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리뷰]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진 시간을 사뿐히 즈려밟고

[텐아시아=박미영 기자]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포스터

전직 시인 윤영(박해일)은 돌싱이 된 선배의 아내인 송현(문소리)과 군산으로 불쑥 떠난다. 아리따운 칼국수집 사장(문숙)은 숙소를 구하는 그들에게 사람을 가려 받는 민박집을 하나 소개한다. 윤영은 호기심이 동한 송현에게 이끌려 그곳을 찾아간다. 재일교포인 이 사장(정진영)이 죽은 아내의 고향인 군산으로 와서 운영하는 일본풍 가옥의 민박집이다. 자폐증인 그의 딸 주은(박소담)이 윤영과 송현을 손님으로 허락한다.

마치 아이처럼 표현의 여과가 없는 윤영은 송현을 대놓고 흠모하지만, 남편의 불륜으로 아프게 이혼한 송현은 묵묵한 이 사장에게 끌린다. 그리고 이 사장의 딸 주은은 윤영을 자꾸 훔쳐보게 된다.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스틸컷

장률 감독은 ‘춘몽’ 이후 2년 만에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로 돌아왔다. 그의 작품에는 유독 지명이 제목인 경우가 많다. ‘중경’ ‘이리’ ‘두만강’ ‘경주’에다 현재 후반작업 중인 ‘후쿠오카’까지. 이번에 그의 선택지는 과거가 남아있는 도시 ‘군산’이다.

‘군산’에는 ‘거위를 노래하다’라는 중국의 옛시 ‘영아(咏鵝)’가 곁들여졌다. 윤영의 죽은 어머니나 송현이 윤영을 부르는 호칭이 ‘영아’이기도 하고, 윤영의 집 마당에서 거위를 키우고, 중국집에서 술에 취한 윤영이 옛시 ‘영아’를 읊으며 거위춤을 추는 등 제목은 영화 곳곳에서 불쑥 얼굴을 내민다. 또한 다른 영화와 달리 러닝타임이 중반쯤 흘렀을 무렵에야 영화 타이틀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가 뜬다. 책갈피를 꽂아둔 페이지를 펼치듯. 그리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과거와 이어진 시간을 즈려밟게 된다.

‘조선족’으로도 표현되는 재중 동포 출신인 장률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국적과 정체성, 역사관을 일상의 서사에 녹아냈다. 특히 윤동주 시인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지 않고 연변에서 계속 살았더라면 조선족이었을 거라는 대목은 예리하게 다가왔다. 꿈과 현실이 나른하게 얽힌 그의 작품에서 말맛을 살리는 배우들의 연기는 관객을 끌어당긴다. 이 작품으로 첫 호흡을 맞춘 박해일과 문소리의 무르익은 연기가 그러했다.

이 영화를 보는 동안에 몇몇 단어들이 방울방울 맺힌다. 관객도 시를 쓰게 만드는 놀라운 작품이다.

11월 8일 개봉. 15세 관람가.

박미영 기자 stratus@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