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인칭 관찰자 시점] ‘친애하는 우리 아이’, 서로의 마음을 기웃거리다

[텐아시아=박미영 작가]

영화 ‘친애하는 우리 아이’ 스틸컷

고교 시절, 남루한 영어 실력에도 지구촌의 누군가와 친구가 되고 싶은 꿈에 부풀었다. 그래서 종로에 있는 펜팔협회를 찾아갔다. 신청서와 함께 소액을 지불하고, 네덜란드 소녀의 주소지를 하나 받았다. 종로서적에 들러서 펜팔 책자도 한 권 샀다.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는 편지 왕래에도 나의 영어는 도통 늘지 않았다. 책자의 영어 문장에 업혀서 쓰는 편지글은 솔직하지도 담백하지도 못했다. 결국 심드렁해져서 더 이상 편지를 쓰지 않았다.

‘친애하는 우리 아이’의 외국어 제목인 ‘Dear Etranger’를 보니 추억 속 그녀, 아니 소녀가 떠올랐다. 편지 첫머리에 ‘To’가 아닌 ‘Dear’라는 단어를 쓴 유일한 상대이지 싶다. 나의 턱없이 모자란 영어 실력으로 끝끝내 ‘Etranger’ 즉 이방인으로 남았던 그 네덜란드 소녀가 말이다.

타나카(아사노 타다노부)는 일 년에 나흘만 전처 유카(테라지마 시노부)가 키우는 딸 사오리(카마타 라이쥬)를 만나서 애틋한 부녀의 정을 나눈다. 그는 속깊은 사오리에게 엄마와 새아빠 사이에 동생이 생기면 어떠냐는 질문을 던진다. 사오리는 혹여 자신이 필요 없는 아이가 될까 멈칫하지만, 새아빠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이내 부정한다. 사실 타나카의 질문에는 말 못할 속내가 있다.

타나카는 나나에(다나카 레나)와 재혼하여 그녀의 딸인 카오루(미나미 사라)와 에리코(아라이 미우)의 아빠로 살고 있다. 그런데 나나에가 그의 아이를 임신한다. 그는 자신도 새 식구인데, 새로운 아이까지 더할 필요가 있을지 고민이 많아진다. 한편 그를 친아빠로 아는 에리코는 동생의 존재가 달갑지만, 카오루는 충격을 받는다. 카오루는 타나카를 아빠의 자리에서 밀어내면서, 자신의 친부를 만나고 싶다고 요구한다.

‘친애하는 우리 아이’는 시게마츠 기요시의 소설 ‘어린아이 우리에게 태어나(幼な子われらに生まれ)’를 원작으로 한다. 미시마 유키코 감독은 소설의 울림을 스크린으로 농농하게 담아냈다. 흔히 아이 같은 어른이나 어른 같은 아이를 애어른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작품은 가족 영화의 단골 캐릭터인 애어른이 등장하지 않는다. 타나카의 시선으로 인물과 사건을 담아내지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어른과 아이 모두를 어루만지는 작품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환상의 빛’에서 앳된 얼굴의 청년이던 아사노 타다노부는 이제 중년의 주름진 얼굴이 되었다. ‘친애하는 우리 아이’에서 그가 맡은 타나카는 단추를 끝까지 채운 채 옷을 입는 참 반듯한 남자다. 항상 재잘거리는 아내 나나에와 달리 말수도 적다. 그래서 그의 표정은 이따금씩 대사로 들리기도 한다. 오랜만에 그의 연기를 머금게 되었다. 전보다 더 농밀해진 연기를.

사실 타나카에겐 가족이 제일 중요하다. 대기업에 다니는 사원이지만 전혀 야망이 없다. 그래서 술자리는 일차로 끝이고, 휴일 근무는 사양하고, 퇴근하기 무섭게 역 앞 장난감 가게나 케이크 가게로 달려간다. 상사에게 창고에서 일하는 파견직으로 통보를 받는 순간에도, 월급이 같다면 뭘 하든 똑같다고 답한다. 자식은 일하는 부모의 등을 보며 자란다는 상사의 충고에 그는 지금이 아니면 함께 해줄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

카오루는 친딸 사오리와 같은 나이인 초등학교 6학년이다. 새아빠와 엄마 사이에 동생이 생긴 소식을 들은 이후, 잠을 못 이루고 유독 타나카에게 톡톡거린다. 그에게 꼭 아빠처럼 군다고, 아빠도 아니라고, 이 집이 싫다며 다 거짓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리고 동생 에리코에게 진심을 털어놓는다. 아기가 태어나면 우리는 버림받을 거라고.

타나카는 카오루가 내뱉는 말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몇 년 전, 그가 재혼을 결심하게 만든 것은 카오루, 더 정확히는 카오루의 미소였다. 나나에는 에리코를 안고, 타나카는 잠이 든 카오루를 업고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나나에는 친부의 폭력을 겪었던 카오루가 성인 남자 심지어는 외조부도 멀리 하는데, 오늘 처음으로 당신과 함께하며 웃는 모습을 봤다고 눈물까지 글썽거린다. 타나카는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며 청혼을 한다. 그녀는 뜨거운 진심을 담아 답을 한다. “고맙습니다.”

서로에게 이방인이었던 이들이 한 가족으로 살게 되었다. 그래서 서로의 마음을 끊임없이 기웃거린다. 이 작품의 인트로였던 놀이동산에서 아빠를 찾는 여러 가족의 목소리처럼 결국 지금 곁에서 손을 잡아줄, 내어줄 이가 바로 가족이 아닌가 싶다.

11월 1일 개봉. 15세 관람가.

박미영 작가 stratus@tenasia.co.kr

[박미영 영화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한 작가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진위의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텐아시아에서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