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리뷰] ‘나의 마지막 수트’, 필사의 몸부림으로 아픈 기억을 가르고 나아가다

[텐아시아=박미영 기자]

영화 ‘나의 마지막 수트’ 일러스트 포스터

아르헨티나에 사는 88세의 재단사 아브라함(미구엘 앙헬 솔라)은 내일이면 50년 동안 살았던 집과 작별하고 요양원으로 떠나야 한다. 사진을 찍으려고 손주들에게 둘러싸인 그는 가장 아끼는 증손녀 미카엘라가 보이지 않자 찾아 나선다. 미카엘라는 할아버지와 깜찍한 딜을 해서 아이폰6를 얻어낸다. 거래를 좀 할 줄 아는, 그 할아버지에 그 증손녀다. 그런데 짐 속에서 수트가 하나 발견된다. 70년 전 폴란드에서 유대인인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친구를 위하여 만들어 둔 수트다. ‘추리스’라고 이름 붙인 자신의 불편한 오른쪽 다리는 그에게 얼마 안 남은 시간을 일깨워준다.

아브라함은 수트를 들고, 단어로도 입에 올리지 않았던 그곳 ‘폴란드’로 향한다. 그의 여정은 스페인의 마드리드와 1센티 1밀리미터도 밟고 싶지 않은 독일을 거쳐야 하는 등 평탄치 않다. 한걸음에 가고 싶은 마음을 불편한 다리가 꺾어버리고, 공항에서는 방문 목적이 미심쩍다며 취조를 받고, 하루치 숙박료를 깎으려다가 경비를 전부 도둑맞고, 열차에서는 범람하는 독일어로 인해 패닉에 빠져서 아픈 기억 속으로 빠져든다. 그래도 주저앉은 아브라함을 번번이 일으켜 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를 살렸던 폴란드인 친구처럼.

영화 ‘나의 마지막 수트’ 스틸컷

파블로 솔라즈 감독의 이름은 낯설어도 그의 손에서 쓰여진 각본은 리메이크작으로 한국 관객에게 이미 선보였다. 바로 임수정, 이선균 주연의 ‘내 아내의 모든 것’이다. 자신 역시 유대인인 그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품었던 아픈 시간을 출발점으로, 우연히 한 노인에게 전해들은 나치로부터 목숨을 구해준 옛 친구를 찾아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는 이야기를 더해서 한 편의 서사로 완성했다. 각본가로서도 인정을 받고 있는 감독답게 굴곡진 역사를 드라마로 잘 풀어냈다.

‘나의 마지막 수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을 꼽자면, 이야기를 잘 지어내던 아브라함의 여동생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그래서 깜박 잠이 들었던 별,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죽은 별로 보였던 이야기는 마치 별처럼 빛나다가 사라진 그녀의 삶과 겹쳐진다. 그녀는 열한 살 이상만 살 수 있는 나치의 섬뜩한 학살 기준에서 한 달이 모자라다는 이유로, 열차 20대를 채운 어린 아이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여동생을, 그리고 가족의 죽음을 눈으로 직접 보아야 했던 아브라함의 고통이 처연하게 다가온다.

아브라함은 통째로 삼켜버린 아픈 기억을 필사의 몸부림으로 가르고 나아간다. 그 끝에는 그토록 그리운 이가 있기 때문이다.

9월 6일 개봉. 12세 관람가.

박미영 기자 stratus@tenasia.co.kr