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인터뷰] 전여빈 “악몽과 고통 견디며 찍은 ‘죄 많은 소녀’, 관객에게 꼭 전해야 할 이야기”

[텐아시아=노규민 기자]
전여빈 인터뷰, 죄 많은 소녀

영화 ‘죄 많은 소녀’에서 친구의 죽음 이후 가해자로 몰린 ‘영희’ 역을 맡은 배우 전여빈/ 조준원 기자 wizard333@

전여빈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영화 ‘죄 많은 소녀’에서 여주인공 ‘영희’가 친구의 죽음 이후 가해자로 몰린 고통스런 현실을 마주하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밀도 있게 연기한 덕분이다. 2015년 영화 ‘간신’으로 데뷔한 전여빈은 독립영화든 상업영화든 가리지 않고 단역, 조연, 주연을 넘나들며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OCN 드라마 ‘구해줘’에서 죽음을 무릎쓰고 사이비 종교를 취재하는 기자 홍소린으로, tvN ‘라이브’에서는 정유미의 친구로 등장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대작들이 앞다퉈 개봉하는 가운데 전여빈이 작지만 강렬한 모습으로 관객들을 만난다. ‘죄많은 소녀’ 개봉(13일)을 앞두고 전여빈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10 ‘죄 많은 소녀’의 개봉을 앞둔 기분이 어떤가?
전여빈: 뜨거운 마음으로 찍었다. 기대되고 설레지만 두렵기도 하다. 만감이 교차한다.

10. 완성된 작품을 보고 만족했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전여빈: 내가 출연한 영화가 세상에 나왔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다. 찍는 동안에는 최선이었지만 결과물을 봤을 때 나 자신에게 아쉬움은 있다. ‘더 좋은 연기를 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10. 영화에 출연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전여빈: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영희’라는 인물만 눈에 보인 건 아니다. 작품이 말하는 죄책감의 무게, 선인도 악인도 없는 공간에서 서로가 절망하는 모습이 아프게 느껴졌다. 이런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꼭 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비슷한 이야기를 둥그스름하게 표현하고 따뜻하게 마무리하는 부류의 작품이 있지만,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영화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으로 오디션을 봤는데 결과가 좋았다.

10. 극 중 ‘영희’는 고통스럽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고통의 무게를 안고 있다.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전여빈: 영희가 처한 절망적인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 애를 썼다. 온 신경을 곤두세워서 고통을 감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무엇보다 ‘척’ 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했다. 연기가 아닌 연기라고 해야 할까? 가공하지 않은 연기가 필요했다. 선배님들처럼 기술이 좋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나는 지금 연마하고 있는 어린 배우다. 감정 선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 빠져 있어야 했다. 찍는 동안에 악몽을 꾸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마음이 아프다 보니 몸에도 통증이 왔다.

10. 장례식장 화장실에서 자해하는 장면은 충격적이다. 가장 임펙트 있는 장면 중 하나다. 어떻게 찍었나?
전여빈: 영희의 고통이 절정에 치닫는 부분이다. 몰입도를 위해 롱테이크로 찍어야 했다. 철저하게 준비된 장면이다. ‘부산행’ ‘곡성’ 등에서 몸의 움직임을 지도했던 선생님께 수업을 받고 2개월 동안 연습했다. 촬영 때는 몸의 움직임과 극한 감정을 함께 쏟아야 했다.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더라. 찍고 난 다음 날에는 온몸이 아팠다. 찍을 땐 아픈 줄도 몰랐다.

10. 동급생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는 장면에서도 고생한 흔적이 보인다.
전여빈: 그 장면도 사전에 준비를 많이 했다. 무술 코치님 지도 하에 학생들 한 명 한 명과 동작을 맞췄다. 보호장치도 완벽하게 했지만 찍다 보면 감정이 격해지기 마련이다. 발톱이 빠진 친구도 있고, 저한테 무릎을 제대로 맞아서 멍이 든 친구도 있었다. 모두가 치열하게 열심히 했다.

10. 동성애 코드에 대한 거부감이나 어려움은 없었나?
전여빈: 감독님께서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이해했다. 처음부터 명확하게 강조하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중성 사회다. 사람이 사람에 대한 호감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젠더’에 이슈를 맞추기 위해 코드를 집어넣은 것이 아니다. ‘여학생’이 아니라 인간 ‘영희’를 표현하고자 했다. 배우들은 인간으로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감정에 치중했다. 감독님은 자신이 경험한 것을 영화화한다고 했을 때 예민하고 세밀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여학생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전여빈 인터뷰, 죄 많은 소녀

영화 ‘죄 많은 소녀’의 전여빈은 “극 중 영희가 처한 절망적인 상황을 실제로 받아들이기 위해 애를 썼다”고 했다./ 조준원 기자 wizard333@

10.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전여빈: 맨 첫 장면과 맨 끝 장면이다. 처음에 수화를 하는 모습은 모든 사람이 이해하는 것 같지만 완전히 오해하고 있다는 걸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된 영희는 손으로 말을 하지만 전혀 소통이 되지 않는다. 굉장히 임펙트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영희가 굴다리를 지나는 장면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열린 듯 닫힌 결말임을 보여준다. 여운이 짙게 남을 거다.

10. ‘죄 많은 소녀’에는 임펙트 있는 장면이 여럿이다. 종반부에 경민이 엄마(서영화)가 자해하는 모습은 어땠나?
전여빈: 무서웠다. 서영화 선배님의 눈빛과 온몸을 떨면서 연기하는 모습을 마주하고 있는데 굉장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10. 지난해 ‘부산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된 이후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하는 등 연기력에 대해 호평을 받았다. 자신에게 연기 점수를 준다면?
전여빈: 영화에서 배우는 감독과 스태프들에게 도움을 받는다. 도움을 받을 때 발현될 수 있다. 제 자신이 얼마나 노력을 했는가에 대해 이야기 할 수는 있겠지만 감히 점수를 매기는 건 맞지 않다고 본다.

10. 영화를 본 사람들이 ‘괴물 신인’이라고 말한다. 신인치고는 나이(30)가 적지 않다. 2015년 영화 ‘간신’으로 데뷔했는데 다소 늦게 시작한 이유는?
전여빈: 스물한 살에 대학(동덕여대 방송연예과)에 갔다. 처음 연기를 배우기 시작할 때 단번에 배우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시간을 쌓기 위해 노력했다. 연극 스태프도 해보고, 다른 과 공부도 했다. 스물여섯 살 때쯤부터 배우로서 하나씩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독립영화도 하고 오디션도 보기 시작했다.

10. 조급하지 않았나?
전여빈: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하니 (조급함이)생기더라. 스물일곱 살 때쯤부터 주변에서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됐다. 조급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른이 됐고,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더 그랬다. 배우 생활을 하면서 ‘책임’을 지는 것이 어렵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가까운 사람들의 도움으로 헤쳐 나가고 있다. 엎어졌다가 일어섰다를 반복했던 것 같다.

10. 다음엔 어떤 작품에 도전하고 싶나?
전여빈: ‘내일을 위한 시간’과 ‘라 비 앙 로즈’와 같은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 ‘내일을 위한 시간’은 생계 수단을 잃게 된 여자가 일을 하기 위해 사람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잔잔하면서 밀도 높게 그린 작품이다. ‘라 비 앙 로즈’는 어떤 예술가의 인생을 진지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비슷한 종류의 작품을 해보고 싶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의 주인공을 마리옹 꼬띠아르라는 배우가 연기했다.

10. 심오하고 진지한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다.
전여빈: 꼭 그렇지는 않다. 밝고 재미있는 것도 좋아한다.

10. 평소 성격도 심오하고 진지한가?
전여빈: 진지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웃음) 재미있는 친구들을 좋아한다.

10. 재미있는 연예인들도 많다. 혹시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이 있나?
전여빈: 하정우 선배님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다. 진지하면서도 유머 감각이 있는 분인 것 같다. 작품이나 인터뷰를 통해 그런 모습을 봤다. 전혀 친분이 없다. 제게는 연예인이시다.

전여빈 인터뷰, 죄 많은 소녀

영화 ‘죄 많은 소녀’의 전여빈이 “하정우 선배와 친해지고 싶다”고 말했다/ 조준원 기자 wizard333@

10. 문소리와의 관계가 남다르다. 어떻게 맺어진 인연인가?
전여빈: 예전에 서울 여성영화제 트레일러에 출연한 적이 있다. 말 한 마디 안 하고 얼굴만 나오는 여성인데, 그 모습을 보셨단다.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왔다. 미팅을 하자고 하셨다. 며칠 뒤에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냉면을 먹었다. 제가 연기하는 걸 보고 싶은데 그동안 했던 배역 대부분이 대사가 없었기 때문에 관련 영상이 없다고 하셨다. 그러더니 바로 대본을 주셨다. 존경하던 분이 앞에 앉아있고, 단편이라 할지라도 매우 큰 기회였기 때문에 굉장히 열심히 읽었다. 선배님께서 ‘이렇게 잘하는 애한테 왜 말을 안 시켰을까?’라고 하셨다. 그렇게 ‘여배우는 오늘도’에 출연하게 됐다.

10. ‘죄 많은 소녀’에 대해서는 어떤 말을 해주던가?
전여빈: 문자로 정말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배우로서 고민에 대해 깊은 조언을 해주셨다. 너무 값진 말이기에 그 내용은 저만 간직하고 싶다.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하다.(웃음)

10. 연기 외에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나?
전여빈: 몸에 관해 연구하고 싶다. 이를테면 근육이나 관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발성과 목소리 등에 관해서도 공부하고 싶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몸으로 하는 연기에 감정이 붙었을 때 표현력이 더 극대화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10. 결국 연기를 위한 도전이다. 출연하고 싶은 예능 프로그램은?
전여빈: ‘라디오스타’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MC들이 짓궂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출연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10. 롤 모델로 삼고 있는 배우가 있나?
전여빈: 자신을 책임지고 있는 모든 배우들이 존경스럽다. 그것이 어렵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어른이 돼 스스로 밥벌이를 하고, 사명감을 느끼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멋있다. 저도 그들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

10. ‘죄 많은 소녀’의 개봉 시기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가?
전여빈: 사람이라 기대를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안 그럴려고 마음 먹고 있다. 김칫국을 마시면 상처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산영화제에서 공개되고, 여섯 번이나 봐 주셨던 분들이 시사회 때 또 봤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 분들의 뜨거운 마음을 잊지 못할 것이다. 작품에 출연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