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인터뷰] 이정은, 현실 연기 강자로 등극하기까지

[텐아시아=김수경 기자]

tvN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아는 와이프’에 출연한 배우 이정은. / 사진제공=윌엔터테인먼트

“‘미스터 션샤인’ 촬영 전 다큐멘터리 ‘다시 태어나도 우리’(2017)를 봤어요. 열반한 고승이 환생했다는 아홉 살짜리 린포체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한 스승의 이야기라, 영감을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아는 와이프’ 종영 이후에는 요즘 며느리의 관점에서 고부갈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생각해 보려고 하고 있어요.”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과 ‘아는 와이프’에서 각각 고애신(김태리)의 든든한 유모 함안댁과 서우진(한지민)의 친모 역을 맡았던 배우 이정은의 말이다. 이정은은 두 작품에서 모두 주어진 것 이상을 해냈다. 맡은 캐릭터를 생동감있게 구현했을 뿐만 아니라 현실 연기로 극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8일 서울 강남구 학동로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보니 이유를 알 만했다. 그는 시대와 쉼없이 호흡하는 배우였다.

이정은은 1991년 연극 ‘한여름밤의 꿈’으로 데뷔했다. 이후 연극과 뮤지컬에서 주로 활동했고, 2013년 드라마 ‘시트콩 로얄빌라’와 영화 ‘전국노래자랑’으로 처음 TV 및 스크린에 얼굴을 비췄다. 그는 “(연극을 할 당시만 해도) 방송을 할 것이라고는 꿈도 못 꿨다. ‘이 얼굴로는 연극이나 열심히 하라는 말을 들었다’”며 웃었다.

“영화 ‘와니와 준하'(2001)를 찍는데 평소보다 카메라 크기도, 스크린도 커서 카메라 울렁증이 왔었어요. 지금은 카메라가 굉장히 친근하지만, 당시엔 울렁증 때문에 영상 매체는 못 할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결국 많이 해보는 것이 방법이더라고요. 울렁증 겪는 후배들한테도 저처럼 극복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울렁증을 극복한 후 이정은의 활약은 눈부셨다. ‘오 나의 귀신님’부터 ‘송곳’ ‘리멤버-아들의 전쟁’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역도요정 김복주’ ‘도둑놈, 도둑님’ ‘쌈, 마이웨이’ ‘미스터 션샤인’ ‘아는 와이프’까지···.  현실 연기의 달인으로서 전방위적 활약을 펼쳤다. 주연이 아닌데도 이정은을 보려고 드라마를 보는 팬들도 늘어나면서 ‘함블리’ ‘먹방 요정’  등의 별명이 생겼을 정도다. 이정은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뜨거운 반응에 대해 “너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며 “드라마 촬영 중엔 작품의 흥행이나 내 연기의 방향에 대해 끝까지 의심이 된다. 종영 후에 흥행과 반응을 알게 된다”고 했다.

“’함블리’라는 별명에 깜짝 놀랐어요. 인기가 엄청 많을 때나 그런 애칭이 붙는 것 아니었던가요?(웃음) 귀엽고 마음에 듭니다. ‘미스터 션샤인’ 속 먹는 장면에서는 보는 사람이 나를 통해 새로운 맛을 경험하는 듯한 느낌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오 나의 귀신님’과 ‘내일 그대와’에서도 먹는 신이 많아서 그때 단련된 것 같기도 하고요. 하하.”

‘미스터 션샤인’의 몇몇 장면을 떠올릴 때는 “눈물이 나올 것 같다”며 조용히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 중 하나가 함안댁의 마지막 장면. 고애신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두는 신이었다.

“행랑 아범(신정근)과 오랜 시간을 같이 견디고 묘한 동질감을 가진 채 죽음을 맞게 되니까 나중에는 ‘내가 진짜 행랑아범을 좋아하나?’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행랑 아범은 눈만 봐도 애정이 느껴질 정도여서, 무심한 척 하는 것이 힘들었거든요.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 태리 씨랑 많이 울었어요. 처음에는 눈물도 주체 못할 정도로요. 죽기 싫었나 봅니다.(웃음)”

‘미스터 션샤인’에서 이정은의 사투리 연기도 탁월했다. 그러나 이정은은 서울 출신이다. 사투리 연기에 대해 묻자 “진주 출신의 보조 작가님들이 대본에 고어들을 잘 써주셨다. 또한 사투리 선생님을 발로 찾았는데 연극계 후배다”라고 밝혔다.

“함경도 사투리가 서울 배우들한테는 힘들 수 있어요. 그래서 직접 현재 연극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후배 최민경을 선생님으로 모셨습니다. 대본이 나올 때마다 같이 사투리를 체크해가면서 연기를 했어요.”

드라마부터 연극, 영화, 뮤지컬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활약해 온 이정은. / 사진제공=윌엔터테인먼트

이정은은 “작품에 몰입해있을 때가 전성기인 것 같다”고 했다.

“제가 무언가에 올인할 때 희열을 느껴요. 최근 한창 공연을 하다가 몸이 아팠어요. 그러다 작년에 일본에서 영화 ‘야키니쿠 드래곤’을 촬영했어요. 인기를 떠나서 작품에 온전히 몰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일본의 톱 배우들이 출연했는데 굉장히 겸손하게 작업에 임하시더라고요. 많이 배웠고, 일하는 재미를 다시 느꼈어요. 앞으로도 작은 역할이든, 큰 역할이든 즐겁게 하고 싶어요.”

이정은은 유난히 작품에서 어머니 역할을 많이 맡았다. 미혼인 그는 “자식들이 점점 많아진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제는 가족에 대한 의미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생물학적 직계 가족만이 가족이었지만 현대사회에는 가족의 의미가 넓어진 것 같아요. 저조차도 작품을 할 때마다 가족을 얻는 느낌이 듭니다.”

이정은에게도 롤모델이 있다. 지난 9월 작고한 일본 배우 키키 키린이다. 그는 “키키 키린이 노후에 끼쳤던 영향이 정말 대단하다”며 “너무 출중해서 그만큼 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는 결국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는 배우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저는 88 운동권 세대이면서 과도기의 세대에요. 예전에는 사랑이나 애정이 관심사였다면 이제는 아이나 노인 문제에 관심이 많아요. 조국, 국가란 단어도 새삼스럽고요. 제가 제 역할을 열심히 해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사람들이 한번이라도 더 생각할 수 있고, 그렇게 긍정적인 힘을 끼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미스터 션샤인’의 그 시대의 이야기와 아픔 같은 것을 새롭게 상기시킨 것처럼요.”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