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인칭 관찰자 시점] ‘몬스터 콜’, 비를 맞듯 눈물을 맞다

[텐아시아=박미영 작가]

영화 ‘몬스터 콜’ 스틸컷

툭, 책을 찾던 헛손질에 리모콘이 눌렸다. TV 화면 가득 금세라도 눈물이 투둑 떨어질 듯한 소년의 얼굴이 들어찼다. 케이블 방송에서 ‘몬스터 콜’이 방영되고 있었다. 수차례 봤던 영화이고, 영화가 시작한 지 한참 지난 무렵이었다. 평소라면 리모콘의 전원을 껐으련만, 결국 나는 볼륨 버튼을 꾹꾹 올리고야 말았다.

꿈을 꾼다. 어린 시절부터 불혹을 넘긴 지금도 여전하다. 드물게는 꿈에서 요정으로도 등장하니 웬만한 어린이와 비견해도 꿀리지 않는 꿈 세계다. 한참 자라야 할 성장기의 잠을 찬란한 꿈으로 소진한 덕택에, 키가 큰 어린이에게 꿀리는 아담한 키의 어른으로 성장한 듯싶다.

나의 꿈을 현실처럼 리얼하게 세팅하는 장치는 촉각이다. 현실에서는 시각이나 청각의 그림자로 기능하던 촉각이 꿈에서는 오롯이, 아니 갑절로 제 역할을 한다. 하늘을 날면, 눈 아래로 펼쳐지는 풍경보다 옆으로 부드럽게 밀리는 공기가 더 와 닿는다. 그래서 꿈인지 생시인지 가늠하는 꼬집기도 별 효과가 없다. 꼬집으면 살짝 아프기도 해서 생시 같은 꿈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렇게 촉각은 꿈과 현실의 경계를 지운다. 이 영화의 주인공 코너 오말리에게 그 장치는 바로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몬스터 콜’이다.

코너(루이스 맥더겔)는 매일 밤 몸서리치는 악몽을 꾸다가 아침을 맞이한다. 시한부 삶인 엄마(펠리시티 존스)를 온 마음으로 붙들고 학교에 가면 친구들의 주먹 세례가 쏟아진다. 악몽과 별반 차이가 없는 현실 역시 소년을 집어삼킬 기세다. 어느 날, 코너 앞에 주목의 모습을 한 몬스터(리암 니슨)가 나타나서 세 가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꿈처럼 환상처럼 여겨지던 몬스터와의 시간이 흘러넘쳐서 현실로 스며든다. 소년에게 경계 너머의 진실과 마주할 순간이 도래한다.

영화의 원작인 ‘몬스터 콜스’는 암으로 세상을 떠난 시본 도우드의 미완성 유작을 패트릭 네스가 완성시킨 작품이다. 그래서 보통 책머리에 들어가는 ‘작가의 말’이 ‘작가들의 말’로 시작한다. 녹록치 않은 작업을 해낸 패트릭 네스는 마치 이어달리기에서 바통을 건네받은 기분이라고 했다.

다음으로 그 바통을 건네받은 사람은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이다. 그는 원작을 읽으며 줄을 그었을 법한 문장들을 화면 속 대사로 옮겨서 관객의 심장에 새긴다. 또한 판타지 장르이지만 스펙터클한 풍경보다 그 풍경의 한복판에 있는 인물의 감정을 무게중심으로 둔다. 그래서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진 외할머니의 거실 박살 신과 학교 식당 응징 신에서 통쾌함보다 애틋함이 감돈다.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는 이 작품에서 관계의 밀도와 감정의 농도에 집중한다.

마지막 주자는 배우들이다. 루이스 맥더겔은 혹독한 성장기를 감내하는 소년 코너를 구현했고, 리암 니슨은 몬스터의 목소리 연기만으로도 존재감을 뿜었다. 그리고 펠리시티 존스는 시한부 엄마의 아픔과 슬픔을 농밀하게 그려냈다.

지난해 극장에서 ‘몬스터 콜’을 봤지만 다시 보아도 여전히 절절했다. 스크린이라는 거대한 경계 너머로, 브라운관이라는 밀접한 경계 너머로 한 소년과 마주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소년의 아픔은 어느 한 대목 눈물 없이 지나칠 수 없었다. 그저 비를 맞듯 눈물을 맞을 따름이었다.

박미영 작가 stratus@tenasia.co.kr

[박미영 영화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한 작가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진위의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텐아시아에서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