의 세계를 유영하는 사람들 속 가장 섬뜩한 이는 ‘따각따각’ 볼펜 소리로 마주한 이의 숨통을 조여온 암살자 최병기였다.

얼굴은 낯설지만, 지극히 평범했고 그래서 더 섬찍했다. 최병기를 연기한 이는 기.국.서. 연극연출가로 더 유명하며, 배우 기주봉의 형이다. 1976년에 설립된 극단76의 이름난 연출가로, 연극적 책무를 가지고 오로지 연극을 위해 평생을 바친 그였다. 영화나 TV라는 보다 대중적인 매체를 통해 연기자라는 직업으로 살아가기 시작한 것은 불과 지난해부터 시작된 일이다.

영화 ‘도둑들’의 웨이홍, 그리고 ‘상어’의 최병기. 냉혈이라는 단어로는 설명 못 할 차가운 공기가 공존하던 그와 마침내 마주 앉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연출가로 살았음에도, 카메라 울렁증에 우황청심환을 먹고서야 연기를 했다고 툭툭 고백하는 실제의 기국서에게는 온화한 인간의 기온이 감돌았지만, 공간을 빼곡히 채우는 압도적인 그래서 서늘한 무게감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그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배우와 마주한 짧은 시간의 기록을 펼쳐보았다.

Q. 그간 연출가로 살면서, 뒤늦게야 (본격적으로) 연기에 발을 들였다.
기국서 : 과거에도 영화에 출연하긴 했지만, 카메오 형태로 출연했었고, 당시만 해도 연기를 보여주리라 마음먹고 덤벼든 것은 아니었다. 무대에 선 적도 있지만, 배우가 사고가 생겼을 때 대사를 다 외우고 있는 이가 나니까 대신 오른 정도였지. 그러다가 최동훈 감독 영화(‘도둑들’)를 하면서 많이 깨우치게 됐다. 최 감독이 워낙에 리드를 잘 하기도 했지만, 영화 연기라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Q. 연출자로서 연기자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변화가 생겼을 테고.
기국서 : 전에는 이상만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잘 해야 될 것만 생각하고 배우가 어떤 컨디션인지 어떤 정신세계인지는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될 것 같으니까 밀어붙이는 것도 있었고. 막상 내가 연기를 해보니 (배우를 대하는) 방법을 바꿔야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 배우의 연기를 이끌 수 있는 방법이 하나가 더 생긴 것 같다.

 Q. 연기에 새삼 재미를 느낀 순간도 있었을 것 같은데.
기국서 : ‘도둑들’에서도 문득 있었고, 열 장면에 두세 번 정도로. 또 이후에 ‘아부의 왕’이라는 것을 찍었을 때는 어느 순간 ‘이렇게 하는 것이 연기로구나’ 스스로 깨달은 적이 있다. 그 때 처음으로 알았다. 배우로서의 쾌감을. ‘이렇구나’하고 몸으로 알게 됐지.

 Q. 연출가로 숱한 배우들의 연기를 봐왔을 텐데, 자신의 연기를 이토록 길게 마주한 순간은 없었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어떤 평가를 하였는지.
기국서 : 배우는 훈련이 오래 돼야한다. 몸이 이미 배우로 형성돼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게 안 돼 있었다. 얼마나 긴장하고 떨었는지.

Q. 정말? 믿기지 않는다.
기국서 : 그럼요. 적응이 늦었다. 머리로는 이해를 하지만, 실제 그 인물에 몰입되어 연기를 한 경험은 많지 않다. 카메라 울렁증도 있었고,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을 때 머리가 확 비는 순간도 경험했다. 편안하게 몰입해 천연덕스럽게 그 인물이 돼버려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 매번 우황청심환을 먹고 연기를 했다.

'상어'에서 암살자를 연기한 배우 기국서
‘상어’에서 암살자를 연기한 배우 기국서

Q. 그러나 관객의 입장에서는 전작인 영화 ‘도둑들’의 웨이홍 캐릭터가 전하는 존재감도 여전히 생생하다. 당연히 직업 배우라 생각했었는데 아니었기에 놀랐던 기억도 있다. 최동훈 감독의 러브콜을 받은 순간에 대해 들려달라.
기국서 :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다. 최동훈 감독이 어느 날 주진모와 술을 마시러 우리집에 왔다. 그때만 해도 캐스팅 제안을 위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술 마시러 온 거겠구니 했다. 알고 보니 캐스팅을 위해 날 보러 온 거였더라. 최 감독은 웨이홍 역할에 한국관객들에게 낯설게 보이는 얼굴이어야 할 것, 어쩌면 북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고 키가 작을 것 등을 설정해두고 배우를 찾았는데, 주진모 등이 나를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후 내색하지 않고 시나리오를 보내왔다. 그간 (연출자 대 연출자로) 시나리오 검토 해달라는 요청은 종종 들어와 그런 것이겠거니 했는데 캐스팅 제안이었다.

 Q. 연출가는 가둬두려는 존재이지만, 배우는 빠져나가려는 존재이기에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 다른 방향의 에너지를 가진 존재들인 셈인데 사실은 동종업에 있음에도 완전히 다른 존재로 탈바꿈한 것이기도 하다.
기국서 : 일리가 있다. 연출은 자기 틀에 배우를 맞추려 하고, 배우는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게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하다 보니 그런 것은 부질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젊었을 때는 고집도 생긴다. 연출자가 배우에게 어떤 역할을 줬을 때, 연출이 생각하는 그 인물이 돼야만 한다. 일종의 강요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어릴 때의 생각일 뿐 알고 보면 그런 것은 아니다.

 Q. 76극단의 연출가로 오래 활약해왔다. 역사가 유구한 극단이고, 극단 출신 배우들도 굉장하다. 오광록, 성동일 등등. 연기로 뛰어들었을 때, 그분들의 반응은 어땠나.
기국서 : 재미있어 했고 막상 보면서는 불안해서 혼났다고도 하더라(웃음).

Q. 동생(배우 기주봉)의 반응은? 연기에 있어서는 조언을 들어야 하는 입장이었을텐데.
기국서 : 20~30대 같으면 서로 그런(연기) 이야기도 했을 수 있겠지만, 나이가 있고 서로 사정을 잘 아니까 그런가보다 했을 것이다. 별 말 없었다.

 Q. 기주봉의 경우, 중학교 시절부터 연극반 활동을 했었다. 그 시절 동생의 인생에 영향을 미쳤을 텐데 말이다.
기국서 : 오히려 반대다. 막내라 그런지 학교를 좋아하더라. 나는 학교 자체를 싫어했는데. 동생은 여러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성품이다 보니 중학교 때부터 연극반과 웅변을 했다. 고등학교 때도 그러더니 대학도 연극영화과를 가고 아예 배우로서의 길을 걸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 까지 머릿속이 문학으로 가득 찼고, 대학도 국문학과를 갔다. 그러나 주봉이가 항상 나를 (연극으로) 끌어 들였다. 나의 역량을 동생이 받았다고 말하는 이도 있는데 오히려 그 반대다.

 Q. 대화하는 지금 당신은 이토록 온화할 수 없는 존재인데, 홍콩 조직 보스에 킬러라니.  연출가들은 어째서 기국서라는  사람을 배우로 활용하려 할 때, 극도의 차가운 인물을 덧입히려 했을까.
기국서 : 물론 내가 그렇게 까지 냉혹한 사람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나이가 있으니까 상상으로는 얼마든지 냉혹해지거나 무심해질 수 있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Q. 마주앉은 순간에 느껴지는 강한 기운 탓일까.
기국서 : 스스로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둡거나 무거운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본다. 그저 가만히 있는데도 화난 거 있냐고 물어보곤 한다(웃음). 직업이 연출이다 보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Q. 고백하자면, ‘상어’는 영화에 비해 수위가 약했음에도 발을 동동 굴려야 할 정도로 공포스러웠던 순간이 있었다. 물론 최병기 때문이다. 서점 주인일 때도, 암살자 일 때도 표정에 미동이 없었다는 것이 전하는 묘한 공포의 기운이 있었다. 영혼이 없는 사람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랄까.
기국서 : 활짝 웃거나 인상을 많이 찌푸린다거나 하면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거울을 보면서 그렇게도 해봤는데, 상황이 왜곡되고 말더라. 무심하게 무표정한 표정이 캐릭터에 잘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Q. 또 하나 무서웠던 것은, 그의 지극한 평범함이다. 그저 배경으로 머물던 서점주인이 누구보다 끔찍한 비밀을 숨긴 암살자였다. 최병기의 존재를 알고부터는 실생활에서도 조용히 늘 그 자리에 머물던 사람들을 다시 한 번 관찰하게 됐다. 저기 저 사람에겐 어떤 히스토리가 있을까 의문을 품으며.
기국서 : 정말 그랬을 수도 있겠다.

Q. 그러다 최병기의 표정을 처음 목격한 순간이 있었다. 이수(김남길)가 서점에 찾아와 처음 킬러로서의 그를 발견한 순간, 눈 밑이 움찔했다. 처음으로 그에게서 사람의 냄새를 맡게 된 순간이랄까.
기국서 : 그렇게 느꼈나? 하지만 일부러 만들어낸 것은 아니고, 저절로 그 표정이 만들어졌다. 그런 표정을 일부러 만들기는 쉽지 않다. 영화도 그렇지만, TV 드라마도 참 많은 각도에서 다양하게 찍더라. 우연히 포착된 어떤 것을 편집해서 쓰는 것 같다.

Q. 최병기는 ‘상어’에서 굉장히 중요한 캐릭터였다. 박찬홍 PD와 사전에 주고받은 인물의 설정이 있었을 것이다.
기국서 : 베일에 싸인 인물이라는 것. 그리고 특수한 훈련을 받은 인물이기에, 아무리 젊고 강력한 힘을 가진 이들이라도 내 앞에만 서면 서슬에 주눅이 드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더라.

 Q. 인간이 경험하는 최고조의 공포란 무엇일까.
기국서 : 공포영화를 보면, 순간순간 공포스럽지만 결국은 쾌감과 연결된다. 외에 우리가 경험하는 두려움에도 여러 종류가 있고, 그 중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가장 클 것이다. 그것을 극복한 이는 위대하거나 용기가 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Q. 결국 최병기는 죽음을 맞게됐는데, 순간을 어떤 감정으로 연기했나.
기국서 : 형사로 분장한 자객이 내게(최병기) 와서 청산가리를 건넨다. 죽음과 맞닥뜨리는 순간이다. ‘순간 창백해지고 이내 희미한 미소를 짓고 주저 없이 약을 삼키고 헛하는 웃음과 함께 고개를 숙이고 죽는다’가 그 순간을 표현하는 지문이었다. 그 순간 첫째는 이놈이 나를 죽이러 왔구나를 감지하고 공포를 느꼈다. 그러다 어차피 죄를 저질렀고, 사형당할 것이 뻔한만큼 늘 죽음을 예감했으니 서슴없이 택하게 됐다. 여러 가지의 감정이 교차하면서 의연해졌다. 두려워지거나 비굴해지면 나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Q. 늦게나마 당신을 발견하게 된 우리를 위해 연기는 앞으로도 계속할 계획인지.
기국서 : ‘도둑들’이 확실히 기점이 됐고, 점점 그(연기) 세계를 알게 되면서 표현하고 싶어졌다. 누구나 그런 욕망은 있을 테지만. 연출가라는 직업은 그 표현을 영상이나 무대를 통해 걸러서 한다. 그러니 개인이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그런데 연기를 하면서 내가 나 자신을 표현하게 됐다. 앞으로도 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느지막이. 무엇보다 재미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다른 사람이 내 이미지를 보고 썼다면, 나의 생각과 몸을 표현하는 작품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최근에 하기 시작했다.

'상어'에서 암살자를 연기한 배우 기국서

‘상어’에서 암살자를 연기한 배우 기국서

Q. 연극 연출가로서의 근황 및 계획도 들려달라.
기국서 : 11월에 ‘우연의 남자’라는 번역극을 올린다. 또 10여년 때 젊은 사람들과 하는 2인극 페스티벌 행사도 있다. 76극단은 한 때 요란했지만 오르락내리락을 경험하다 최근 3~4년은 방치가 됐다. 재기해야할 때가 왔다.

Q. 연기자로 알려지면서 극단의 부활에도 도움이 되면 좋을텐데.
기국서 : 나의 바람이다.

 Q. 과거에 연극 외에 다른 일을 하지 않는 이유를 말하면서 결핍이 중요하다, 부족해야 용기가 생긴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기국서 : 결핍은 예술 정신의 하나의 조건이다. 예술 하는 사람들은 그래야만 혼이 산다. 배고파야 눈이 빛나듯. 결핍이라는 것은 경제적 결핍도 결핍이지만 계속해서 갈망하는 것도 결핍이다. 어느 날 밤 11시 주머니에 토큰 한 개가 있다. 갑자기 화가 퍽 났다. 토큰을 버리고 집까지 두 시간 반을 걸어갔다. 그런 것이다. 없어서 화가 나고 화가 나니 용맹해지는.

Q. 충족이 궁극의 목표가 될 수 없다는 말로 들린다. 결핍한 상태가 결국은 에너지의 근원이 된다는 그런…
기국서 : 충족의 다음이 행복은 아니다. 행복은 잠깐이고 이내 나빠진다. 쾌락을 쫓게 된다. 어쩔 수 없다. 사람이 그렇다. 지금은 자본주의가 이를테면 신이 됐다. 세계적으로 그런 풍조다. 물질을 자본을 쫓는 것을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지만, 과연 그것뿐이겠냐는 의문은 든다. 그것을 생각해야하는데 사람들이 그런 생각은 잘 안한다. 내가 근사하게 이야기는 했지만, 요즘의 시대를 보는 내 생각이 그러하다.

 Q. 참, 김남길과 손예진은 후배로서 어땠나.
기국서 : 김남길 씨는 호흡이 좋더라. 얼굴이 미남이라거나, 눈빛이 좋다던가 하는 것은 두 번째다. 호흡이 좋았다.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손예진 씨야 누구나 알다시피. 나이든 나도 손예진 씨를 가깝게 옆자리에서 이야기하니 설레더라(웃음). 20대처럼 확 그런 느낌이 있더라. 화면에서만 보다 실제로 보니까. 여담입니다만, 길에 미인들이 많지만 그렇다고 가슴이 설레지는 않는데 손예진 씨는 상대를 설레게 하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더라. 배우로서의 매력일 테지.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an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