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인터뷰] ‘협상’ 손예진 “캐릭터를 고민하는 시간…괴롭지만은 않았어요”

[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영화 ‘협상’에서 서울경찰청 소속 협상가 하채윤을 연기한 배우 손예진.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촬영하는 한 달 반 동안 머리를 계속 다듬어야 했습니다. 머리가 빨리 자라는 편이거든요.” 손예진은 반달 모양의 예쁜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는 최근 개봉한 영화 ‘협상’ 촬영 당시 협상가 하채윤을 표현하기 위해 긴 머리를 싹둑 잘랐다. 영화에선 욕설도 내뱉는다. ‘멜로퀸이 저래도 되나?’ 싶어보는 이가 오히려 걱정이 된다. 그 만큼 색다른 모습이다. 손예진은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갈망은 항상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배우가 고민하는 시간이 길수록 관객들이 보는 모습은 더 풍성해진다”고도 했다. 자신의 욕심도, 대중의 기대도 소홀히 하지 않는 ‘대체 불가 배우’ 손예진.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손예진을 만났다.

10. ‘협상’의 어떤 점에 끌렸나요?
손예진: 제한된 공간, 제한된 시간 안에 벌어지는 이야기의 긴박함이 좋았어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나타나는 순간순간의 긴장감이 재밌고 흥미로웠습니다.

10. 하채윤이라는 캐릭터를 만들 때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손예진: 채윤이 협상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게 되는 사건이 있잖아요. 협상가로서 채윤은 냉정해야하지만 그도 감정이 있는 인간이죠. 처음 시나리오에서 채윤은 협상가라는 직업인으로서 이미지가 컸어요. 하지만 무조건 정의만 외치는 식의 캐릭터는 매력이 없잖아요. 좀 더 입체적이고 공감 가는 캐릭터를 만들어보려 했습니다. 뜨거운 인간애를 가진 협상가로요.

10. 실제로 협상가들을 만나보기도 했나요?
손예진: 저는 만나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 분들을 만난 감독님에게 이야기를 들었어요. 협상가들은 경찰 측에 서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인질범과 훨씬 더 가깝대요. 인질범의 내면을 자꾸 들여다보게 되면 그들을 이해하게 되고, 원하는 것을 들어주게 된다는 거죠. 그렇게 협상이 이뤄지는 것이고요.

10. 냉정과 온정을 오가는 협상가를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손예진: 협상가는 인질범 앞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되잖아요. 나약한 모습을 보였을 때 인질범은 협상가의 능력을 의심하게 되죠. 자신이 원하는 걸 해결해줄 거라는 믿음이 없어지는 거예요. 민태구(현빈)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물이고, 끝까지 정신줄을 놓지 않아야 하는 건 채윤이죠. 인질범에게 ‘너의 어떤 이야기도 다 들어주겠다’는 모습과 ‘네가 어떤 행동을 해도 널 통제할 수 있다’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게 어려웠습니다.

10. 협상가 역을 위해 머리도 단발로 자른 거죠?
손예진: 긴머리를 하고 경찰 제복을 입는 모습을 상상해 봤어요. 머리를 단정히 묶거나 망으로 씌운 모습을 생각해봤지만 캐릭터의 외형이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아무도 자르라고 하진 않았지만 (머리를 자르지 않으면) 답이 안 나오겠다 싶었죠. 외형적인 변화가 주는 영향이 크니까요. 영화 속 이야기는 12시간 동안 벌어지는 것이라 촬영하는 한 달 반 동안 머리를 계속 다듬어야 했습니다. 머리가 빨리 자라는 편이거든요.(웃음) 덕분에 ‘협상’ 다음으로 촬영했던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는 머리를 붙이고 찍었죠.

손예진은 ‘뜨거운 인간애’를 가진 협상가를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10. ‘이원촬영’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제작됐잖아요. 처음부터 그런 방식으로 촬영한다고 결정됐던 건가요?
손예진: 의논을 하는 과정에서 정해졌어요. 제작팀에서도 해보지 않은 기법이기 때문에 걱정이 많았겠죠. 저도 앞이 캄캄했어요. 모니터로 보이는 모습에서 실제 목소리의 떨림이나 눈빛의 미묘한 변화가 다 느껴지진 않으니까요. 그런 가운데 극도의 긴장감을 촬영 내내 유지해야 하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10. 생소한 환경에 다른 때보다 예민했을 것 같네요.
손예진: 그랬어요. 세트장 들어가는 게 싫어지기도 했다니까요. 몸도 쓰면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데 앉아서 얼굴로만 연기하는 거잖아요. 너무 답답했습니다. ‘이곳은 감옥이다. 촬영이 다 끝나야지만 여기를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리적 압박이 심했죠. 세트장에서 나올 수 있는 점심시간이 그 압박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어요.(웃음)

10. 그 만큼 힘든 촬영이었기에 보람도 크지 않았나요?
손예진: 배우가 고민하는 시간이 길수록 관객들이 보는 모습은 더 풍성해져요. 전 힘들어도 스스로를 더 힘들게 하는 스타일이에요.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도 고민의 시간을 겪었지만, 그 시간이 괴롭지만은 않았습니다. 저도 지치는 순간이 있었지만 새로운 기법으로 촬영했다는 것, 또 새로운 소재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선보였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꼈어요.

10. 동갑내기 배우 현빈 씨와 하는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네요. 어땠나요?
손예진: 촬영하면서도, 큰 스크린으로 봤을 때도 현빈 씨가 대사 하나, 동작 하나 많이 고민했다는 걸 느꼈어요. 시나리오 속 태구는 악랄한 느낌이 강했는데 현빈 씨가 훨씬 다채롭게 만들었어요. 태구에게서 의외성을 느끼게 한 점도 매력적이었습니다. 영화를 본 후에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 중에서 제일 좋았다’고 현빈 씨에게 말했어요.

손예진은 이전과 다른 캐릭터를 할 때 자신도, 관객들도 더 큰 재미를 느낀다고 했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10.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 이어 올해만 세 번째 작품이에요. 꾸준히 ‘열일’하는 배우인 것 같아요.
손예진: 공교롭게도 올해만 세 작품을 보여드리게 됐는데, ‘쟤 또 나와? 지겹다’ 이럴까봐 무서운 거예요. 그래도 각 캐릭터가 다 달라서 다행입니다. 변신하려 한다기보다 다른 캐릭터를 하는 게 좋아요. 어떻게 보면 겁이 없는 거죠.(웃음)

10. 그 중에서도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캐릭터를 꼽는다면?
손예진: 많은 분들이 멜로 속 제 모습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는 있어요. 액션도 하고 스릴러도 했지만 그럼에도 멜로 속 저를 더 기억해주신다는 것도요. 저도 은연 중에 그런 걸 염두에 둘지 모르죠. 하지만 ‘나는 멜로가 잘 어울리니까’라고 생각하며 연기하진 않아요.

10. 쉬지 않고 끊임없이 활동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손예진: 제가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죠. 관객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만은 아니에요. 하지만 관객들의 평가에 따라 제가 아무리 좋아해도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르는 게 이 일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부분도 염두에 두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어도 작품을 계속하는 건 아직 열정이 있기 때문입니다.(웃음) 작품으로 스트레스도 받고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지만, 작품으로 또 치유가 돼요. 올해는 치유가 되는, 딱 그런 시점이었어요.

10. ‘투자가 되는 배우’ ‘캐스팅하고 싶은 배우’라는 평가에 대한 부담감도 느낄 것 같아요.
손예진: 계속 잘해야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니 부담감이 있죠. 책임감도 느껴요. 항상 ‘여름 스크린 전쟁’ ‘추석 대전’과 같은 식으로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니까요. 하지만 최근 들어 흥행 여부에 너무 얽매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어떤 연기를 보여주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10. 연기도 꾸준하지만 ‘예쁨’도 꾸준한 것 같아요.
손예진: 시간은 다 공평하게 주어져요.(웃음) 보이는 직업이니 항상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지만 스스로도 예전에 비해 주름이 많아졌다는 걸 느끼죠. 하지만 나이 드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잖아요. 꾸준히 운동하고 관리도 받아야죠. 20대 얼굴을 다시 갖겠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죠. 그래도 다행히 과학은 점점 발달하잖아요? 그것만 바라고 있어요.(웃음)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