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인터뷰] ‘명당’ 지성 “나는 노력형…아직도 진화 중”

[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영화 ‘명당’에서 흥선 이하응을 연기한 배우 지성./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가 부족해요.” 지성은 몇 번이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최근 개봉한 영화 ‘명당’에서 흥선 이하응의 젊은 시절 모습을 연기했다. 왕좌를 뺏겠다는 사욕과 나라를 제 손으로 구하겠다는 대의 사이에 있는 흥선. 지성은 욕망 속에 점점 광기를 드러내는 흥선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좋았다’는 칭찬에도 지성은 “나는 타고 나지 않은 후천적 노력형”이라며 “20년을 그래왔고 지금도 계속 진화하는 중”이라고 겸손했다. ‘자신을 낮추는 게 몸에 밴 것 같다’고 하자 이번에도 “낮추는 게 아니라 정말 부족한 것”이라고 답했다. 연기를 막 시작했을 때는 지적도 많이 당했지만 그저 이 일이 좋아서 하고 싶었단다. 요즘은 “아내와 아이로 인해 느끼는 행복과 유쾌함을 사람들에게 연기로 전하며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도 했다. 최근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지성을 만났다.

10. 영화 속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를 뽑는다면?
지성: 역시 흥선이 제일 좋습니다.(웃음)

10. 흥선대원군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다뤄진 적은 많이 없었잖아요. ‘명당’의 흥선은 어떻게 표현하려고 했나요?
지성: 기본적으로 흥선과 관련된 자료를 토대로 했습니다. ‘상갓집 개’ 생활을 하며 목숨을 부지했다고 들었어요. 영화에서는 나이가 좀 있는 걸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그 시기가 흥선이 10대 후반~20대 후반이었대요. 이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왔을지 추론하면서, 그가 갖고 있었을 열등감, 부족감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10. 그래도 흥선군에 대한 후대의 평가를 완전히 배제할 순 없었을 것 같아요.
지성: 흥선대원군에 대한 역사적 해석은 분분하죠. 하지만 캐릭터를 만들 때 그런 평가에 방해 받고 싶진 않았습니다. 흥선이 악인이든 선인이든 그건 중요치 않았어요. 중요했던 건 그가 생각했던 정의, 그가 가졌을 명분이에요. 세도정치가 만연했던 시절, 살아남으려했던 왕족의 의지가 무엇이었을지 고민했습니다. 흥선은 왕족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행동과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한 생각이 분명했을 거예요. 아마도 ‘살아남아서 올바른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아니었을까요? 리더십도 있었겠죠. ‘천하장안’이라 불리는 시정의 무뢰한 무리가 흥선을 따랐다고 하더라고요. 뭔가 결핍된 것이 있는 사람들 속에서 ‘대장’ 역할을 했을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흥선은 포용의 리더십을 가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성은 “타고난 재능이 없는 후천적 노력형”이라며 자신을 낮췄다./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10.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요?
지성: 다른 장면보다 먼저 찍었으면 좋았을 장면은 있어요. 김좌근(백윤식 분) 앞에서 마당에 떨어진 전을 입으로 받아먹는 장면이요. 영화의 앞부분에 나오지만 후반에 찍었어요. 예상은 했지만 연기할 때 기분이 안 좋더라고요. ‘이게 흥선의 현실이었겠구나’를 뒤늦게 느꼈죠. 다시 촬영한다면 가장 먼저 찍자고 할 장면이에요.

10. ‘명당’에서 감정의 진폭이 가장 큰 캐릭터라고 할 수 있잖아요. 캐릭터 연기할 때마다 에너지를 쏟아 붓고 나면 힘들지 않나요?
지성: 저는 연기가 진심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다 버리고 몰입하는 스타일이에요. 만약 살인자 역할을 하게 됐다면 제가 변할까봐 두렵기도 해요. 작품에 따라서는 편안하게 내려놓고 할 줄도 알아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게 감정을 쏟아내도 가족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혼자는 견디기 힘들지만 아내와 아이가 있어서 금세 다 털어낼 수 있어요.

10. 가족 이야기를 하니 얼굴에 ‘행복’이 피어나네요. 결혼 후 개인적으로든 연기로든 변화를 겪었나요?
지성: 연애시절부터 아내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많이 배우기도 했죠. 아내는 저를 듬직한 남자로 만들어준 사람입니다.

10.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지성: 살아오면서 겪었던 힘든 가정사, 또 그걸 해결하려 노력했던 젊은 시절…그 시간들을 한탄하기도 했어요. 아내는 그런 것들의 무게감을 덜어줬어요. 저는 가정에 어려운 일이 있었을 때 저보다 부모님과 동생을 먼저 생각했어요. 어려서부터 성격이 그랬기 때문에 늘 더 힘든 건 저였어요. 아내를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면서 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됐어요. 한 번은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아내에게 ‘고맙다’고 말했죠.

지성은 자식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10. 최근 드라마 ‘아는 와이프’도 끝났잖아요. 아내가 바뀐다는 설정이었죠. 거기서도 감정의 진폭이 컸잖아요.
지성: 시트콤처럼 유쾌하게 시작해서 유쾌하게 끝날 줄 알았어요. 막상 연기해보니 너무나 가슴 아프더라고요. 저는 아내를 바꾼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 감정의 끝이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습니다.

10. 그 동안 영화보다 드라마를 많이 했잖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지성: 의도한 건 아니에요. 드라마를 하다 보니 드라마 제안이 많이 들어온 것이고, 마음이 가는 영화의 제안이 와도 출연을 약속한 드라마가 있어서 못한 상황도 있었어요. ‘명당’은 어떻게든 했으면 좋겠다 싶어서 드라마를 거절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작품을 하면서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해가는 노력형이기 때문에 좋은 작품을 만나고 싶고 영화도 많이 하고 싶은데,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하는 순간이 어려워요. 올바른 선택이 뭔지도 잘 모르겠고요.

10. 그렇지만 지난해 드라마 ‘피고인’으로 연기대상도 받으셨잖아요. 타고난 재능도 있지 않을까요?
지성: 제가 연기를 너무나 잘해서, 혹은 상업적으로 작품을 성공시켜서, 그런 이유가 아니라 ‘이번에 제일 잘 한 것 같다’고 박수 받을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제가 된 것뿐이에요. 그저 감사한 일이죠. 대상의 순간 부족한 제 이름이 불리면 어쩌나 싶기도 했죠. 저는 타고 나지 않은 후천적 노력형이에요. 20년을 그래왔고 지금도 계속 진화하는 중입니다. 부족한 부분도 많고, 그래서 작품을 즐기지 못하고 공부하는 쪽인 것 같아요.

10. 이번 영화에서는 부드러운 이미지와 반전되는 강렬함이 의외라서 더 멋졌어요. 앞으로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됩니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요?
지성: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뭉클하네요. 익숙해졌다고도 할 수 있는 배우 생활이지만 여전히 어려워요. 책임감을 갖자니 끝도 없고, 즐기자니 뭘 즐겨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지금도 두렵고 이 일도 어떻게 해왔는지 모르겠어요. 부족한 저이지만 진심으로 하고 싶어요. 관객들과 공감하고 같이 호흡하며 평생 이 일을 하고 싶어요. 단지 지금은 제 자식이 봤을 때 ‘우리 아빠, 와!’하고 엄지를 치켜세울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