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리뷰] ‘체실 비치에서’, 그들의 표정이 한 줄의 문장이 된다

[텐아시아=박미영 기자]

영화 ‘체실 비치에서’ 포스터

이제 갓 결혼식을 마친 그와 그녀. 현악 사중주단의 바이올리니스트 플로렌스(시얼샤 로넌)와 역사학과 대학원생 에드워드(빌리 하울)다. ‘체실 비치’로 신혼여행을 온 그들은 아직 부부보다는 연인에 더 가깝다. 눈빛과 표정, 손길 하나하나에도 팽팽한 긴장이 감돈다. 호텔 룸이라는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생각을 하며 서로를 마주한다. 그들에게 가장 행복해야 할 시간이 금세 부서질 듯한 순간으로 돌변하며 찾아든다.

플로렌스는 크루아상과 바게트의 차이를 모르고, 짝짝이 양말에 몽당연필을 들고 다니는 에드워드가 그저 사랑스럽다. 에드워드는 서양 문명을 통틀어 가장 고지식한 음악 취향의 플로렌스가 그저 사랑스럽다. 사실 그들에게는 해묵은 상흔이 있다. 플로렌스는 오래 전 아버지와 단 둘이 떠난 여행에서 겪은 일로 삶이 경직되어 있고, 에드워드는 사고로 뇌 손상을 입은 어머니의 존재로 일상이 음울하다. 서로에 대한 사랑을 믿고 결혼에 이르건만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다.

영화 ‘체실 비치에서’ 스틸컷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번 작품은 원작자인 이언 매큐언이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 동시대 최고의 작가로 꼽히는 그가 ‘어톤먼트(2007)’와 달리 각본에 직접 참여했기 때문에 더욱 기대를 모았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체실 비치에서’는 ‘1962년-1975년-2007년’으로 그들의 청춘부터 중년, 노년까지 담아낸다.

원작에서 상상으로 그렸던 체실 비치를 스크린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체실 비치의 시각적 이미지에 배우들이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촉각이 더해져서 공감각적 이미지로 다가온다. 소설과 영화의 큰 골격은 같다. 차이점이 있다면 ‘C열 9번 좌석’이라는 마침표다. 원작에서는 다시 만나지 않았지만, 영화에서는 연애 시절 약속했던 좌석에서 노년의 에드워드가 역시 노년인 플로렌스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며 지난날을 아파한다. 소설의 여운이 각별했던 독자에게는 아쉬운 결말일 수도 있다.

문학작품에는 ‘그’와 ‘그녀’가 숱하게 있다. 그들이 스크린으로 소환되면, 독자였던 이들이 관객으로 넘어가면서 환희에 젖기도 하고 절망에 젖기도 한다. 시얼샤 로넌과 빌리 하울, 젊지만 총명한 두 배우는 그와 그녀를 사려 깊게 표현했다. 스크린에서 마치 책장이 넘어가는 기분이다. 때로는 그들의 표정이 한 줄의 문장이 되기도 한다.

9월 20일 개봉. 15세 관람가.

박미영 기자 stratus@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